윤리의 부재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by 이순직

전후현실은 공동체 생활의 기반을 이루는 윤리의식이 동족상잔의 부정적인 영향과 주둔군의 문화적 충격을 받아 이미 무너진 상태이다. 따라서 윤리의 부재는 필연적인 사회 현상으로 부각된다.


전후사회를 살아가야 할 삶의 구체적인 조건들은 극심한 생활난‧정체성 상실‧사회적 무질서① 등으로 꼽을 수 있으며 유의할 사항은 어느 한 요소가 독립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기보다는 둘 이상의 요소가 결합하는 복합적 형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인과적 연결 고리를 맺고 있다. 가령 극심한 생활난이 성윤리의 자발적인 부재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또한 미군은 윤리의식의 부재를 가속화하는 존재이다. 한국전쟁 이후 주둔한 미군은 전쟁억제력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문화적 점령군의 성격을 갖는데 퇴폐적인 저질문화의 발원지로서 전통문화의 와해를 촉진한다.


특히 주둔지 주변에 寄生住民이 나타나는데② 부정적인 영향관계에 문학적 형상화의 초점이 놓인다. 해방공간의 점령군으로서 미군과 비교하면 지속적으로 문화적 충격을 주어 GI(Government Issue)의 저질 군사문화를 유포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풍요의 상징으로 작용하여 상대적인 빈곤의식을 갖게 하며 가치관의 서구지향적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전후사회의 도덕적 타락 중에서 성윤리의 부재와 사회도덕의 실종은 보편적 현상이다. 성윤리의 타락은 성을 교환가치로 인식하여 생존을 위해 매매하는 현상을 통해 드러난다. 여기에는 성이 궁핍한 생활난을 해결하는 생존수단이라는 묵시적 인식이 숨어 있다.


사회도덕의 실종은 개인도덕의 타락을 전제로 하는 사회조직체의 물신화 경향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전후소설 가운데에서 미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미군의 존재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이나 이념적인 판단은 일체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한 접근 자체가 반국가적인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인들의 비참한 삶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미군의 존재를 사회윤리적인 범주 속에 넣어 그려내는 것이 대부분이다.③ 형상화의 유형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기원의 「暗射地圖」는 궁핍한 생활난과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성윤리의 부재와 극복의지를 보여준다.

둘째, 한말숙의 「神話의 斷崖」는 교환가치로써 성을 인식하며 정신적 가치관이 무너진 전후현실이 윤리의식의 훼손을 낳는 경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셋째, 이범선의 「誤發彈」은 생활난에 따른 생존을 위해 성윤리와 사회도덕을 거부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넷째, 송병수의 「行爲圖生」은 정체성의 상실이 성윤리의 부재로 이어지는 경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섯째, 주둔군에 대한 경제적 종속관계가 정신적 종속으로 이어져 주둔군과 맺는 관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형상화한 전광용의 「塵芥圈」이 있다.


여섯째, 주둔지가 성적 타락을 조장하면서 그 보상으로 궁핍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정된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이 있다.


일곱째, 주둔군과 기생주민을 대립적 관계에서 상호보완적 관계로의 전이를 제시하는 김동립의 「주인 없는 성」이 있다.


여덟째, 서구적 가치관의 傳播原으로서 주둔군을 형상화하는 하근찬의 「왕릉과 주둔군」이 있다.


이외에도 정한숙의 「어느 동네에서 울린 총소리」, 전광용의 「海圖抄」, 최인욱의 「저류」, 오상원의 「黃線地帶」, 가족 구성원으로서 전쟁고아를 다룬 송병수의 「쑈리 킴」, 전후사회의 무질서를 다룬 추식의 「모오든 나는 오라」와 「부랑아」, 죽음과 等價値化된 생활난을 제시하는 이범선의 「사망보류」와 손창섭의 「피해자」, 자아의 위기를 다룬 서기원의 「薄明」, 아내가 남편을 잃고 자발적으로 성윤리를 포기하는 송병수의 「掌印」 등이 있다.


「暗射地圖」는 전쟁체험의 정신적 충격에서 비롯하는 자아의 정체성 상실과 생활난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성윤리의 부재를 제시하고 윤주를 통해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을 형상화한다. 폭탄에 구멍이 뚫린 집에서 형남·상덕·윤주는 동거한다.


상덕과 사실혼의 관계를 가진 윤주는 생활난 때문에 형남과도 동침한다. 상덕의 묵인 아래서이다. 임신을 하자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윤주는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을 가지면서 동시에 도덕적 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구멍 뚫린 집을 나간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 정체성의 상실과 성윤리의 부재 및 그 극복의지를 읽을 수 있다.


정체성의 상실은 상덕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윤주를 섹스 파트너로 인식하는데 전우인 형남에게 윤주와 동침할 것을 제의한다. 죽을 고비를 함께 했던 전우와 여자를 공유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가치관의 타락에서 읽을 수 있는 정체성의 상실은 전쟁체험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전쟁으로 인해 심신이 손상된 상태에 있는 가장 대표적 표상은 귀환 군인이며 그들의 손상된 삶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단순히 피해의식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전후시대가 지닌 경험적 현실의 실상이기 때문이다.④

반면 윤주는 생활비를 부담하는 형남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만 두세요. 이 돈이 말하자면 날 사겠다는 표시죠? 적어도 이 돈의 삼분지 일의 금액으로, 아냐요?”


윤주는 자신을 부양하는 대가로 형남과의 성관계를 받아들인다. 사실혼의 관계를 맺은 상덕은 이미 경제력을 상실한 뒤여서 그녀는 형남의 생활비로 살아간다는 자괴감에 빠진 상태이다. 따라서 작품 내적 요소로 살펴보면 성윤리의 부재 현상은 상덕의 정체성 상실과 윤주의 생활난이라는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공유하는 공간이 폭탄에 구멍이 뚫린 집이라는 점에서 전후적 삶 속에 놓인 윤리의식의 부재를 발견할 수 있다. 상덕과 윤주는 사실혼의 관계를 맺으면서도 가족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단순한 성적 동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주가 집을 뛰쳐나가는 결말에서 새 생명에 대한 모성적 본능과 성윤리의 회복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녀의 행동은 성윤리가 부재 하는 전후현실의 삶에서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 표명이다.


「神話의 斷崖」에서는 성윤리의 부재로 인한 왜곡된 인간관계를 읽을 수 있는데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진영은 하숙비를 내지 못해 하숙방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하룻밤 잠자리와 굶주림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댄서로 일한다.


청년은 기피자로 쫓기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형사는 병역기피자이면서 기피자를 잡는 인물로서 모순된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경일은 국전에서 장관상을 받았으나 생활난 때문에 극장간판을 그린다. 이러한 인물들에서 정상적인 삶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은 진영을 처음 만나 일주일의 동거를 제의하고 삼십만 환을 선뜻 내준다. 진영은 청년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비정상적인 사회적 현상과 구체적인 생활난이 맞물려 성윤리의 부재를 가져오는 경우인데 진영과 청년의 관계는 상대를 수단으로 인식하는 교환가치로 맺어져 있다.


이때의 교환가치는 골드만의 천명처럼 자본주의 아래에서 물신화된 가치의 타락현상이 아니라 전후현실에 내재하는 삶의 조건에 따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성윤리의 부재를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은 결말이다.


사랑 사랑…… 진영은 그 말의 감각을 느껴보려 하였으나, 그 추상명사가 마치 숫자(數字)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나열될 따름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필요치 않았다. 다만, 진영은 지금 경일을 포옹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진영은 경일씨 어서 오세요, 보고 싶어요 라고 편지의 끝을 맺었다.


진영에게 사랑은 추상명사이며 필요한 것은 육체적 쾌락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가 인간이 목적이 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관계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관계로 맺어지는 경우이다. 진영은 반드시 경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응해줄 남성의 육체가 필요할 뿐이다.


진영을 통하여 성이 사랑을 전제로 하는 인간 사이의 매개가 되지 못하고 교환가치로 전락하는 전후사회의 윤리적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생활난이 성윤리의 부재와 맞물리는 전후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진영의 인물형은 전쟁을 통해서 남성적인 성충동의 폭력에 의해 유린‧겁탈되는 손상된 삶이 아니라 전후현실이 성윤리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작가적 인식을 보여준다.


「誤發彈」은 생존을 위해 사회도덕을 거부하는 전후현실을 제시한다. 이렇다할 생산 시설이 없는 현실 속에서 영호는 제대한지 2년이 넘도록 취직하지 못한다.⑦


그는 가족의 궁핍한 생활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전후현실이 문제라는 인식 아래 철호의 양심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나 필요하다고 여긴다. 철호와의 논쟁 속에서 양심은 “손끝의 가시”라며 왜곡된 논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논리는 물질적인 궁핍이 정신적인 황폐화를 낳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반면에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는 철호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 양심이 정하는 사회적 규범을 지키며 살고자 한다.


영호는 철호와 논쟁에서 인간적인 삶조차 박탈하는 극심한 생활난이 법과 윤리의식을 거부하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명숙이 양공주가 되어 미군 옆자리에 앉아 서로 희롱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 철호는 말조차 건네지 않을 정도로 양심이 정하는 사회적 윤리의식을 삶의 잣대로 가지고 있으나 미쳐버린 어머니와 어떠한 희망조차 갖지 않으려는 아내와 영양실조에 걸린 딸과 해방촌의 낡은 판잣집이 그의 현실이다. 철호의 양심은 전후현실을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영호의 주장이다.


“(…) 남들은 다 벗어 던지구 법률선까지도 넘나들면서 사는데 왜 우리만이 옹색한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숨이 막혀야해요? 법률이란 뭐야요? 우리들이 피차에 약속한 선이 아니야요?”


영호의 물음은 철호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전후 사회의 구조적 악순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항변이다. 극심한 물질적 궁핍이 왜곡된 가치관을 낳는 주요한 계기로 꼽는 것이다. 영호의 권총강도는 양심과 법이 정한 사회적 질서에서 일탈하는 경우이며 명숙의 양공주 노릇도 궁핍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전후의 전형적인 여인상에 해당하는 명숙은 물질적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매춘의 현장으로 전락하지만 법과 관습적 질서에 거스르는 왜곡된 논리를 보여주지 않으며 철호의 아내처럼 삶에 대한 자포자기에 빠지지도 않는다. 철호에게 병원비를 주듯이 명숙의 생활력은 강인하다.


아내가 죽고 영호는 강도죄로 잡혀간 상황 속에서 철호는 충치를 뽑는다. 문학적 상징으로서 충치와 치통은 가난의 표징이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한 인간의 사회적인 양심의 고통을 암시한다는 지적처럼 그의 拔齒는 “오발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사회적인 절망의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⑨


「行爲圖生」은 기성의 도덕적 권위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하는 정체성의 상실이 성윤리의 부재와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전후사회에서 정체성 상실은 남녀를 불문하고 전쟁의 정신적 충격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체성의 재확립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윤리관이 대두되지 않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기성의 권위에 대한 불신이 폭넓게 자리한다는 점에 있다.


전쟁의 여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후사회 자체가 건강한 사회일 수 없다는 본질적 문제와 결부한다면 정체성의 상실은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이다.


“나”는 임신 사 개월의 미혼모이다. 사회도덕을 부정․거부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한다. 친구의 애인과 동침하기도 하며 술자리 끝에 한 남자와 스스럼없이 동침하기도 한다. 사회적 윤리의식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은 독선으로 치닫는다.


많은 인습과 많은 인위의 도덕과 계율을 못마땅해하며 나의 인습과 나의 도덕을 나 혼자 고집한다.


기존의 윤리의식을⑪ 거부하지만 대체할 것은 “나의 모랄은 나”라는 독선뿐이다. 독선은 최후의 자기방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불신과 거부를 강하게 의사 표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기성세대의 도덕적 권위에 대한 거부와 부정이 낳은 “나의 도덕”은 전후현실을 사는 젊은이의 방향 잃은 삶을 의미한다.


당연히 “나”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거부한다. 이와 같은 자발적인 정체성 상실이 성윤리의 부재를 가져와 미혼모로 전락하는 계기로 설정되어 있다. 낙태를 하는 것보다 미혼모가 되겠다는 선택은 기성도덕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원리로서 시대적 상황에 걸맞는 도덕이 정립되지 않은 전후현실을 제시한다.


「塵芥圈」은 전후현실의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소시민이 주둔군의 쓰레기로 생계를 잇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생존방식은 원조물자에 의지하는 전후의 취약한 경제구조를 단적으로 암시하며 주둔군에 대해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기생주민의 물적‧문화적 종속성을 내포한다.


장서방은 “노가다판 날인부에서 십장으로, 흥남 공장에서 다시 청진으로, 나중에는 목단강에서 쟈무스까지, 아무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하는 인물인데 자신의 삶을 쓰레기로 비하한다. 이와 같은 심리적 메커니즘은 미국체험으로 인한 민족적 열등감과 물질적 빈곤을 전제하고 있다.


나는 인간의 쓰레기야. 쓰레기 중에서도 깡통 하나 골라 낼 것 없는 다 썩은 쓰레기야.


자신뿐만 아니라 전후현실의 모든 것들을 쓰레기라고 보는 시각을 가진 장서방은 “쓰레기를 벗어나야 산다니까, 쓰레기를!”이라며 주둔군의 이동을 계기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쌍과부와 결합은 그러한 결심의 실천적 행동이며 寄生住民의 종속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교회는 교회로 정당은 정당으로” 제 역할을 하는 건강한 세상으로의 출발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여 온통 쓰레기로만 보이는 전후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출발점에 기생주민의 종속성에서 벗어나는 일이 놓인다.


「해방촌 가는 길」에서 주둔지와 해방촌은 상이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전자가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서구적 가치관의 세계라면 후자는 굴욕적인 가난과 전통적 가치관이 웅크리고 있는 세계이다. 두 세계는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공간이며 양자택일의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죠오와 하리이는 근수와 대립적 인물이며 풍요와 빈궁, 서구적 가치관과 전통적 가치관 역시 대립적인 상관성을 가진다. 두 세계를 넘나드는 기애를 전통적 가치관의 세계에서 바라볼 때 희생자 또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갖는다. 미군부대에서 죠오와 동거 끝에 낙태의 경험이 있는 기애가 해방촌으로 돌아와 만난 근수에게 퍼붓는 방백의 속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바보! 바보! 난 자격이 없어요, 하고 내 입으루 설명을 안 하면 못 알아보나. 바보, 바보. 그렇잖으면 날더러 내가 그 모양이었대도 아마 괜찮을 게라는 기대를 가져 보란 말인가. 바보. 등신!


기애가 근수의 구애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질적인 서구적 가치관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치관의 세계에 근수가 놓인다면 근수의 죽음은 기애가 전통적인 가치관의 세계로 편입할 수 있는 통로의 막힘을 뜻한다. 따라서 기애는 하리이의 현지처가 되어 남동생을 위해 굴욕적인 가난을 벗어나는 쪽을 선택한다.


욱이가 똑바로 자라나 줄 것만이 여기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똑바로 자라나 다오. 그것은 누나처럼, 그리고 어머니처럼 되지 않는 일이다.


모성신화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미화하는 믿음인데⑮ 변형된 모성신화는 남동생을 위해 누나가 모성적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인용문처럼 기애는 욱이에 대해 모성적 존재가 될 것을 다짐한다. “어머니”가 궁핍한 삶을 뜻하는 단위라면 “누나”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일탈한 비정상적인 삶을 가리킨다. 욱이에 대한 희망으로 기애는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한다. 기애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세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서구적 가치관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타의적으로 주둔군에 기생하는 여인상으로 볼 수 있다.


「주인 없는 성」은 주둔군과 기생주민, 한국인과 미군을 상호대립적 관계에서 보완적인 관계로의 전이를 형상화한다. 그러한 관계의 변화는 통역장교 김대위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결말의 원대복귀 명령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적이고 임시적 차원에 그칠 뿐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주둔군의 문화적․도덕적 우위에 대한 민족적 자괴감으로 형상화된다. 자괴감은 민족적 열등감에 닿아 있으나 감정적인 폭력 형태로 나타난다.


상호대립적 관계는 도난사건 및 매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김대위는 도둑이 침입한 흔적 앞에서 월리엄즈 중령으로부터 민족적 차원의 멸시가 담긴 시선을 받는다. 주둔지 내의 도난사건은 카투사와 판자촌의 기생주민의 결탁에서 비롯하는데 김대위는 도둑을 잡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 판자촌을 떠난다는 조건으로 월급을 털어 여비로 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도둑-카투사-상급부대 장교>로 이어지는 상납구조가 밝혀지면서 김대위는 원대복귀 명령을 받는다. 김대위 개인의 차원에서 민족의 도덕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적인 현실이 있다. 매춘은 성적 거래의 상호보완적 관계로 묘사하거나 혹은 여성을 성적 희생자로 부각하는 일반적 형태와는 달리 상호불신이 개입되어 있어 대립적 성격을 갖는다.


즉 카스메룬 중사와 양공주 사이의 불신은 서로에 대한 도둑질 때문인데 오해가 풀리면서 결혼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카스메룬 중사의 도덕적 포용성을 보여주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이때까지 가슴속에 꽉 맺혀 있던 어떤 덩어리가 확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너희들의 기분이나 맞춰주는 뚜쟁인 줄 알아!」 틀림없다. 그새 채 일 년도 못 되었을, 저 괴물 속에서의 맹종, 조롱, 모욕, 수치, 자학, 비굴, 자기 혐오, 그런 것들로 얽혀 뭉친 덩어리가 확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불과 짧은 그 기간이 어느새 십 년, 십 오 년, 십 칠 년이란 세월이라도 흘러간 것 같은…… 아니 현재에서 반만 년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공군, 다와이, 조센징구(朝鮮神宮), 사색 당쟁, 당나라 군사, 오랑캐…… 그러한 것들이 짓밟고 휘어 놓은 오욕의 기록을 한 주먹에 콱 쥐어뜯어 불살라 올리고 싶은…… 그리하여 지금은 어느 놈도 더럽히지 않는 우리만의 그 시대로 직결되어 가는 듯한……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가슴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 같은…… 아아, 나는 이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김대위는 민족적 차원의 열등감을 극복하려 하지만 인용문과 같이 심정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 그칠 뿐이다. 이와 같은 자기비하의 반성적 태도는 주둔군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분단상황의 인식에서 비롯한다.


「왕릉과 주둔군」은 주둔군을 전통적 가치관을 타락시키는 汚染源으로⑰ 파악하는데 문화적․역사적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왕릉과 박첨지의 외동딸 금례의 변화를 통해 형상화된다. 왕릉 근처에 미군이 주둔하자 박첨지는 담쌓기를 시작한다. 왕릉을 주둔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왕릉 위에서 흑인 병사가 성행위를 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박첨지는 오히려 왕릉에서 쫓겨난다.


박첨지는 꼭 실성한 사람 같았다. 지게를 받칠 생각도 않고 마구 앞으로 내달으려는 것이었다. 내달아질 리가 만무했다. 아랫도리가 휘청 꺾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앞이 노랗게 빙 돌았다. 박첨지는 지게를 진 채 앞으로 고목처럼 꿍! 나가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흙과 지게 밑에 깔린 박첨지는 두 손을 뻗어 풀을 쥐어뜯으며 허옇게 이를 악물었다. 상투가 바르르 떨렸다.


바르르 떨리는 상투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패배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⑲ 그러나 박첨지의 왕릉 둘레에 담쌓기는 중단되지 않는다. 주둔군이 떠난 후에도 다시 담을 쌓는 계기는 금례의 귀향에 있다. 금례가 혼혈아를 앞세우고 돌아온 것이다. 전통적 가치관과 서구적 가치관의 혼합체로써 혼혈아를 본다면 손자의 존재는 50년대의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서구적 가치관의 침투를 풍자한다.


또한 박첨지를 민족적 성향의 보수적 인물로 본다면 미군을 뒤쫓아 떠난 뒤 혼혈아 아이를 낳은 금례는 서구지향적 인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스스럼없이 왕릉에 올라가는 혼혈아 손자는 두 유형의 인물 사이에서 무의지와 무의식을 노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⑳


왕릉이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면 주둔군은 서구적 패러다임을 뜻한다. 상이한 세 인물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이 세대적 차이에 따라 희석되어 가는 세태를 날카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윤리의식의 부재는 전쟁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해체가 아닌 붕괴의 의미를 가진다. 구체적인 외적 요소는 궁핍한 생활난‧정체성의 상실‧사회적 무질서 등이며 상호 영향관계를 맺으면서 나타나는 복합적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적 가치관의 경시와 사회도덕의 타락으로 나눌 수 있다. 성적 가치관을 경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궁핍한 생활난을 타개하기 위한 성의 상품화 결과이기도 하며 윤리적 가치체계의 붕괴 즉 성윤리의 부재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성적 가치관의 경시는 생계를 위한 여성의 적극성 및 자발성을 전제로 하며 사회도덕의 타락은 전후사회의 무질서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정체성의 상실은 군인의 경우 전흔에 민간인의 경우 가족구성원의 상실, 특히 부모의 상실에 원인이 있다.㉑ 정체성의 상실이 윤리의식의 부재와 결합할 경우 성윤리의 타락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사회적 무질서는 개인의 타락을 전제로 하는 사회조직체의 물신화 경향과 맞물린 도덕성의 경시에서 비롯한다. 물신화는 정신적 황폐를 단적으로 증명하며 근본적인 원인은 전쟁이다.


주둔지 주변의 기생주민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크게 주둔군을 물적 풍요의 대상으로 상정한 경우와 윤리의식 및 전통적 가치관을 타락시키는 오염원으로 보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요소는 동전의 양면으로 작용하는데 전후현실의 궁핍을 해결하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성적 가치관의 타락 및 가치관의 서구화라는 문화충격의 면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도덕적 열등감과 상대적 빈곤감을 갖도록 하는 등 부정적 영향관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소년의 주둔군 체험은 동심의 타락으로, 여성의 주둔군 체험은 성적 타락으로, 지식인으로서 통역장교의 주둔군 체험은 민족적 자괴감으로 형상화되는 유형을 살펴볼 수 있다.


성윤리의 타락은 전후현실에 내재하는 물질적 궁핍과 전쟁의 정신적 상처가 복합화하여 비롯된다. 전쟁의 충격이 文面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黙示意 意思表示로서 배경화되는 경우도 있어 전흔으로서 성윤리의 타락을 염두에 둘 수 있다. 특히 정신적 상처는 정체성의 상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개인의 성윤리가 타락하는 이면에 사회도덕의 붕괴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윤리의식이 와해된 전후의 객관현실을 반영한다.


주둔군과 기생주민의 관계는 물질적 풍요를 매개로 하는 일방적인 종속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서구적 가치관의 傳播源으로,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는 대가로 성적 상품화를 조장하는 공간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집단 등등으로 형상화되지만 종속관계는 공통점이다. 이는 停戰의 분단상황 아래에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서 주둔군과 기생주민의 영향관계에 접근하는 현실인식에 기인한다.




① 극심한 생활난은 원조 물자에 의지하는 당시의 경제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으로 인한 생필품의 생산기반을 상실한 전후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체성의 상실은 동족살상과 형제살해로 요약할 수 있는 전쟁체험에서 비롯하는데 공동체의식의 상실과 가족의 해체에서 정체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사회적 무질서는 여러 요소가 결합하면서 나타나지만 도시로의 인구 집중화를 염두에 둘 수 있다. (李效再, 분단시대의 가족 연구, 분단시대의 사회학한길사, 214쪽. 참고)


“1950~1955간은 6․25동란으로 인한 피난민의 대이동으로 특징 지워진다. (…) 결과적으로 한국의 도시인구는 1949년과 55년 사이에 325만 3천명에서 458만 2천명으로 105만 9천명이나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전체 인구증가의 79%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서의 삶을 지탱하도록 하는 문화적․역사적 가치체계의 전통을 地域性이라고 한다면 전통적인 지역성의 부재와도 관련이 있다.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다양한 지역성의 집합이면서도 동시에 익명을 전제로 하는 지역성의 부재와 맞물린다(김현․김윤식, 한국문학사, 민음사, 1992. 234쪽. 한국전쟁은 도시인구집중으로 지역성을 축소시키는데 문학적 면에서 언어의 혼란과 순화를 가져온 점, 농촌 엘리트의 도시진출로 농촌의 구조적 모순점들이 첨예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와 더불어 이념대립적이고 체제경쟁적인 분단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공동체적 삶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는다. 당연히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이나 제도적 규범을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적 무질서를 초래한다. 이처럼 생활난․정체성 상실․사회적 무질서 등은 전후사회에서 공동체의식의 부재를 가져오는 궁극적인 요소로 파악할 수 있다.


② 주둔군에 대해 寄生住民은 철저히 의존적이다. 물적 풍요와 서구적 가치관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이색지대인 주둔지는 궁핍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며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와해시키는 敬遠의 대상이기도 하며 성적 상품화를 조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주둔군의 선민의식과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기생주민의 열등의식, 두 민족 사이에 빚어지는 민족적 감정과 한 개인의 행동이 민족적 상징성을 획득하는 상황 등이 발생한다.


③ 권영민, 한국소설 속의 힘센 미국과 추악한 미군들, 소설과 운명의 언어, 현대소설사, 1992. 336~337쪽.


④ 이재선, 앞의 책, 108쪽.


⑤ 서기원, 암사지도, 「현대문학」, 1956, 11.


⑥ 한말숙, 신화의 단애, 「현대문학」, 1957, 6.


⑦ 이러한 실업은 50년대 소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손창섭의 「유실몽」이나 「혈서」에서 보듯 남성들의 무능력은 일할 곳이 없다는 점과 밀접하다.


⑧ 이범선, 오발탄, 「사상계」, 1961, 2.


⑨ 이재선, 앞의. 책, 216~217쪽.


⑩ 송병수, 행위도생(원제, 嘗膽), 「문학춘추」, 1964, 8.


⑪ 심헌섭, 법질서와 윤리, 현대사회와 철학, 문학과 지성사, 1981. 201~202쪽.

도덕은 첫째로 인간의 모든 실천에 대한 정당성의 총체로서의 도덕이 있다. 이는 인간 보편의 도덕 즉 인본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윤리라고 한다. 둘째로 법적 실천의 뺀 모든 인간 개인의 실천에 대한 덕의 요청으로서의 도덕이다. 이는 선의 이념에서 요청되어진 자율 도덕이라 할 수 있으며 도덕으로 총칭된다. 셋째로 비록 법적 실천과는 무관하나 사회적으로는 사실상 효력 있는 구속성으로써의 도덕이다.

이는 도덕의 사회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에토스‧실증 도덕‧인습적 도덕‧사회적 도덕‧습속 등으로 부를 수 있다. 넷째로 자율도덕에서 출발하지만 교조화된 도덕을 들 수 있다. 이를 종교도덕 또는 숭고도덕이라 할 수 있다.


⑫ 전광용, 진개권, 「문학예술」, 1955, 8.


⑬ 강신재, 해방촌 가는 길, 「문학예술」, 1957, 8.


⑭ 강신재, 앞의 책.


⑮ 김미현, 가족(假族), 천국보다 낯선 가족(家族) - 최근 여성소설에 나타난 가족의 질병, 「포에티카」, 1997, 여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머니일 때이다. 여성이 변화하여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바로 모성 안에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능한 어머니에 대한 신화는 한편으로는 완벽한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낳기에 여성들에게는 “양날이 선 칼”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대표적인 일례로 들 수 있는 것이 한석봉의 어머니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널리 알려진 맹자의 어머니다. 즉 모성신화는 여성이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긍정적인 면과 여성을 가정에 묶어 사회적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부정적인 양면성을 가진다.


⑯ 김동립, 주인 없는 성, 「사상계」, 1961, 6.


⑰ 김태승, 미군정기 노동운동과 전평의 운동노선, 해방전후사의 인식 3, 한길사, 1988. 311쪽. 참고.

삼팔선 이남에 주둔한 미군은 주어진 해방이라는 성격을 가시적으로 증명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외국인의 役割交代로서 일본인들에 이어 등장해 식민시대를 청산하게 하는 해방자의 權威像을 가진다. 그러나 美軍政의 통치과정을 통해 해방자가 아니라 점령군의 성격이 드러난다.

미군정은 식민시대에 대한 制度的․人的 淸算에 관심조차 없었으며 오히려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 왜냐하면 미군정은 한국사회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패배한 일본사회의 일부분으로 한국사회를 파악하고 전쟁에 패한 국가의 일정지역을 지배하는 형태로 38선 이남에 진주했기 때문이다.

점령군으로서의 미군정의 성격은 제반 법령이나 명령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1945년 9월 7일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맥아더 사령관의 이름으로 발령된 포고령 제 1호를 보면 <“전승국”은 금일 북위 38선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한다>고 직설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또한 <38선 이남의 조선지역 및 동지역의 주민에 대한 일체의 행정권은 당분간 나(맥아더)의 권한하에 둔다(제1조)>라든가 <일체의 주민은 나 및 나의 권한으로 발령된 명령에 대해 신속히 “복종”할 것(제3조)>등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군정의 점령군적 성격이 민중의 삶과 관련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⑱ 하근찬 외, 왕릉과 주둔군, 전후정예작가신작15인집, 육민사, 1963.


⑲ 임규찬, 전후상황과 사회적 재편기의 문학, 한국현대대표소설선 9, 창작과 비평사, 1996. 428쪽.


⑳ 장사선, 전쟁의 여진과 전통에의 향수, 한국현대작가연구, 1989. 103쪽.


㉑ 전후사회의 가족해체는 전쟁의 폭력성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피난민의 경우 대체로 가족의 해체를 동반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가족해체는 실향의식이나 영토적 분단의식을 낳으며 離散文學의 기본적인 모티프가 된다. 둘째, 가족구성원의 상실에 따른 결손가족의 형태를 가진 가족해체이다. 아내가 남편을 잃거나 남편이 아내를 잃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셋째, 전쟁고아에서 볼 수 있는 부모의 상실에 따르는 완전한 가족해체이다. 이상과 같은 가족의 해체는 도덕의 부재 요소들과 깊은 영향관계를 가진다.

즉 가족의 해체가 원인이 되어 생활난이나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족은 사회적 조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단위로 혈연공동체의 특성을 갖는데 1950년대의 경우 가부장적 종적 구조의 대가족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전쟁의 폭력성으로 인한 가족구성원의 상실이 일어나 종적 관계의 구조와 대가족의 형태가 파괴된다. 따라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윤리의식에 급격한 변화가 뒤따르며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적‧윤리적 가치관의 변화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50년대의 가족해체는 산업화의 영향 아래 대가족이 핵가족화를 시작하는 60년대의 경우와 달리 전쟁의 이념적 폭력성에 기인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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