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의 좌우대립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포로수용소의 현실은 또 하나의 한국전쟁으로 이해할 수 있다.①
한국전쟁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데올로기의 대결과 충돌로 본다면 그러한 현상은 포로수용소의 현실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념의 이름으로 전쟁터보다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살육이 자행되어 세기말적인 비극의 축도로 이해할 수 있다.②
또 다른 이유를 든다면 포로수용소에서 좌익이 독자적으로 살육을 감행한 것이 아니라 북한정전협상대표인 남일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적대적 의도 아래 조직적인 폭력을 자행했다는 증거이다. 정전협상으로 전투행위가 고착상태에 머물러 있긴 했지만 한국전쟁을 거시적 안목에서 살펴볼 때 포로수용소의 현실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포로 수용소에서 좌우익 대결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포로 수용소의 체험이 삶의 무기력과 무의미로 형상화한 손창섭의 「生活的」이 있다. 둘째, 포로 수용소에서 적대적 의도에 기초하는 이념목적적 폭력을 보여주는 장용학의 「요한詩集」이 있다. 셋째, 좌우충돌의 폭력성을 제시하는 곽학송의 「綠焰」이 있다. 넷째, 좌우대립의 구체적인 현장으로서 포로수용소의 이념목적적 폭력을 형상화한 강용준의 「鐵條網」이 있다. 이외에도 포로생활을 다룬 이호철의 「나상」, 오상원의 「죽음에의 훈련」 등이 있다.
「生活的」은 포로수용소의 체험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지 않으나 체험의 후유증으로서 삶에 대한 체념을 형상화한다. 전쟁이 터지자 남들처럼 기피하지 못하고 공산군에 끌려갔던 이유가 “될 대로 되겠지” 라는 성격에 있지만 포로수용소의 체험은 그러한 우유부단한 성격에 무기력과 자멸의식의 형태를 가진 삶의 체념을 덧붙인다.
東周의 감은 눈에는 포로수용소 내에서 적색 포로에게 맞아 죽은 몇몇 동지의 얼굴이 환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올가미에 목을 걸린 개처럼 버둥거리며 人民裁判場으로 끌려나가던 자기의 환상을 본다. 동시에 벼락같이 떨어지는 몽둥이에 어깨가 절반이나 으스러져 나가는 것 같던 기억.③
옆방 “순이의 최선을 다한 생활”은 신음 소리를 가리키는데 동주가 아껴주기로 한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목숨을 확인하는 소리가 아니라 죽음의 전주곡으로서 신음소리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의식의 기저에 수용소 체험이 놓인다.
아편 장사치에서 “산수옥” 식당 주인으로 변신하는 등 생존의욕을 불태우는 봉수나 우여곡절 끝에 피복공장에 다니면서 삶의 희망을 잃지 않은 춘자와 비교할 때 동주의 체념은 타인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무관심의 양상을 띤다.④
먼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봉수가 평소 눈독을 들이던 춘자를 부부인양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동주는 아내와 다름없는 춘자임에도 아무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무관심은 우물 사건을 통해 나타난다.
동주가 우물에 똥을 넣었다고 주장하면서 몰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변호의 생각이 전혀 없으며 정신병자 취급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돌아누워 외면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순이의 죽음을 확인하고 입 맞추면서 “살아 있으니까 죽을 수 있다”고 자위하는 결말은 삶에 대한 체념이 자멸의식으로 형상화되는 부분이다.⑤
이처럼 포로수용소의 체험은 작품 내적 인과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어떠한 기대나 희망도 상실하게 하고 급기야 자신의 삶조차도 무의미로 환치시켜 놓는다.
「요한詩集」은 포로수용소의 현실을 누혜를 통하여 제시한다. 누혜는 인민의 영웅이지만 포로수용소에서 좌익에 가담하지 않는다며 반동분자로 몰린다. “타락한이며 반역자이고 인민의 적”으로 규정 당하고 구타당한다. 다음과 같은 포로수용소의 현실 때문이다.
철조망 안에서의 이 두 번째 전쟁은 완전히 자기의 전쟁이었다. 순전히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자기의 전쟁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생존의 권리를 포기하는 거와 마찬가지였다.⑥
외관상 세상과 격리되었지만 수용소 안에서 이념적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북한정전협상대표이자 정치보위부 책임자인 南日과의 연락망이 있고 수용분대의 대표가 공산포로이기 때문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시체를 절단해 화장실에 버리는 가혹한 폭력은 흔히 있었는데 좌익이든 우익이든 어느 한 쪽에 가담하지 않은 누혜가 인간의 유한성을 확보로 인식하고 자살 하지만 죽은 후에도 “사상과 계급과 인민의 이름으로” 눈알이 뽑힌다. 포로수용소에서 좌우익의 충돌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임을 분명히 하는 대목이며 시체에 또 다른 죽음을 가하는 반인륜적인 이념목적적 폭력의 잔인성을 여실히 고발한다.
「綠焰」은 수용소 포로들의 분산수용 문제를 둘러싼 공산포로와 반공포로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덕보를 통해 형상화한다. 당시 공산포로들은 정전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된 전쟁포로의 송환문제를 두고 남일의 지령에 따라 좌우익 분산수용과 소규모 수용을 강렬히 반대한다. 실제로 1952년 6월 10일 거제도에서 보트너 준장의 지휘 아래 분산수용 작전이 있었다. 이 작전으로 미군 1명이 죽고 14명이 부상당하고 포로들은 31명이 죽고 139명이 부상당한다.⑦
덕보는 여관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사환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계급관으로 보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한다. 덕보는 세상이 뒤집혀도 피난간 주인이 어서 돌아올 수 있는 예전의 평화를 바라며 순구의 변화를 못마땅해한다. 순구는 덕보와 동일한 처지에 놓인 인물인데 약삭빠르고 귀가 여리다. 때문에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서 영등포 내무부에서 일하고 여동생 순실도 여맹 간부로 일하게 한다.
순구의 권총 오발 사고로 인민군 병원에 입원한 덕보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인민군이 되고 급기야 수용소 포로로 전락한다. 그러나 애당초 공산주의 이념을 탐탁지 않게 여긴 덕보는 윤선생을 따른다. 의용군으로 끌려나오기 전에 “서울 어느 중학교의 선생으로 있었다”는 윤선생은 우익 성향의 인물로 수용소 당국의 분산수용을 지지한다. 당연히 분산수용을 반대하는 공산포로의 표적이 되고 윤선생을 보호하는 덕보 역시 마찬가지다. 공산포로들이 자행하는 잔인한 폭력은 전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날이 갈수록 캠프 안에는 참혹한 꼴만 늘어갔다. 사람의 목숨은 벌레의 수명처럼 하찮았다. 사람의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상상도 못할 잔인한 방법으로 행하여졌다. 기세를 올리기 위하여, 분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하여, 수건 같은 것으로 피살자의 입을 막고 수십 명, 수백 명 떼를 지어 그 위에 디디고 서서 적기가를 부르며, 인민항쟁가를 부르며, 함성을 울리며 압살하는 것이었다.⑧
옆자리의 어린 반공포로가 덕보로 오인되어 머리통이 박살나 죽은 사건이 일어나고 갈가리 찢긴 시체는 똥통에 담겨 버려진다. 분산 수용이 있는 날 공산포로들은 덕보의 수용분대에 수제무기로 무장하고 쳐들어와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윤선생은 쇠창을 맞아 죽고 덕보를 설득하려는 순구도 죽고 덕보 역시 죽는다.
좌익의 폭력이 이념적 성격이라면 우익의 폭력은 개인의 생존이 걸린 대항의 차원에서 비롯한다. 분산수용은 자유의사에 따른 포로송환을 추진하기 위한 방편인데 지령에 따라 전원 강제송환을 주장하는 공산포로들은 분산수용을 반대한다. 당연히 반공포로와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덕보와 윤선생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또 하나의 전쟁터로서 포로수용소를 상정할 수 있다.
「鐵條網」은 이념목적적 폭력을 형상화한다. 민수는 반공포로 결사대의 책임자로 공산포로의 진영을 전복하려다 기영의 배신으로 오히려 지하실에 감금당한다. 공산포로가 자행하는 반공포로에 대한 폭력은 포로수용소임에도 전쟁터 이상으로 잔인해서 안전에 대한 갈망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야기의 이면에는 강제송환이냐 자유송환이냐 하는 예민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으며 공산포로들은 정
치교양 강좌뿐만 아니라 독보회․당회 등을 통해 “철조망을 뚫고 나가 거제도를 해방시킨다”며 점차 세력을 확장한다. “하얀 청년”의 머리통이 용변통에 담겨져 버려지는가 하면 김선생이 변소에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폭력을 당하고 죽은 후이다. 민수를 비롯한 반공포로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결사대의 공산진영에 대한 전복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 사건은 이념의 대결 특히 세력확장을 계속하는 공산포로 진영에 대한 반공포로의 생존권 확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패함에 따라 가혹한 보복을 당하는데 결사대 모두가 고문에 못 이겨 죽는다. 민수도 예외는 아니다. 가까스로 지하실에서 탈출하고 動哨의 눈을 피해 철조망을 넘어가려 하지만 결국 죽는다.⑨
강제송환이냐 자유의사에 따른 송환이냐를 놓고 벌어진 대립은 남일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공산진영의 이념적 성격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잔인성에서 훨씬 우세한 공산포로 진영의 일방적인 승리로 매듭지어져 이야기는 이념적 폭력의 맹목성을 강조한다. 또한 익명성은 불특정 다수의 대표성을 가지는데 공산포로 진영의 인물들이 익명으로 처리된 부분을 통해 구체적인 작중인물로서 공산포로에 의한 폭력이라기보다는 이념 자체의 폭력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또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성격의 꿈이 에피소드로 제시되어 있다. 하나는 강박관념에서 비롯하는 꿈이며 다른 하나는 복선 기능을 하는 꿈이다. 둘 다 죽음을 공통적인 요소로 가지고 있다.
강박관념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내향적 감각형(introverted sensation type)의⑩ 무의식에서 비롯한다. 민수의 경우 “하얀 청년”이 죽은 얘기를 들은 후 꿈에서 그 사내를 본다. 사내는 소복을 입고 공회당 앞 하얀 기가 매어 있는 깃대 밑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썩은 나무토막 넘어가듯 쓰러진다. 죽은 것이다.
민수는 하얀 사내의 죽음이 억울하다는 가치판단을 내린다. “하얗다”는 형용사의 색채 이미지가 순수․청결․청순 등 맑고 밝은 점에서 사내는 죽어야할 죄가 없다는 간접적 암시로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민수의 판단이 결사대로 나서게 하는 동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꿈에 대한 반추에서 얻어지는 가치판단을 통해 서사적 인과성을 획득하고 있다.
복선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암시를 뜻한다. 독자에게 심리적 준비단계를 거치게 하고 사건이나 상황의 타당성을 사전에 확보하는 서술기법의 하나이다. 민수는 지하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꿈을 꾸는데 자신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는 결말부분에서 민수가 철조망에 걸린 채 죽는 것이 자살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외면적 의미는 지하실로부터의 탈출이지만 내면적 의미는 철조망이라는 不自由의 상징에 온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으로 해석의 여지를 준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포로수용소에서 좌우충돌의 양상은 이념의 현실화를 위한 이념목적적 폭력성을 보여주는 경우와 수용소 체험이 심층심리에 깊이 각인 되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주류적 경향이라면 후자는 지류적 경향에 속한다. 포로수용소의 현실이 좌우대립의 이념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의 지령을 받은 공산포로들이 이념화·조직화·무장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포로의 폭력은 이념목적의 성격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강제송환을 위한 폭력이다. 반면에 반공포로의 폭력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최소한의 저항 내지는 대항의 명분을 갖는다. 반공포로에게 강제송환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포로수용소의 체험은 전쟁체험과 다를 바 없어 그 전흔이 심층심리에 뿌리 박혀 정상적인 삶에의 의욕이나 욕구를 저하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삶에의 무의미로 형상화되는데 인간에 대한 어떠한 기대나 희망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로수용소는 축소된 戰場으로서 한국전쟁의 속성을 내포한다. 소련의 팽창주의에 힘입은 공산지역의 확장이라는 북의 적대적 의도가 실천이념으로 작용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면 포로수용소 역시 남일을 정점으로 해서 강제송환이라는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이념목적적 폭력의 형태를 가진다.
두 경우 모두 적대적 의도의 선행에서 비롯하는 이념적 폭력을 보여준다. 또한 반공포로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념의 현실화보다는 개인의 생존 차원에서 대항의 폭력을 행사하는데 이 역시 북쪽의 남침으로 인해 방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남쪽의 경우와 같다.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동족살상의 속성 또한 한국전쟁과 포로 수용소의 현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처럼 포로 수용소가 한국전쟁의 축소판이 될 수밖에 없는 상동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① 할 베터, 장행훈 옮김, 거제도 포로수용소, 「신동아」 1966. 12. 225쪽 참고.
포로수용소에서의 격렬한 좌우 대립과 충돌은 대규모의 집단 수용과 좌우익을 분산 수용하지 않아서 비롯된 현상이다. 또한 수용소 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힘의 사용을 처음부터 배제한 포로정책, 포로수용소의 운영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령관들, 감시병의 부족 등등의 포로수용소의 내적 문제점을 거론할 수 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좌우익 대립은 포로 전체를 강제 소환하려는 북한정전협상대표인 南日의 지령에서 비롯된다. 자유의사에 따른 송환을 주장한 유엔군 사령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바꾸기 위한 지령이었다. 남일은 소련 군대를 따라 1945년 북한으로 들어온 36명의 소련태생 한국인 2세로 조직된 협회의 발기회원 출신으로 판문점에서 정전협상을 지휘하면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인 정치보위부를 지휘하고 있었다.
남일의 지령에 따라 위장 투항하여 수용소에 침투한 공산포로는 통신망을 구축하였다. 수용소 안에서 한 수용분대로부터 다른 수용분대로 명령과 정보를 전달할 때와 북한에 있는 공산당국에 메시지를 밀송하는 것도 주로 전쟁포로를 치료해 주는 미육군 제64야전병원에서 이루어졌다. 각각의 수용분대마다 한 명씩 대표를 두었는데 대부분 공산포로 두목이 그 직책을 맡았다.
공산포로들은 반공포로를 위협해 잠잠하게 만든 후 폭력을 행사해 지배력을 강화하였다. 그들은 포로가 된 후에도 여전히 戰鬪員으로 남아서 南日의 명령을 몰래 받아 수행하였다. 또한 수용분대를 독립된 공산요새처럼 운영했다. 전쟁포로들을 군대의 부대로 편성해서 훈련을 실시하고 데모를 일으키고 정치교육과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강좌도 열었다.
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가장 높은 곳에 人共旗를 달았다. 私製武器도 만들었다. 공산포로가 장악한 수용분대와 반공포로가 장악한 수용분대 사이의 충돌은 불가피했으며 自意送還을 놓고 정치적 색채가 짙은 충돌이 일어났다.
② 김우종, 현역작가산고, 「현대문학」, 1959. 9.
③ 손창섭, 생활적, 「현대공론」, 1954, 11.
④ 순이에 대한 관심은 의무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生에 대한 自蔑意識의 형상화로 볼 수 있다. 왜냐면 순이에게서 동주가 관심 가지는 것은 오직 신음소리뿐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손창섭 문학의 특징을 人間侮蔑에 있다고 언급한 유종호의 지적처럼 순이와 동주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의 동물적 기능만 가진 소외된 인물이다. 즉 社會的 關係網을 상실한 인물이다.
순이가 혈연적 관계가 없는 의붓아버지 봉주와 관계의 단절에 놓여 있다면 동주는 사회적 활동 능력을 상실한 식물적 인간이다. 작품 內的 敍事論理에 따르면 동주의 사회적 관계망의 상실 원인은 포로수용소의 비인간적인 체험이다.
⑤ 김양호, 전후실존주의소설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1992. 70∼71쪽 참고.
손창섭의 문학적 특징을 들어 자생적 실존주의 작가로 본다. 즉 절망의 극한에 매몰된 인물이 비록 실존적 자각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당시의 절박했던 삶의 양상을 형상화하기 때문에 자생적 실존주의 작가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실존주의 소설의 주인공이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異議의 餘地가 많다. 「生活的」의 동주 역시 절망의 상황에 매몰되어 삶의 무의미를 형상화할 뿐이다.
⑥ 장용학, 요한시집, 「현대문학」, 1955, 7.
⑦ 할 베터, 앞의 책, 258쪽.
⑧ 곽학송, 녹염, 「현대문학」, 1955, 2.
⑨ 할 베터, 앞의 책, 210쪽.
南日의 포로 수용소에 미친 영향은 단적으로 다음과 같다. “南日은 냉정하게 포로 가운데서 반공포로들의 반대(강제송환에 대한 반대 - 연구자 주)를 질식시키기 위한 顚覆·테러·정치적 殺人組織을 지령하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共産挑戰의 武裝部隊로 변화시켰다.”
⑩ 이부영, 분석심리학, 일조각, 1998. 168∼170 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