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폭력의 이원적 양상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1950년대 소설에서 戰場의 폭력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폭력에도 주목할 수 있다. 즉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이념목적적 폭력 이외에 적대적 감정에서 비롯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을 염두에 둘 수 있다.
특히 민간인 사이의 폭력은 동족살상과 형제살해의 성격을 갖는 이념도구적 폭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념목적적 폭력이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이데올로기 갈등에서 비롯한다면 이념도구적 폭력은 봉건적 신분제도의 인습 때문이거나 개인적인 감정적 대립 또는 감정적 소외에서 비롯한다.①
따라서 이념도구적 폭력은 적대적 감정이 누적된 갈등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외양은 이념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의 형태를 띠지만 폭력 행사의 주체와 피해자인 객체 사이에서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이념적 갈등 양상은 갖지 않는다. 설령 갖더라도 폭력 행사를 위한 허위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념도구적 폭력은 외면적으로 이념적 성격을 차용한 폭력이며 내면적으로는 적대적 의도보다 적대적 감정이 우선하며 폭력행사의 주체와 피해자인 객체가 이념목적적 폭력과 달리 혈연관계를 포함해서 일정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성이 있다.
즉 한국전쟁의 동족상잔이라는 속성에 구체성을 더해줄 수 있는 요소로 이념목적적 폭력과 더불어 이념도구적 폭력을 꼽을 수 있다. 이념목적적 폭력과 이념도구적 폭력은 폭력 행사의 원인과 목적에 따른 임의적 분류이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폭력이 이념도구적 폭력은 아니다. 폭력을 형상화의 유형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이념목적적 폭력의 맹목성을 보여주는 정한숙의 "고추잠자리"가 있다.
둘째, 이념목적적 폭력의 남용성을 보여주는 강신재의 "落照前"이 있다.
셋째, 적대적 의도보다 적대적 감정이 선행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은 정한숙의 "古家"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봉건적 신분제도의 인습에서 비롯한다.
넷째, 감정적 소외에서 비롯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은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과 강신재의 "눈물"에서 찾을 수 있다.
다섯째, 정신적 형태로 가해지는 이념도구적 폭력은 선우휘의 "불꽃"을 꼽을 수 있다.
여섯째, 반인륜적인 부모살해에 이르는 이념도구적 폭력의 맹목성을 형상화한 이범선의 "殺母蛇"가 있다.
이외에도 하근찬의 "山中寓話"·"산울림", 이문희의 "하모니카 계절", 오유권의 "월광"·"황량한 촌락" 등이 있다.
"고추잠자리"는 이념의 현실화를 목적으로 하는 폭력이 절정(climax)에 놓여 있다. 절정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하는 플롯의 개념에 속하는 서사적 흐름의 한 단계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절정은 갈등의 최고점인데 이 작품에서 절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 부여한 無知의 상태에서 知의 상태로 이행하는 결정적 계기로써 발견이다.②
서사적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절정에 이념목적적 폭력의 맹목성에 대한 발견이 놓인다는 점은 이념목적적 폭력의 맹목성이 주제의식을 묵시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상당한 대장동무는 바우 식구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바우를 데리고 가 함께 빨치산 생활을 한다. 바우는 토벌대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운 대장동무와 여비서를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장동무는 해방구 마을에서 만난 바우 식구가 국군을 도와주었다 하여 즉결재판을 통해 사살하려 한다. 서사적 흐름에서 절정(climax)이다.
“대장동무!”
바우는 겨우 이렇게 소리쳤다.
“내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모르겠수?”
대장동무의 얼굴엔 싸늘한 비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바우는 크게 실망했다. 아니, 그의 머리 속엔 원망이 구름 일 듯 했다. 곱순이와 어머니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 해도 자기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 용서하여 줄 믿었던 그로선 대장동무의 표정이 지나친 것 같았다.
“동무! 동문 벌써 잊어버렸소! 조국 해방을 앞둔 지금 누구에게나 여하한 사정(私情)도 있을 수 없소!”③
어머니와 곱순이를 악질 반동으로 몰아 붙여 “인민의 이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장동무의 논리 속에서 이념목적적 폭력의 맹목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우 식구와 안면이 있는 것은 물론이요,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음에도 대장동무는 이념의 현실화를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맹목성에 해당한다.
그의 논리는 적대적 의도를 좇으며 “조국 해방”이라는 적대적 의도 속에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서 이념목적적 폭력의 절대원칙이 적대적 의도임을 알 수 있다. 바우는 이념목적적 폭력의 맹목성을 깨닫고 자연인으로서 자신으로 되돌아가는데 바우의 깨달음이 곧 無知에서 知의 상태로의 이행이다.
"落照前"은 결말에서 이념목적적 폭력의 남용을 보여준다. 결말은 플롯에서 서사적 흐름의 마지막 단계이며 단편소설의 경우 작품 전체의 의미가 해명되고 제시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결말은 작품이 지닌 중심 의미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기능을 한다.
모든 것이 끝났음을 ― 그녀는 물론 알고 있었다. 올바르지 않게, 그것은 열 일곱 살의 그때부터서도 어딘지 잘못처럼 계속되어 나온 모든 것이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그녀는 자기에게는 무엇인지 매우 미진한, 그냥 두고 가서는 안될 무엇이 남겨져 있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렇게 죽는다는 그 일마저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 잘못 같은 것의 계속이라고 여기면 그녀는 마구 가슴이 벌떡이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이었다.④
옥례의 죽음은 두 가지의 층위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옥례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데 강제로 결혼한 덕구 때문에 맞는 비극적 죽음이다.⑤ 또 하나는 죄에 대한 벌로서의 죽음이다. 이는 이념목적적 폭력의 남용성을 보여준다.
옥례는 세상이 바뀐 틈을 타 빨간 완장을 차고 다니는 덕구에게 짓눌려 인민군에게 밥을 지어준다. 인민군이 물러가고 국군이 섬으로 들어오자 끼니 제공이 빌미가 되어 부역자로 분류 당한다. 아무리 부역행위로 본다해도 총살할 정도의 죄질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순응했을 뿐인데도 여지없이 이념적 폭력이 가해진다. 이념목적적 폭력의 남용이다. 비단 북쪽뿐만 아니라 남쪽 역시 피아만 있을 뿐이라는 흑백논리와 적대적 의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념목적적 폭력의 남용은 매우 광범위한 현상이어서 민간인의 피해는 군인들보다 더욱 컸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⑥
"古家"는 봉건적 신분제도의 인습에서 비롯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을 보여준다. 태식은 장동 김씨 종갓집의 서자이다. 근대적 교육의 혜택을 받은 필재는 서자 삼촌인 태식에 대해 봉건적 시선을 갖지 않고 있으나 조모는 그렇지 않다.
필재가 태식의 학생복을 마련해주자 조모가 “종년의 아들에게 꼴사납게 양복은 무슨 양복이냐”고 핀잔을 주는 부분에서 조모의 신분제도에 얽매이는 인습적 사고가 드러난다. 즉 조모와 태식 사이에서 신분갈등이 일어난다. 따라서 공산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과 이념의 현실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분갈등에 시달린 끝에 태식은 자연스럽게 좌익활동을 한다.
글쎄 왜 그런 일을 하고 다니냐는 필재의 말에 종년의 자식이 세상에 났다 공산당을 하지 않으면 무엇하며 살겠느냐는 대답엔 필재도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섭섭했던 것이다.⑦
마을이 공산화되자 이씨 사람들이 김씨 사람들에게 당당히 고갯짓을 하는 것도 태식과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한국전쟁을 계기로 내연하던 갈등이 격발적으로 노출되고 신분계층의 역전적인 수직이동 현상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원인은 이념도구적 폭력의 행사에 있다.⑧
봉건적 신분제도의 인습에서 비롯하는 적대적 감정이 외면적으로 이념적 폭력의 형태를 띠는 경우를 이념도구적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념목적적 폭력과는 달리 적대적 의도보다 적대적 감정이 우선한다. 태식은 산으로 도망가기 전에 조모가 거처하던 “밑의 채”를 불태운다. “밑의 채”는 조모를 상징한다. 그 폭력에는 이념의 현실화를 위한 의도가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단지 이념적 힘을 가진 태식이 서자로 천대받은 사실에 대한 감정적 앙갚음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의 주체와 객체 사이가 혈연관계이며 누적된 적대적 감정이 작용하고 이념적 힘을 빌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이념도구적 폭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 가문을 지탱해온 봉건적 삶의 질서와 가치체계가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동요를 보이다가 드디어는 전쟁이라는 외적 충격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해체되고 붕괴되는 과정을⑨ 그린 작품으로 평가하는 「고가」에서 이념도구적 폭력에 대한 언급은 이야기의 의미 층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내적 요소이다.
"학마을 사람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념도구적 폭력은 적대적 감정에서 비롯하는데 두 요소는 서사적 인과관계로 짜여져 있다. 인과성은 플롯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즉 이야기는 사건서술의 계기성을 의미하지만 플롯은 인과성을 뜻하기 때문이다.⑩
봉네가 덕이를 신랑으로 선택하자 잔치가 있던 전날 바우는 마을을 몰래 떠난다. 봉네를 덕이에게 빼앗기자 감정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이념도구적 폭력을 가져오는 원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공장을 다니다가 마을로 돌아온 바우는 “착취니 반동이니 영웅적이니 붉은 기니” 하는 따위의 말들을 내뱉는다. 봉네와 덕이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바우는 인민군을 앞세워 학마을을 손아귀에 쥐고자 학을 쏘아 죽이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에도 학마을 사람들더러 학나무 밑으로 모이라고 했다. 한 사람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잔뜩 화가 난 바우는 마을에 다 들리도록 고함을 쳤다.
“반동… 반동…”⑪
바우의 이념도구적 폭력이 극에 달하는 부분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난 후 덕이와 봉네의 집뿐만 아니라 학나무마저 불태운 행위이다. 바우가 봉네로부터 선택받지 못하자 감정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마을을 떠난 사실과 친분관계가 있는 덕이와 봉네의 집, 전통적인 내적 통합의 매개체인 학나무와 학이 폭력의 대상이 된 점은 적대적 감정과 이념도구적 폭력의 인과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古家"가 家系型이라면 "학마을 사람들"은 聚落型의 관계공간을 근거로 힘의 역전관계를 묘사한다. 즉 취락집단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내적 통합의 와해와 극복과정을 다루고 있다.⑫
"눈물"에서도 이념도구적 폭력이 보인다. 송정화는 평소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그녀는 어릴 때의 화상으로 보기에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구역질나는 추물이기 때문이다.
얼굴의 피부가 주욱 한 장으로 내려 밀린 데다가 아래턱에서는 그것이 주머니처럼 우글우글 매어 달렸는데 눈과 코와 입이 빨갛게 까뒤집히거나 실그러져 가지고 남아 있다 할 따름이다.⑬
이웃들로부터 따뜻함을 받지 못해 “사람은 본래부터 모두 쌀쌀맞고 매정하다”고 여긴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채석장에 일을 나가서도 송정화는 동네 여자들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혼자 일한다.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는 것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난 뒤 안경을 쓴 民靑 청년으로부터 “여성 동무”라는 말을 듣고 나서이다.
사람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송정화는 한없이 기쁨을 느낀다. 이후 그녀는 여맹의 모임에도 적극적이다. 금속을 수거해야 한다는 여맹원의 설명도 다 듣지 않고 찬성한다. 이웃 사람들은 난처해 하지만 송정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대접을 받는 대가로 공산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평소 외면하고 무시하던 이웃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가볍게 볼 수 없게 된다. 송정화의 경우 공산당의 편에 앞장서는 행위가 정신적 형태로 마을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이념도구적 폭력이다. 그녀 뒤에 민청과 여맹이 있고 친분관계가 있는 이웃 사람들이 폭력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불꽃"은 서사적 흐름의 절정에서 인민재판을 매개로 하는 정신적인 이념도구적 폭력과 현의 대항을 보여준다. 연호는 현을 찾아와 공산당 일을 같이 하자고 제의한다. 조부의 영향을 받은 현은 소극적 개인주의자⑭ 또는 비개성적 허무주의자로⑮ 규정할 수 있는데 개인적 삶에 자족한다며 거절한다.
연호는 현에게 “피를 보이고 그 반응을 보고자” 인민재판을 이용한다. 즉 폭력을 보여줌으로써 공포심을 심어주고 그 결과로 현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인민재판장에 끌려온 사람 중에는 현의 동료였던 조선생의 부친도 있다.
첫 번째의 희생자, 국민회 회장이 언도를 받자, 군중의 까닭 모를 아우성과 함께 집행자들의 손에 쥐어졌던 굵다란 곤봉이, 얼굴이 거의 흙빛이 된 반백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 살이 떨어져 나가는 무딘 소리.⑯
연호가 정작 폭력을 가하는 쪽은 인민재판의 희생자인 국민회 회장이 아니라 현이다. 따라서 정신적 차원에서 가해지는 이념도구적 폭력으로 볼 수 있다. 현은 인민재판이 살인이라며 보안서원의 총을 빼앗고 연호를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마을을 빠져나간다. 연호가 의도한 반응과 달리 현은 인민재판이라는 이념목적적 폭력에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자신에게 정신적인 형태로 가해지는 이념도구적 폭력에도 저항한다.
이러한 저항적‧적극적 행동은 소설 내적 흐름에서 현의 개인적 삶을 사회적‧민족적 삶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인데 있어야만 하는 한국의 젊은 초상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⑰
"殺母蛇"는 이념도구적 폭력의 맹목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살모사는 간접적 제시로 그려진 평면적 인물이며 윤리관을 기준으로 보면 부정적 인물이다.⑱ 살모사의 폭력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목적이 변하는데 성격적 폭력과 이념도구적 폭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의 잔인성부터 탄광 투전판에서 사무직원을 죽이는 것까지는 성격적 폭력이고 그 이후는 이념도구적 폭력이다.
작품 내적 요소들의 관계망에서 성격적 폭력은 비정상적인 잉태과정에 뿌리를 둔 잔혹한 성격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성격적 폭력에 기인하는 탄광 투전판에서의 우연한 살인은 공산당에게 중하게 쓰이는 계기가 되어 성격적 폭력과 이념도구적 폭력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민청원이 된 살모사는 정식 당원이 되기 위해 당과업에 더욱 충실한다. 지주의 땅과 집을 빼앗고 추방하는 일이다. 외할아버지도 예외일 수 없다. 살모사가 혈연관계에도 객관적이며 냉정한 자세를 갖고 공산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듯 하지만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써 이념도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제 정식 당원이 되기만 하면 무슨 뚜렷한 자리가 하나 주어질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더욱더 열성을 내어, 꼭 출세를 하고야 말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었다.⑲
폭력적 자질을 이용하여 출세하겠다는 것이 살모사의 목적이다. 따라서 혈연관계인 외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생부인 최서방도 죽인다. 폭력의 피해자가 혈연관계라는 점과 공산 이데올로기의 현실화가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살모사의 폭력을 이념을 도구로 이용하는 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다만 적대적 감정 대신에 성격에서 비롯하는 맹목적 잔인성이 놓이는 예외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인물이 추상적 개념을 의미하도록 하는 관념의 알레고리가 차용되었다. 즉 미덕‧악덕‧희망 따위의 추상적 실재물을 의인화하는 기법이다. 좀더 명백한 알레고리에서는 관념어를 작중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한다.⑳
이와 같은 추상개념의 인물화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 서술기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내용의 구체적 실재를 형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내용과 형식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단적으로 예시한다.
초점화자의 초점대상인 인물이 살모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생김새도 살모사와 흡사하고 생모와 생부를 죽이는 것도 살모사의 습성과 유사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관념의 알레고리가 엿보이는 부분은 결말이다.
이렇게 책을 보고 앉아 있는 내 걸상 밑에서, 대가리가 삼각형인 살모사가 그 바늘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사르르 기어 나와 산뜻한 몸뚱아리로 나의 벗은 발목을 감으며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질 것만 같은 것이다. 아니, 벽에 세워 놓은 책장 밑으로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전축 밑에서도, 방석 밑에서도, 창의 커튼 뒤에서도, 심지어는 천장의 형광등 위에서도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㉑
소급제시된 과거의 살모사는 사람이지만 결말부분에서 뱀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살모사의 습성을 매개로 관념의 알레고리 기법을 활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념적 공포라는 추상적 개념을 부모살해도 서슴지 않는 이념도구적 폭력의 행위자인 살모사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이념전쟁의 성격을 갖는데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전쟁 수행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이념적 폭력의 양상은 두 부류로 정리할 수 있다.
이념의 현실화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폭력으로서 인민재판으로 대표되는 이념목적적 폭력과 외면적인 동기는 이념의 현실화를 목적으로 취하지만 내면적 동기는 누적된 적대적 감정의 해소로써 혈연관계를 비롯해 친분관계가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념도구적 폭력이다.
이념목적적 폭력은 맹목성과 남용성의 현상을 지적할 수 있으며 과잉 폭력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맹목성은 이념지상주의자의 비인간성과 비윤리성을 보여주며 남용성은 흑백논리에 기초한 단순한 감정적 판단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념도구적 폭력은 이념에 종속하는 적대적 의도보다 누적된 적대적 감정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봉건적인 신분제도의 인습에서 비롯하는 경우와 감정적 소외감에서 비롯하는 경우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폭력의 형태로 가해지는 경우 등이 있다. 동족살상과 형제살해의 광범위한 현상은 이념도구적 폭력의 행사로 말미암은 것으로 한국전쟁의 내전적 속성을 증명한다.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이념목적적 폭력을 이념을 앞세운 한국전쟁의 거시적 폭력으로 볼 수 있다면 적대적 감정이 선행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은 한국전쟁의 미시적 폭력으로 형제살해와 부모살해의 결과를 낳는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일정한 친분관계나 혈족관계가 성립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은 한국전쟁의 내전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 단서가 되는데 세대론에서 언급하는 유년기 체험세대의 작품에서 주요한 모티프로 이용되어 한국전쟁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① 한국전쟁에서 공산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반드시 짚어야할 중요한 항목이다. 전쟁 발발 논의 중에서 남침론이 뒷받침하듯이 공산 이데올로기는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위한 實踐理念으로써 전쟁을 도발하는 적대적 의도로 작용한다.
수정주의자들은 한국전쟁을 냉전시대의 美蘇 대리전쟁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美蘇가 대결하고 있는 지역들의 개별적인 내부사정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북침설 혹은 남침유도설을 주장하지만 신빙성을 얻기 매우 어려운 추측의 수준이거나 불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기된 견해들이다. 학계의 정설은 남침론이다. 남침론은 스탈린 주도설과 中蘇의 음모설과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설 등으로 나누어진다(김학준,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하여, 1950년대의 인식, 한길사, 1990. 참고).
'전쟁론'의 저자인 클라우제비츠의 지적처럼 전쟁은 적대적 의도가 선행해야 일어난다. 미소 주둔군에 의해 남북 모두 타의적으로 체제를 달리하게 된 해방공간의 영토적 분단에서 통일을 이루려는 필연적이고 當面的인 의도가 양쪽 진영에 모두 있었을 것으로 논의하고 있다. 가령 1948년 5․10 선거에서 이승만은 권력을 장악하는데 이는 곧 이승만 이데올로기의 승리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이데올로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반공의식․독립국가 건설․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진덕규, 이승만시대 권력구조의 이해, 1950년대의 인식, 한길사, 1990. 14쪽).
따라서 이승만 이데올로기는 반공을 전제로 하는 統一獨立國家의 건설 즉 滅共統一로 집약할 수 있다. 북쪽의 통일 의도는 소련의 팽창주의에 힘입어 赤化統一이라는 적대적 의도로 구체화된다. 공산주의 체제의 지역적 팽창을 목적으로 하는 이와 같은 적대적 의도는 한국전쟁의 不可避性뿐만 아니라 이념전쟁이라는 성격과도 직결된다. 적대적 의도가 선행하는 폭력의 목적은 이념의 현실화에 있다.
이러한 폭력의 성격을 이념목적적 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민간인을 상대로 적대적 의도의 고취를 위한 폭력을 다룬 작품들이 상당수인데 이념목적적 폭력에 일방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쪽은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념목적적 폭력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가진 민간인에게 행사하는 인민재판이나 대량학살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②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 시학, 문예출판사, 1993. 67쪽.
③ 정한숙, 고추잠자리, 사상계, 1959, 6.
④ 강신재, 낙조전, 현대문학, 1956, 9.
⑤ 양윤모, 전쟁과 사랑을 통한 현실인식, 1950년대의 소설가들, 나남, 1994. 362쪽.
⑥ 김성칠, 역사 앞에서, 창작과 비평사, 1997. 252쪽 참고.
북한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 民靑 사무실을 통한 공산 이데올로기의 주입과정에서 비롯하는 이념목적적 폭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9․28 수복 후 반공의식에 따른 폭력도 많다. 가령 불신검문을 하면서 친구라 하지 않고 동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일화도 있다.
⑦ 정한숙, 고가, 문학예술, 1956, 7.
⑧ 이재선, 한국현대소설사 1945∼1990, 민음사, 1991. 102쪽.
⑨ 장성수, 전후현실의 문학적 진단과 처방, 1950년대의 소설가들, 나남, 1994. 196쪽.
⑩ 김형자, 소설의 구조, 현대소설론, 평민사, 1999. 74쪽.
⑪ 이범선, 학마을 사람들, 현대문학, 1957, 1.
⑫ 이재선, 앞의 책, 102쪽.
⑬ 강신재, 눈물, 문예, 1953, 1.
⑭ 염무웅, 선우휘론, 창작과 비평, 1967 겨울호, 649쪽.
⑮ 김현, 허무주의자와 그 극복, 사상계, 1968. 2, 292쪽.
⑯ 선우휘, 불꽃, 문학예술, 1957, 7.
⑰ 이어령, 역사‧행동‧관조, 현대한국문학전집 12, 신구문화사, 1966. 477쪽.
⑱ 김천혜, 소설 구조의 이론, 문학과 지성사, 1994. 179∼189쪽 참고.
인물묘사의 방법은 화자나 서술자가 인물의 모습이나 성격을 독자에게 직접 해설해주는 직접제시 또는 해설적 방법이 있고 인물의 행동을 묘사하여 독자가 인물의 성격을 미루어 알 수 있도록 하는 간접적 제시 또는 극적 방법이 있다.
⑲ 이범선, 살모사, 사상계, 1964, 11.
⑳ M. H. Abrams, 최상규 옮김, 문학용어사전, 대방출판사, 1985. 6∼9쪽 참고.
㉑ 이범선, 앞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