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 결핍의 심리적 양상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전쟁은 남성에게 죽음을, 여성에게는 자의든 타의든 성적 전락(轉落)과 비탄(悲歎)을 운명으로 강요한다. 또한 결핍가정이나 해체된 가정에서 사회로 느닷없이 내던져진 고아들은 모성(母性)에 집착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및 자녀로 연결되는 프로이트의 가족 삼각형 구조에서 아이들은 사회악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고 주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선악에 대한 주체적 인식 결여로 주어진 환경에 철저하게 지배받는다.
그들이 성인의 세계에 접근하는 최초의 징후는 성적 호기심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모성 고착을 전제로 한다. 또한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었다 해도 모성 고착을 보이는 인물들은 예외 없이 아버지 체험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부성 결핍에 따른 모성 고착의 형상화 양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적 호기심과 심리적 성장의 조건으로써 모성 고착을 제시하는 송병수의 「쑈리 킴」과 손창섭의 「稚夢」이 있다.
둘째, 모성 고착에서 벗어나 사후복종(事後服從)을 통해 부성적 영역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선우휘의 「불꽃」이 있다.
셋째, 정서적 동질감에서 비롯하는 모성 고착을 제시하는 손창섭의 「泡沫의 意志」가 있다.
넷째, 부성적 페르소나의 경험 결핍에 따르는 정신적 기형성을 제시하는 손창섭의 「神의 戱作」이 있다. 이외에도 박용구의 「고요한 밤」, 손창섭의 「광야」·「소년」, 추식의 「부랑아」 등이 있다.
「쑈리 킴」은 전후 체험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쑈리는 미군부대 주변을 부랑하는 고아 소년으로 양공주 따링 누나와 사는데 부대를 들락거리며 펨프 노릇을 한다. 쑈리에게 미군부대는 성적 타락과 찔뚝이로 대표되는 파괴적 폭력을 일찌감치 깨닫는 부정적인 부성의 세계이다.
이와 같은 왜곡된 부성적 세계는 전쟁이 가져온 생존환경으로서 소년의 정상적인 삶을 가로막는다. “저 산 너머 햇님”을 따라 부르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는 쑈리는 인간적인 품성을 잃지 않은 따링 누나에 대해 모성 고착을 갖는다.
그저 따링 누나가 꼭 껴안아 주는 게 좋고, 무엇보다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고 몽실한 젖꼭지가 쑈리는 좋았다.①
이젠 이곳 양키 부대도 싫다. 아니, 무섭다. 생각해 보면 양키들도 무섭다. 불독 같은 놈은 왕초보다 더 무섭고, 엠피는 교통순경보다 더 밉다. 빨리 이곳을 떠나 우선 서울에 가서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①
전쟁고아 쑈리는 소년기의 심리적 성장 조건으로써 모성 고착을 갖는다. 그에게 따링 누나는 어머니이자 동시에 생활을 공유하는 동반자이다. 쑈리와 따링 누나 사이에 사랑의 연대성이 건재한다는 것은 인간은 황막한 파국의 사회 내에서 진정한 가치에의 탐색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② 해석하기도 하지만 연대성의 내용물은 쑈리의 성적 호기심을 전제로 하는 모성 고착이 주류를 이룬다. 헌병에게 붙잡혀간 따링 누나를 찾아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말에서 알 수 있듯이 쑈리의 모성 고착은 미군부대로 대표되는 부정적 세계에 대항하는 심리적 성장조건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稚夢」의 소년들은 을미에게 모성 고착을 갖는다. 심리적 성장조건으로써 모성 고착은 소년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년들에게 을미는 “누나요, 친구요, 애인”인데 공통점은 소년들이 결핍한 어머니를 대신하는 모성적 존재라는 점이다.③ 「쑈리 킴」에서 쑈리가 따링 누나에게 고착되어 있는 것처럼 세 소년은 을미를 생활의 중심에 놓는 모성 고착을 보여준다.
따라서 乙美는 차츰 소년들의 가슴속에 여신과도 같이 아름다운 매력으로 진좌하기 시작했다. 단 하루도 그들은 乙美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언제고 乙美의 얼굴만 대하면 무조건 좋았다.④
생활의 동반자요, 모성적 존재인 을미의 마음을 박치용에게 빼앗기면서 소년들의 모성 고착은 감정적 배신감으로 변질된다. 그들은 “집을 나간다”든가 “구두 값을 도로 받구야” 말겠다는 것 등을 통해 모성적 존재의 상실에 대해 심리적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다.
「불꽃」은 고현의 의식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단편의 형식 속에 역사의 격동을 인상적으로 담아내며 전후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한다. 즉 과거의 소극적인 인간상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행동성을 부각한다. 이러한 내용은 심리학적 측면에서 죽은 아버지를 통해 모성 고착에서 벗어나 로고스(Logos)의 부성적인 영역으로 편입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고현은 스스로 이름한 “꽃밭의 시대”에 안주하는 개인주의자이다. 인생에 대한 목적이나 청년다운 야망도 없이 다만 남을 괴롭히지 않고 자신대로 살아가려는 소극적인 인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하는 행동은 모성 고착의 양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버지의 결핍으로 인해 고현은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보호받는 수용지향적 인물이며 훈련·독립심·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정신이 없는 인간으로, 모성원형(mutterarchetypus)인⑤ 고향·산하·대지 등에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事後服從을⑥ 고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조선생의 아버지가 인민재판에 끌려 나오자 고현은 연호를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총을 빼앗는 행동을 실행함으로써 자신과 아버지를 일체화한다. 마을에서 가장 의젓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사후 복종의 행동이다.
그때의 충동.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 마음의 충동은 무엇이었을까. 이 점은 눈으로 목격한 살인 목격은 일종의 묵인. 묵인하는 군중의 일원으로 그대로 있을 수 없었던 마음의 줄. 그리고 아픔. 희생자의 머리와 어깨와 허리에 내려지는 아픔은 곧 나 자신의 머리와 어깨와 허리에 가해지는 아픔이었다. 어찌하여? 나와 그와 그리고 모든 군중. 거기에는 아무런 육체적인 연결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⑦
아픔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사후 복종이다. 고현의 잠재의식 속에 아버지는 가엾은 행인조차 그대로 보내지 않으며 바른 일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의 줄”은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인 고현과 이타적 삶을 살다가 죽은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고현의 무의식적인 연결망이다. 어머니에게 귀속되고자 하는 유아기적 본능에서 비롯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자아 중심의 사고는 인민재판의 현장을 목격하고 저항함으로써 자아의 사회성을 획득한다.
고현은 모성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유아기적 비사회성에서 부성의 영역으로 심리적 진화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굴에 은신하면서 “강렬히 살아서 아낌없이 그 생명을 일순에 불태운” 아버지를 발견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체적 인물로 부각되는 표면적 계기는 고선생과 그녀의 부친을 매개로 하는 인민재판장의 목격이지만 내면적 계기는 사후 복종에 있으며 사후 복종을 통해 개인주의로 대표할 수 있는 유아기적 모성 고착에서 부성의 영역으로 편입해 자아의 사회성을 획득한다.
「泡沫의 意志」는 종배가 영실에게 정서적 동질감의 동일시에서 비롯하는 모성 고착의 현상을 보인다. 종배의 대립적 인물을 이모와 이모부로 본다면 영실의 대립적 인물은 교회 사람들이다. 종배와 영실이 최소의 소망에 목이 타는 쪽이라면 대립적 인물은 “찬란한 최대의 소망을 꿈꾸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사생아로서 부성의 페르소나(persona) 즉 부성적 행동양식을 경험하지 못한 종배는 영실에게 고착하는 심리적 현상을 보여준다.⑧
㉮ 내겐 아버지가 없단 말요.
㉯ 그러나 영실에게는 영혼의 집이 있었다. 그 품에 전신을 내어 맡기고 매달려 몸부림쳐도 좋을 어머니가 있었다. (…)
“그건 영실이가 몰라서 그렇소. 어머닌 집에서 기다리실 거요. 돌아가기만 하면 어머닌 잃었던 아이를 다시 찾은 듯이 기뻐하여, 흙투성이가 된 손발을 깨끗이 씻어 주실 거요.”⑨
㉮는 종배가 부성적 페르소나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진술이고 ㉯는 문맥적 의미에서 “어머니의 집”이 교회라는 점에서 모성 고착을 보여준다. 김상선의 지적처럼 「치몽」에서 을미를 우상화하였다면 이 부분은 절대자를 여성화하는 모성 고착을 보여준다. 또한 종배의 종소리는⑩ 영실에 대한 모성 고착의 적극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神의 戱作」은 S의 성장과정을 환경과의 영향관계에서 천착한다. 손창섭 소설의 대부분은 인물과 환경의 영향관계가 보여지지 않아 객관 현실의 결여를 지적한다.⑪ 환경과 유년기적 자아의 영향관계는 심리적 메커니즘의 양상을 띠면서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령 어머니와 동침 사건과 외도 목격은 자살소동으로 이어지는데 아버지의 결핍에 따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의 극복 실패라는 심리적 결과로써 자살소동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야뇨증은 그 후유증으로서 심리적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써⑫ 세상에 대한 폭력적 행동을 꼽을 수 있다. “부모도 형제도 집도 돈도” 없다는 말은 심리적 측면에서 주술적 성격을 가진 주문으로 자신의 대타적 공격성을⑬ 합리화하며 옹호한다. 백곰을 비롯해서 학교 당국과 영어 선생의 딸 등에 대한 폭력적 행동이 그 사례로 볼 수 있다. 귀국 후 “자치건설대”의 일원이 되어 경찰관과 시비가 붙어 넘어뜨린 것이라든지 미군 통역관을 머리로 받아넘긴 것 등도 예외는 아니다.
그 흥분은 맹랑하게도 성욕에 통하는, 또는 성욕을 도발하는 감정과 합류하기도 했다. 그런 때 그는 발기한 자신의 페니스를 발견하고 신선한 경이에 당황하다가 고독해지기 쉬웠다.⑭
공격성은 타인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흥분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이상 성심리인 사디즘(sadism)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의 근저에는 유년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체험 결핍이 놓여 있다. 결국 환경과 성격 형성의 영향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존재론적 측면에서 정신적 기형성(畸形性)이 필연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부성 결핍 콤플렉스는 아버지의 부재로 말미암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체험 결핍이 원인이며 그 결과로 모성 고착이 나타나는 심리적 양상을 보인다.
문학적 형상화의 유형에서 모성 고착은 어머니를 결핍한 경우에도 나타나는데 어머니를 대리하는 모성적 존재에 투사되는 경우가 있으며 모성 고착에서 벗어나 아버지에 대한 사후 복종을 형상화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성적 페르소나의 경험 결핍으로 인한 정신적 기형성을 제시하는 경우 등이 있다.
모성 고착은 아버지 체험의 결핍에서 비롯하는데 전쟁으로 인한 결손가정의 양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전후성(戰後性)을 획득한다. 모성 고착은 정상적이고 이성적이며 사회적인 삶의 원리보다는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개인적인 삶을 지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전후 현실의 도덕적 타락과 연관 지을 수 있다.
① 송병수, 쑈리 킴, 「문학예술」, 1957, 7.
② 이재선, 앞의 책, 95쪽.
③ 김상선, 신세대작가론, 일신사, 1964. 122∼123쪽 참고.
김상선은 소년들에게 을미의 존재는 절대자로 규정한다. 즉 “(……) 을미 누나를 일종의 우상으로 숭배 찬미하여 마지않는다. 을미 누나는 그들의 美이고 꿈인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을미 누나를 상균·기수·태갑이의 생의 현상적 인식대상으로서 그들의 눈에 반영되기 때문에 상호간의 감정대립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통일적인 숭배를 할 수 있고 전체적 동경 대상으로 비치어드는 것이다.”
④ 손창섭, 치몽, 「사상계」, 1957, 7.
⑤ 이부영, 앞의 책, 91쪽.
⑥ 신경득, 앞의 책, 50쪽.
⑦ 선우휘, 불꽃, 「문학예술」, 1957, 7.
⑧ 손창섭의 소설에서 모성 고착은 작가의 소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데 아버지가 없거나 있더라도 경제적 무능력자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은 끈질긴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부성적 페르소나의 결핍과 모성 고착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⑨ 손창섭, 포말의 의지, 「현대문학」, 1959, 11.
⑩ 김양호, 절망의 극한 - 손창섭론, 한국현대소설과 비평의 만남, 한불문화출판, 1993. 291쪽 참고.
김양호는 종배가 치는 종소리를 영실을 위한 만종으로 보고 있다. “(……) 또한 작품의 말미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구원의 종소리가 아니라 죽어버린 옥화를 위한 만종에 지나지 않는다.”
⑪ 정호웅, 손창섭 소설의 인물 성격과 형식, 「작가연구」, 1996, 창간호.
⑫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타협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의식 또는 행위 등을 집합적으로 일컫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이다. 이 용어는 1894년 프로이트의 논문 「방어의 신경정신학」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이때의 타협안들은 대체로 자기비하·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나 감정을 감추는 성격을 띤다.
주된 방어기제로는 자신의 욕구·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의식적인 충동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생각 또는 행동하고 자신의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감정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보이게 한다든가 하는 등이다.
⑬ 공격성(aggressiveness)은 대상을 공격(배제·부정 또는 파괴)하려 하는 행동 경향이나 충동을 가리킨다. 심리적 메커니즘으로는 첫째 자기 욕구의 충족을 저해하는 방해자에 대해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합리적 공격, 둘째 직접적인 공격성의 표출이 잘 안 되므로 꿈이나 공상 속에서만 하는 공격, 셋째 공격할 본래의 대상을 대리적으로 공격하는 일, 넷째 외계에 대한 공격성의 표출이 전혀 안 되므로 안으로 돌려 자신을 공격하는 일(자살·지나친 자기비판 등), 다섯째 자신 속의 의존적 욕구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자기방어적인 공격을 하는 일 등이 있다.
⑭ 손창섭, 앞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