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개인차원에서 이념선택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이념에 대한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자유의지(free will)는 자연의 인과율이나 신의 섭리 등 필연성에 의하여 규정되지 않고 인간 스스로 행위를 선택하는 의지를 일컫는다. 이념선택 및 이념강요와 자유의지의 양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논의할 수 있다.
첫째, 자유의지와 이념강요를 대립적 관계로 설정한 송병수의 「脫走兵」이 있다.
둘째, 개인의 자유의지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집단적 이념강요의 분단현실을 제시하는 전광용의 「죽음의 姿勢」가 있다.
셋째, 혈연적 관계를 매개로 이념강요를 하는 과정에서 이념대립적 갈등을 보여주며, 갈등의 해소가 혈연적 온기에 있다는 점을 형상화한 최상규의 「深夜의 饗應」이 있다.
넷째, 분단현실의 상징인 판문점을 배경으로 이념대립의 관계가 해소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는 이호철의 「板門店」이 있다.
이외에도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개인의 갈등문제로 환치해서 다룬 서근배의 「楨媛의 境遇」,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 없이 남편이나 애인을 좇아 이념선택을 하는 최정희의 「靜的一瞬」 등이 있다.
「脫走兵」은 집단적 이념강요와 개인의 자유의지를 대립관계로 파악하며 한국전쟁의 속성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집단적 대립에 따른 개인의 자유의지의 희생을 제시한다. 박한서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 각본에 따른 선동적 분위기에 얽매여 의용군으로 강제 입대한다. 이와 같은 집단적 이념강요에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①
우리는 조국 해방을 기뻐하며, 김일성 장군이 영도하는 인민군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지금도 인민군의 원수를 무찔러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우리 젊은 학도들은 조국 해방 전선에 총진군하여 인민군이 흘린 피에 보답해야 한다. 이 엄숙한 대열에서 낙오되는 자, 방관하는 자는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혀 마땅하다. 무찔러 나가자… 목메인 열변을 토했다.②
敵治 서울에서 강제로 동원된 의용군들은 부지기수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들은 낙동강 전투에 투입된다. 박한서는 낙동강 전투 이후 북으로 후퇴하다 지리산 빨치산이 되고 여기에서 탈주한다. 이념강요에 따른 강제입대이고 “자의를 용납하지 않는 명령” 때문이다.
의용군과 빨치산으로부터의 탈주는 자유의지에 따른 삶의 공간으로 설정된 서울집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검문소에서 붙잡혀 국군 훈련소로 강제 입대한다. 의용군이었다가 국군이기도 하는 이율배반적인 신분의 변화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무관한 집단적 이념강요에 따른 결과이다.
국군으로서 한서는 무공훈장을 받는가 하면 이등중사로 특진하는데 이념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무공에서가 아니라 적의 공격 예상로를 잘못 잡은 지휘관의 무능 때문이다. 이 같은 에피소드에서도 집단의 의지가 개인의 자유의지를 지배하는 서사적 논리를 읽을 수 있다.
사단본부의 경비를 맡고 초소 근무 중에 한서는 부하들에게 “숯 굽던 토옥”에서 취침을 허락한다. 집단적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으로 개인의 자유의지를 우선 하는 한서의 면모이다. 그러나 상사의 순찰로 근무지 이탈이 밝혀지고 한서의 전력이 드러나면서 육군본부로 후송 당한다. 그리고 후송 도중 탈주한다.
캄캄한 어둠 속, 굽어보이는 멀리 시가의 불빛이 아물거렸다. 저기가 서울이다. 거기 내 집이 있다. 그러나 선뜻 내딛지도 못한 채 또 이제는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 채 한서는 칵 울음을 터뜨렸다. 흐느끼는 어깨 위에 눈송이만 마냥 쌓여갔다.③
인민군과 국군에서의 탈주동기는 동일하다. 집단적 이념강요 또는 집단의 의지에 굴복하지 않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좇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쪽에도 소속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인용문에서 보듯 방향을 상실한 극적인 장면이 결말에 해당된다. 즉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념에 대한 자유의지의 결과로 남는다. 이는 집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개인의 자유의지가 희생되는 경우이다.
「죽음의 姿勢」 역시 개인의 자유의지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써 이념강요의 사회적 현실을 고발한다. 덕수는 십 여 년 전 서울의 인공치하에서 헤어졌던 처남 윤식의 방문을 받는다. 윤식은 북에서 남파한 간첩이다. 자수를 권유받지만 윤식은 매부와 누이의 안전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잡힌다. 덕수 역시 “범죄자 은닉 및 불고지의 죄명”으로 죄수복을 입는다. 덕수는 윤식을 고발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았으나 뿌리쳐왔다.
한때 자기와 윤식의 일대 일의 관계에서 이러한 경우가 예측될 때, 생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상반된다는 이기적인 상념이 고발을 유혹하는 충동으로 바뀌어진 바도 없지 않았으나 그는 그것을 지그시 눌러 왔다.
아버지가 아들을, 형이 아우를, 그는 이렇게 연쇄적인 상관관계를 얽어가며 자신에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④
덕수는 “아버지가 아들을, 형이 아우를” 고발하는 반인륜적이고 비인도적인 집단적 이념강요를 거부하는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지고 있다. 도덕적‧종교적‧정치적 신념이 결정적인 동기가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확신범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덕수 역시 확신범으로 볼 수 있다.
덕수는 연탄 가스 중독으로 죽어버린 성규와 불안에 떨고 있을 윤식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죽음의 자세를 짚어본다. 윤식을 고발하지 않은 것을 “백 번 잘한 일”로 여기는 확신범의 입장에 선다. 그리고 그는 공판장으로 가면서 “브라질 이민”을 생각한다.
이 일에 대한 회한이나 비굴감이 없는 그것만으로도 차라리 거뜬한 심정이다. 하늘은 푸르고 용수 구멍으로 내다보이는 거리는 여전히 어수선하게 법석대고 있다. 그는 오늘의 공판 결과보다는 차라리 아득한 브라질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⑤
도입부분과 결말부분을 제외하고 이야기는 소급제시(analepsis)로 이루어져 있어 덕수의 “거뜬한 심정”은 신념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소급제시는 현재의 결과에 대한 과거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형식을 갖는데 이와 같은 기법적 의미는 원인에 대한 타당성의 부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 이민”을 생각하는 죽음의 자세는 이념강요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개인의 자유의지의 저항으로 볼 수 있다.
「深夜의 饗應」은 혈연적 관계를 매개로 하는 이념강요와 그에 따른 갈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념선택이 생존과 밀접한 분단현실을 제시한다. 남파 간첩 이효범은 누이와 매제 김박사를 방문한다. 그는 상처를 치료받고 권총으로 김박사를 위협하는데 공산조직의 세포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김박사와 이효범 사이에 이념적 갈등이 대두된다.
“난 일개 시민이다. 시민에겐 시민으로서 살아나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에 저해되니까 거부하는 거다.”
“마찬가지죠. 나한테도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한 세포로서 행동할 권리가 있죠. 그 행동에 필요할 뿐 아니라, 그 조직의 원대한 목적을 위해서는 희생해도 될만한 것이니까 나는 요구하는 거죠.”⑥
“시민”과 “세포”라는 상반된 체제의 이념대립적 갈등이 개인 단위의 인물갈등으로 치환되어 있다. 갈등은 한국전쟁의 체험을 전제하며 효범은 혈연적 관계를 매개로 김박사에 대해 이념강요를 한다. 김박사의 거부는 이념선택이 강요에 의할 수 없다는 자의에 충실하는 경우이다. 효범은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하는 이념강요에 실패할 경우 사살되거나 체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집 밖에는 분단현실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효범이 어린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해소된다. 혈연을 매개로 김박사를 포섭하려던 계획이었지만 효범은 자신 속에 혈연적 온기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집을 나간다. 효범은 체포되고 “간첩 방조자” 김박사 역시 구속된다. 이와 같은 서사적 인과관계는 이념선택이 개인의 생존과 밀접하게 맞물린 분단현실을 제시한다.
「板門店」은 논쟁과 풍자를 통하여 민족의 동질성 회복 가능성과 남북이 상호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포용적 관계로 전이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을 제시한다. 논쟁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상호배타적 관계를 내포한다면 대화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라는 상호포용적 관계를 가진다.
논쟁은 옳고 그름을 따져 상대방의 의견을 수정하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대화는 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즉 대화 속에서 나와 남은 각자의 고립된 개별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상호 소통과 조정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한다. 대화를 구성하는 발화들은 주체들이 공유하는 세계를 전제로 하는 사회적 행위이며 바흐찐이 강조하는 언어의 살아 있는 실재이다.⑦
진수는 판문점에서 북쪽 여기자를 만나 논쟁과 대화를 번갈아 나눈다.
“요컨대 피할 까닭은 없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치의 표준이라는 걸 어디다가 두고 계시나요? 어느 특정된 개인의 혹은 집단의 감정적인 장애라든가 타성에서 오는 고집이라든가 우선 그런 건 제거되어야 하지 않아요? 선택할 권리는 묻혀서 사는 일반에게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선택할 기회와 자유를 주어야 해요.”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좀 강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진수가 응했다.
“그렇지요.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지요. 아무렴요. 당신들은 줍니까? 당신들 세계에서 자유라는 건 어떤 양상을 지니는가요? 자유조차 강제 당하는 건 아니요? 설사 그것이 당신들이 얘기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선택된 몇 사람의 일정한 양식(良識)으로서의 옮은 강제라고 가정하더라도 말이지요, 팍팍하고 죄어 오고… 어때요? 거기서 견딜 만해요? 솔직히 말하세요.”⑧
“남북교류”에 관한 논쟁의 한 부분이다. 이와 같은 논쟁은 체제옹호의 성격을 갖는데 상호배타적 관계로서 진수와 여기자를 상정할 수 있으며 이때 이들은 이념과 체제 대립의 남북을 대변하는 공적 개인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소나기를 피해 차안으로 들어가자 논쟁에서 대화로 바뀌어진다.
“이북 가시죠? 네? 이북 가시죠?”
“이봐, 금니 어디서 했어?”
진수가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네?”
일순간 그녀는 완연하게 약하고 수줍어지면서 한 손으로 입을 차악 가렸다.
“금니 어디서 했어?”
눈을 부릅뜨며 진수가 다시 물었다.
“평양에서요.”
그녀가 대답했다.⑨
논쟁과 비교할 때 진수의 말투가 하오체에서 하게체로 바뀌어지고 “이북 가시죠? 네? 이북 가시죠?”는 체제선전에서 비롯하는 월북 권유라기보다는 사적 개인의 애원에 속한다. 여기자의 태도 역시 체제옹호의 대변자인 공적 개인에서 사적 개인으로 변화되어 있다.
이는 상호배타적 관계에서 상호포용적 관계로 전이되었음을 뜻하며 이 같은 패러다임은 이념과 체제 대립의 차원을 벗어난 민족의 동질성 회복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러한 가능성을 전제하면 진수의 분단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은 이념과 체제 대립이라는 닫힌 현실에 대한 풍자적 성격을 가진다.
풍자는 대상을 우습게 만들고 대상에 대해 모욕․경멸․조소의 태도를 환기시킴으로써 대상을 깎아 내리는 기능을 한다. 대상에 대해서는 우행의 폭로, 사악의 징벌이 되는 첨예한 비평이 되고 독자에게는 조소와 냉소가 되는 웃음의 현상을 불러온다. 풍자의 주된 속성은 공격성이며 공격의 목표는 개인․제도․국가 등등인데 여기서는 이념과 체제 대립의 분단현실이다. 풍자는 진수의 현실적 분단상황을 뛰어넘는 상상력에서 얻어진다.
그 회담 기록이 적힌 거창한 문건이 지금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인 익살로서 개성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⑩
고증학자 설교수의 설에 의하면 변소 속의 변기가 바로 경계였다니 희한한 익살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문화회관에서 변을 보시는 분들은 쭈그리고 앉아서 심심하거든 이것을 한번 음미해 보시도록.⑪
“군사정전회담” 기록이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 익살”이라든가 그 문건의 해독을 “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 학자”가 해독했다는 것이나 판문점 안의 휴전선이 “변기”를 지난다는 것뿐만 아니라 진수의 현실적 상황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내용은 모두 분단현실에 대한 풍자에 속한다.
진수와 여기자가 논쟁에서 대화로의 발전을 통해 상호배타적 관계에서 상호포용적 관계로 전이하는 것처럼 풍자를 통하여 이념과 체제대립의 상호배타적 관계를 조소함으로써 상호포용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적 의미를 형상화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념과 체제의 대립에서 형상화되는 분단현실은 영토적 분단에서 이념대결적․체제경쟁적 분단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양상을 보여준다. 즉 영토적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통해 혈연을 매개로 하는 이념강요를 한다.
집단적 이념강요에 저항하는 형태는 자유의지를 좇는 양상을 보여주며 이때 이념선택은 개인의 생존과 밀접하게 맞물린다. 남북의 이념 및 체제의 대립으로 개인의 자유의지가 희생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념강요의 갈등이 혈연적 온기로 해소되는 경우도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논쟁 및 대화의 서술화법과 풍자를 이용하여 분단현실이 상호배타적 관계에서 상호포용적 관계로 전이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제시한 경우이다. 이념대립적 분단상황 아래에서 개인의 이념선택은 생존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이념강요의 경우 자유의지는 유보되거나 희생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전쟁의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공간에서 집단적인 이념강요에 대한 저항으로써 자유의지를 좇는 것은 혈연적 관계보다 이념적 동질성이 앞서는 분단현실의 비극을 강조한다.
① 김성칠, 역사 앞에서, 창작과 비평사, 1997. 201쪽 참고.
인민군은 여맹과 민청 등의 조직과 표리일체가 되어 조직적으로 의용군을 강제 모집한다. 특히 1950년 7월 29일의 일기(139∼143쪽)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② 송병수 외, 전후정예작가신작15인집, 육민사, 1963.
③ 송병수 외, 전후정예작가신작15인집, 육민사, 1963.
④ 전광용, 죽음의 자세, 「현대문학」, 1963, 7.
⑤ 전광용, 죽음의 자세, 「현대문학」, 1963, 7.
⑥ 최상규, 심야의 향응, 「사상계」, 1961, 2.
⑦ 한용환, 앞의 책, 108∼109쪽 참고.
⑧ 이호철, 판문점, 「사상계」, 1961, 1.
⑨ 이호철, 판문점, 「사상계」, 1961, 1.
⑩ 이호철, 판문점, 「사상계」, 1961, 1.
⑪ 이호철, 판문점, 「사상계」, 196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