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폭력의 형상화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by 이순직

1) 객관의 주관화 서술 - 강용준의 「鐵條網」


모든 서술에서 초점행위와 서술행위는 구분된다. 지각행위와 서술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서사적 사건의 층위에서 행위와 직접 대화를 구분할 수 있다. 초점화자가 서술자일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는데 삼인칭의 경우 서술자는 서사적 사건을 직접 초점화(focalization)하여① 서술할 수 있고 타자가 초점화한 것을 전해 듣고 서술할 수도 있다.


전자는 서술자의 시각만이 서사적 사건에 개입하는 직접서술이며 후자는 초점화자가 개입하는 간접서술이다. 일인칭의 경우 서술자와 초점화자가 일치하면 자기서술이 이루어지고 일치하지 않으면 타자서술이 이루어진다. 자기서술은 서술자가 초점화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외면에서 자아의 심리적 내면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서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며 작중인물의 역할도 하기에 자기서술과 타자서술이 공존한다.②


이 작품은 구체적인 체험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③ 좌우익 포로들의 충돌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 생생함은 체험의 몫도 있으나 서술자가 서사적 사건을 직접 초점화 하는 삼인칭의 직접서술과 서술자가 초점화자와 일치하는 일인칭의 자기서술이 연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객관을 주관화하는 서술상황의 변화는 전편에 걸쳐 고루 산재한다.


순간 민수는 엉뚱하게 이 치가 뭐 장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시하다는 생각을 했다. 온통 시시하고 장난 같이만 여겨진다. 결국은 모두가 다 시시하고 데데하다는 방기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것들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날리듯 하니 하아, 참 시시하다. 시시하고 우습다.


민수는 웃었다.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눈을 들어본다. 사나이. 도무지 정기가 없고 그저 멀뚱하게 광기가 서린 눈. 이건 인간의 눈이 아니다. 어릴 때 미친개를 본 일이 있다. 그놈의 눈알이 아마 그랬던가. 고문, 무서운 고문. 한 발의 총탄에 쓰러지거나 한 몽둥이로 급소를 얻어맞고 얼결에 자빠지는 죽음 따위, 그건 숫제 고급에 속한다. 무엇인가 확실히 잘못 됐다. 잘못 되지 않고서야 어디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무작위로 뽑은 두 개의 인용문에서 공통점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서술자의 변화이다. 처음에는 허구적 상황 외부에 있는 서술자가 민수의 내면을 초점대상으로 하는데 초점화자와 서술자가 분리된 상태이다. 그러나 서술자가 허구적 상황 내부에 있는 초점화자인 민수가 되어 자신의 내면을 초점대상으로 한다.


즉 객관의 주관화 서술로서 초점화자의 가치판단이 자기서술로 언표화된다.⑥ 동일한 초점대상이지만 서술자를 변화시킴으로써 이야기의 중개성을 완화하여 허구적 체험의 사실성을 획득한다. 슈탄젤의 분류에 따르면 작가적 서술상황에서 일인칭 서술상황으로의 변화이다. 이처럼 서술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민수의 판단에 현실적인 생동감을 주고 있다.


서술자와 초점화자의 불일치에서 일치로 전이하는 객관의 주관화 서술의 반복적 연속은 허구적 진실과 구체적인 체험의 상관성을 뒷받침하며 허구의 실재성(reality)을 부여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서술자와 초점화자의 불일치에서 일치로 전이하는 객관의 주관화 서술의 반복적 구사가 허구세계의 생동감을 부여함을 알 수 있다. 즉 경험세계와 허구세계의 상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둘째, 이념적 폭력의 맹목성을 꼽을 수 있다.


2) 인과적 소급제시(analepsis) - 이범선의 「殺母蛇」


이 작품은 인과적 소급제시가 지배적 서술양상으로 볼 수 있다. 시간변조는 소급제시와 사전제시(prolepsis)로 나누어진다. 사전제시는 현재 사건의 진행 중에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앞질러 암시‧예견하는 서술기법이다. 소급제시는⑦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연대기적 서술방법보다 더욱 사실적이라는 지지를 받는데 이러한 지지들이 모여서 문학적 관습(literary convention)을⑧ 만든다. 문학적 관습은 장르로서 소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형식이나 언어‧주제‧장르⑨ 등을 꼽을 수 있다.


소급제시는⑩ 현재의 원인을 제시하거나 사건의 경험 이후 변화한 성격을 보여주는 데 매우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입체적 시간구성을 가능하게 하여 인물을 시간의 층위에 올려놓고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플롯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기에 이르렀고 인생의 단면제시를 목적으로 하는 단편소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서술기법이다.


시간의 순서를 자유롭게 변조함으로써 인과에 대한 합리적이고 적절한 관계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입체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 작품에 쓰인 소급제시는 결과인 현재에 대한 원인으로써 과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이야기의 원동력으로써 원용하고 있다. 플롯을 배열하면 소급제시의 성격이 보다 분명해진다.


㉮ 나는 종로 네거리를 지나면서 살모사를 보고 공포를 느낀다.

㉯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의 살모사를 회상한다. (소급제시 1)

㉰ 살모사의 출생 내력. (소급제시 2)

㉱ 나는 중학교 첫 여름방학 때 도시락과 茶를 파는 살모사를 본다. (소급제시 3)

㉲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民靑員을 지휘하는 살모사에게 집에서 쫓겨 월남한다. (소급제시 4)

㉳ 나는 월남한 고향 사람들로부터 살모사가 공산당원이 된 과정을 듣는다. (소급제시 5)

㉴ 나는 한국전쟁 때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고향에 가서 친구 도깨비를 통해 살모사의 학살행위를 듣는다. (소급제시 6)

㉵ 나는 집으로 돌아와 종로 네거리에서 본 살모사를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정체진술(stasis statement)이 단락의 중심을 이루는 현재인 ㉮와 ㉵를⑪ 제외하면 모두 경과진술(process statement)로 된 소급제시이다.⑫ 따라서 사건적 요소를 내포하는 이야기는 ㉯에서 ㉴까지이다. ㉯는 ㉮의 공포심 원인을 제시하며 살모사의 성격적인 잔인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살모사가 날카로운 칼로 책상에 경계선을 긋고 경계선을 넘어온 연필을 토막내고 도깨비의 등에 칼을 꽂고 수업 시간에 청개구리를 칠판에 힘껏 던져 죽이는 행위들이 내용이다.


㉰는 살모사의 출생 내력인데 인물적 서술상황이 아니라 유일하게 작가적 서술상황이다. 즉 시점의 변화가 일어나는 단락으로 生母가 겁탈 당해 살모사를 잉태하는 이야기다. ㉱는 살모사가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는 서술자가 공산당원이 된 살모사에게 땅과 집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나는 과정이다.

㉳는 살모사가 탄광 투전판에서 사무직원을 죽인 내력 때문에 민청원이 되는 것,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머슴 최서방이 生父임을 알게 되는 과정, 출신성분을 바꾸기 위해 궁씨에서 최씨로 성을 갈아 공산당원이 되는 등등의 이야기다. ㉴는 도깨비를 통해 살모사가 마을에서 도망가면서 최서방과 생모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인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이다. ㉵는 외출에서 돌아온 서술자가 살모사를 찾아내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인과적 소급제시가 이야기의 문학적 형상화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공포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원인의 제시로서 소급제시를 통해 과거 살모사의 내력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결과를 보여주고 원인으로써 과거를 제시하는 형태로 쓰인 소급제시가 전편에 걸쳐 있다.


이상의 분석에서 첫째, 결과인 현재의 공포심에 주목하면서 그 원인의 제시로써 과거를 소급제시한다. 사건적 요소를 암시하는 경과진술과 사물적 요소를 암시하는 정체진술의 비교에서도 소급제시를 통한 과거에 사건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둘째, 살모사는 두 단계의 폭력 형태를 거치는데 성격적 폭력과 이념적 폭력이다. 특히 이념적 폭력은 출세를 위한 수단인데 반인륜적인 폭력 행사로 그 맹목성에 주목할 수 있다.




① 김진기, 손창섭의 무의미의 미학, 박이정, 1999. 59쪽 참고.

초점화(focalization)는 전통시학의 시점(point of view)에서 서술의 주체와 인식의 주체를 분리할 때 나타난다. 전통시학에서 서술의 주체와 인식의 주체는 동일한 화자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보았으나 구조주의 시학에서는 이 둘을 분리한다. 예컨대 “그는 마음이 아팠다”라는 문장에서 서술하는 화자는 서술자이고 마음이 아픈 주체는 초점화자이다.


즉 초점화자는 바라보는 지각의 주체 아픔을 지각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초점주체로 번역한다. 초점화는 한 인물에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주 사람의 주요한 초점화자가 교대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몇몇 사람이 교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을 각각 고정초점화‧가변초점화‧복수초점화라고 한다. 또한 초점화대상은 초점화자의 지각의 대상을 말한다.


② 최병우, 소설의 서술방법과 시점, 현대소설론, 평민사, 1994, 97∼113쪽 참고.


슈탄젤(F. K. Stanzel)은 이를 서술상황과 연결하여 일인칭 서술상황․작가적 서술상황․인물적 서술상황으로 설명한다. 일인칭 서술상황의 특징은 서술의 중개성이 전적으로 소설의 인물이라는 허구적 영역 안에 속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물들의 세계는 서술자의 세계와 완전히 동격이다.


작가적 서술의 특징은 서술자가 인물의 세계 밖에 있다는 점이다. 인물적 서술은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서술자가 반성자(reflector)에 의해 대치된다. 반성자는 소설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는 인물이어서 서술자처럼 독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의 중개성 위에 직접성이라는 환상이 포개진다.(Franz Karl Stanzel, 김정신 옮김, 소설의 이론, 탑출판사, 1994. 19쪽 참고)


③ 현대한국문학전집 41(三省出版社, 1981)의 年譜에 의하면 姜龍俊은 북한군으로 징집되어 1950년부터 1953년 6월까지 東來․巨濟島․光州 등지에서 만 3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④ 강용준, 철조망, 사상계, 1969, 7.


⑤ 강용준, 철조망, 사상계, 1969, 7.


⑥ 자기서술은 일인칭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초점주체가 초점대상일 때를 가리킨다. 이와 달리 타자서술은 초점주체와 초점대상이 다른 경우에 해당된다. 가령 “나는 철수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에서 나는 초점주체이며 초점대상은 철수이다. 따라서 초점주체와 초점대상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타자서술에 해당된다. 그러나 “나는 슬프다”의 경우 초점주체와 초점대상이 일치하므로 자기서술이다.


⑦ Georg Lukács, 이영욱 옮김, Der Historische Roman (역사 소설론), 거름, 1988. 185쪽 참고.

소급제시(analepsis)는 루카치의 용어를 빌면 후퇴적 모티프(retrogressive motif)이다. 줄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전진적 모티프(progressive motif)는 인물의 행위를 지속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희곡에서 많이 사용한다.


반면 줄거리를 행위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후퇴적 모티프(retrogressive motif)는 서사문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전진적 모티프와 후퇴적 모티프의 중간 개념으로 희곡과 소설에 모두 사용하는 지연적 모티프(retardative motif)가 있다. 지연적 모티프는 사건 진행을 연기시키는 계기로서 희곡이나 소설에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후퇴적 모티프와 전진적 모티프는 양적인 차이만이 있다. 즉 지연적 모티프가 줄거리를 진행하는 데에 지배적인 모티프라면 후퇴적 모티프가 된다.


⑧ 이상섭, 문학연구의 방법, 탐구당, 1973. 50쪽 참고.


“문학적 관습은 예술과 생활의 필연적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예술은 기술상의 문제, 형식의 제한, 표현상의 난점 등으로 말미암아 인간생활 자체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는 혼자서는 그런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으므로 독자의 도움을 받는다. 독자는 일정한 형식과 전제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 그들의 묵계는 인생의 가능성과 예술의 편법과의 타협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 어떤 관습이 없이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⑨ 이상섭, 앞의 책, 49∼54쪽 참고.


⑩ Wayne C. Booth, 최상규 옮김, The Rhetoric of Fiction, 새문사, 1985. 242쪽.

“소설 중의 어떤 중요한 작중인물로부터 생생한 인상을 얻으려면 그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해서 최후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기술해 나가서는 안 된다. 먼저 그 인물을 강력한 인상과 더불어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그의 과거로 되돌아갔다 전진했다 해야 한다.”


⑪ ㉮의 단락은 11개 문장인데 경과진술은 놀라다․들어서다․가다․하다(3) 등으로 6개 문장이고 정체진술은 있다․이다(4)로 5개 문장이다. 그러나 경과진술이 정체진술을 설명하는 기능을 하고 있어 정체진술 중심의 단락들로 볼 수 있다. ㉵의 단락은 모두 20개 문장인데 경과진술은 생기다‧이르다‧놀라다‧따지다‧비비다‧하다‧밝히다 등 7개 문장이고 정체진술은 이다(7)‧그렇다(2)‧인가(2)‧아니다‧없다 등 13개 문장이다. 따라서 정체진술 중심의 단락이다.


⑫ Seymour Chatman, Story and Discourse, Cornell University Press. 1978. 32쪽.

S. Chatman에 따르면 진술은 두 가지로 나뉜다. 경과 진술(process statement)은 사건적 요소를 암시하는 「∼을 하다」나 「∼이 일어나다」의 형태를 가지며 정체진술(stasis statement)은 사물적 요소를 암시하는 「∼이 있다」와 「∼는 ∼이다」의 형태라고 한다.

<Process statements are in the mode of DO or HAPPEN, not as actual words in English or any natural language (these form the substance of the expression), but as more abstract expressional categories. But the English sentence “He stabbed himself” and a mime's plunging an imaginary dagger into his heart manifest the same narrative process statement. Stasis statements are in the mode IS. A text that consisted entirely of stasis statements, that is, stated only the existence of a set of things, could only imply a narrative.>


⑬ 김상태, 소설의 문체, 현대소설론, 평민사, 1999, 211∼21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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