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적 모티프로의 회귀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by 이순직

1) 시각적 언어에 의한 간접화 -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


시각적 문체는 관찰의 문체라고도 하는데 대상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여 관찰하는 자세가 엿보이는 문체를 말한다. 언어적 재현방식을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로 구분한다면 보여주기와 밀접하다.

반면 목소리의 문체는 서술 대상에 서술자나 화자가 의식을 투영하거나 예고 없이 끼여드는 문체를 말하는데① 말하기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목소리의 문체(telling)보다 시각적 문체(showing)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의 행동이 서술자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시각을 통한 언어적 재현으로 독자에게 제시한다.


㉮ 무더기 무더기 핀 진달래꽃이 분홍 무늬를 놓은 푸른 산들이 사면을 둘러싼 가운데 소복이 입곱 집이 이 마을의 전부였다. 영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꼭 새 둥우리 같았다. 마을 한가운데는 한 그루 늙은 소나무가 섰고, 그 소나무를 받들어 모시듯, 둘레에는 집집마다 울안에 봉숭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상여는 둘인데 상주는 덕이 한 사람이었다. 그날 마을 사람들은 다들 뒷산으로 따라 올라갔다. 피난을 가던 때처럼 이장 영감이 앞서 갔다.

저녁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그들은 산에서 내려왔다. 이번엔 덕이가 맨 앞에 두 주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걸었고, 그 바로 뒤를 봉네가 흰 보자기로 뿌리를 싼 조그마한 애송나무를 하나 어린애처럼 앞에 안고 따르고 있었다.


㉮는 학마을의 원경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서술자의 판단이 개입하는 부분은 “∼같았다”와 “∼모시듯”이다. 그러나 단락 전체로 볼 때 초점대상을 직유하는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서술자의 초점대상에 대한 객관적 거리는 “∼였다”․“∼섰다”․“∼있었다”에서 엿볼 수 있다. 즉 서술자의 시각에 들어오는 초점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데 보여주기에 해당하며 자연물을 초점대상으로 삼은 점에서 서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는 행동이나 허구적 상황을 서술자의 시각에 의지하는 객관적 표현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배제하고 있다. 마을을 휩쓸고 간 전쟁의 상처가 “상여는 둘인데 상주는 덕이 한 사람이었다”라는 간접제시의 서술로 나타난다. 또한 아버지를 잃어 위패를 보듬은 덕이의 감정이 “피난을 가던 때처럼 이장 영감이 앞서 갔다”로 서술하여 객관화되어 있으며 훼손된 가부장적 권위와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의 회복의지가 “애송나무”로 치환되어 있다.

이처럼 허구적 상황 묘사나 인물의 감정을 서술자의 관찰적 입장이 돋보이는 시각적 문체로 처리하여 인물들의 격렬한 감정을 여과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즉 객관적 거리두기는 문체의 시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동시에 서정적 효과를④ 획득하는데 격렬한 감정의 서술 대신에 산을 배경으로 풍경화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문체뿐만 아니라 과거 에피소드가 사전제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전제시란 현재의 사건이 진행하는 도중에 뒤이어 일어날 사건을 앞질러 제시하는 기법을 말한다.


억쇠는 물동이에 학의 똥을 받은 탄실과 함께 몰래 마을을 떠났으나 다음날 탄실이 아버지에게 붙잡혀 마을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며 탄실은 이미 정해놓은 혼처로 시집을 간다. 이장 영감의 과거 회상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과거 에피소드의 비극은 덕이와 봉네의 혼인으로 말미암은 바우의 감정적 소외감을 보다 설득력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전제시의 효과를 가진다.


즉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동기로써 덕이와 봉네의 혼인을 들 수 있다면 한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에서 비롯하는 비극은 이장영감의 과거 에피소드(episode)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장영감은 탄실을 이웃마을로 떠나보낸 이후 학이 날아와도 춤을 추지 않는다. 학이 마을에서 갖는 상징성을 염두에 둔다면 억쇠는 덕이와 봉네의 혼인 때문에 마을을 떠나는 바우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억쇠는 속으로 삭힐 뿐이지만 바우는 감정적 소외감을 이념의 힘을 빌려 마을 단위의 비극을 불러온다.


봉네가 물동이에 학의 똥을 받아 덕이에게 사실을 알리는 장면에서도 이장영감의 과거 에피소드가 한 문장으로 삽입되어 있고 또 이장영감이 덕이로부터 봉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 다음 인용문에서 사전제시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셋 가운데 누구에게도 쓰라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저녁때가 거의 되어서야 이장 영감은 가만히 눈을 떴다. 마음을 작정하였다. 봉네는 그 옛날 탄실이어서는 안 된다 했다. 또 그로 해서 설사 무슨 변이 있다 해도 덕이의 일생이 또 억쇠 자기의 평생처럼 텅 빈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했다.


덕이와 봉네, 바우를 두고 이장영감은 억쇠와 탄실의 경우를 되짚고 있다. 이는 과거를 염두에 두고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그 결정 속에서는 앞으로 있을 비극을 암시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원형적 모티프로서 서정성의 획득인데 자연친화적 삶의 양식에서 얻어지는 서정성과 격렬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보여주기의 기능을 하는 시각적 문체를 통해 얻어지는 서정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둘째, 공동체의식을 지탱하는 전통적 가부장적 종적 질서가 이념도구적 폭력에 의해 역전적 종적 질서로 치환되는 구조가 서사적 사건의 골격을 이룬다. 셋째, 과거 에피소드가 복선 기능을 하는데 사전제시의 기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2) 재생 모티프(rebirth motif)의 은유화 - 박경리의 「不信時代」


물신화는 원시시대의 물신숭배에서 비롯하며 현대사회에서 물신은 화폐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물신화는 물질의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우선하는 타락한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적 현상으로 배금주의의 사회적 현상을 가리킨다. 물신화 현상은 인간이 주체이고 화폐가 수단이었던 순리적 관계가 역전되어 화폐가 인간을 규제하고 수단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는 개인과 사회조직체가 공동체 생활에서 마땅히 가져야할 사회도덕의 결여가 불신사회를 조성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사회도덕의 결여 원인이 한국전쟁에 있다는 사실을 도입부분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전후사회가 극복해야할 과제로서 불신을 꼽고 있다. 작품구성 역시 불신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천명이 결말로 설정되어 있다. 진영이 불신을 경험하는 사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병원은 환자에게 주사액을 속이거나 동네 건달이 의사 행세를 하는가 하면 빈 약병을 내다 판다. 당연히 거리에는 진짜 약병에 든 가짜 약들이 범람한다. 게다가 진영의 아들 문수는 병원에서 의사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생죽음을 당한다.


의사는 중대한 뇌수술을 엑스레이도 찍어보지 않고, 심지어는 약 준비조차 없이 시작했던 것이다. 마취도 안한 아이는 도수장(屠獸場) 속의 망아지처럼 죽어 갔다.


병원은 어떤 사회조직체보다 생명을 고귀하게 여겨야함에도 불구하고 진영의 경험에 의하면 병원은 생명을 담보로 영리추구에 집착한다. 급기야 생명을 경시하는 수술 태도까지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후사회의 도덕적 혼돈에서 비롯하는데 사회조직체로서 마땅히 준수해야할 도덕성보다 배금주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타락과 달리 사회조직체의 타락은 물신화 풍조가 광범위한 현상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대적 속성으로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의 진영은 의외로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절에 모시지만 친정 모친의 뜻에 따른 일이다. 문수의 사후세계를 위해 백중맞이를 하는 절에서 진영은 곤혹을 치른다.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줏돈이 적어 늦도록 기다린 다음, 서장댁의 백중맞이가 끝난 다음에야 불공을 드린 것이다.


병원과 마찬가지로 절에서 돈 없는 집안의 위패는 구박덩어리이며 사후세계의 영혼을 위한 백중맞이 역시 영리를 최우선시하는 타락한 절의 실상을 경험한다. 즉 진영은 “당신네들 같으면 중이 먹고 살갔수”라는 중의 대꾸에서 알 수 있듯이 영혼을 담보로 영리추구를 하는 종교의 물신화 현상을 체험한다.


종교 역시 사회조직의 일부라고 한다면 마땅히 지켜야할 사회도덕성을 상실한 것이다. 신뢰를 보낼 수 없는 종교의 타락 앞에서 진영은 깊은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종교의 사회적 역할은 건강한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므로 전후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불신시대임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갈월동 아주머니를 통해 인간관계의 물신화를 읽을 수 있다. 아주머니는 상배를 믿고 “오십만환”을 빌려주었으나 회사의 전무인 상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돈을 떼이게 되자 김씨에게 빚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김씨는 사장으로부터 약속어음을 받지만 아주머니에게 전해주지 않는다. 상배나 김씨가 갈월동 아주머니와 함께 천주교 신자라는 점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이지만 동일한 신앙을 가졌다는 종교적 연대감이 물신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병원과 절이 사회조직체로서 순리적 기능을 외면하고 물신화로의 타락을 보여준다면 갈월동 아주머니의 경우 배금주의로 타락한 인간관계를 제시한다. 사회조직체의 타락은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타락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물신화는 전후사회의 당대적 현실을 제시한다. 요컨대 불신사회이다.


물신화의 사회적 경향을 가져온 원인으로 도입부분에서 암시적으로 언급되었듯이 전쟁의 영향 때문이다. 전쟁 미망인이며 아들마저 잃은 진영은 자신을 억압하는 불신시대의 모든 조건들을 불살라버리고자⑦ 모성적 용기를 가진다. 비록 문수를 매개체로 하지만 불이 정화의 의미를 가진다는 측면에서 모성적 용기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재생 모티프(rebirth motif)의 은유화이다. 재생 모티프는 전통적 의미로서의 모티프이다.⑧

모티프는 의미론적 범주의 주제를 형성하는데 직접 기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주제 형성에 참여하는 모티프를 음악 용어를 빌려와 라이트 모티프(leitmotive)라⑨ 한다.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불태우는 결말부분의 정화의식은 재생 모티프의 은유화로서 주제형성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


전쟁미망인이자 아들마저 잃은 진영은 물신화 경향으로 나타나는 불신사회에 대항하고 자신의 삶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새 출발을 위한 의식을 준비한다.


진영은 부엌에서 성냥 한 갑을 외투 주머니에다 넣고 집을 나갔다. 오랫동안 마음속에서만 벼르던 일을 오늘에야말로 해치울 작정인 것이다. 진영은 눈이 사북사북 밟히는 비탈길을 걸어 올라간다. 진영은 고슴도치처럼 바싹 털이 솟은 자신을 느낀다.


진영은 절에서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찾아와 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사진과 위패를 불태운다.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불태우는 의식은 죽은 아들에게 자신을 묶어 두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죽어버린 추억”으로 환치하여 과거와 결별하는 행위이며 전후 상황으로부터의 결별 선언이다.⑪


바로 그 순간에 불신사회에 항거할 수 있는 생명력을 느낀다.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라는 중얼거림에서 알 수 있듯이 항거하는 힘이 생명이라는 점에서 모성적 발상을 만날 수 있는데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다. 그것은 정화의식을 통한 재생 모티프의 은유화로 읽을 수 있다.


이상의 분석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전쟁 미망인의 일상적 체험을 통해 전후사회의 폭넓은 물신화 풍조를 제시한다. 그 원인으로 사회도덕의 타락을 꼽을 수 있다. 개인 차원의 타락뿐만 아니라 사회조직체의 타락으로 병원과 절에서의 체험을 들 수 있다면 사회도덕성의 상실 또는 경시는 전쟁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전후사회의 속성으로써 개인의 타락을 내포하는 사회조직체의 부도덕성을 제시한다.


둘째, 물신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부도덕성을 극복하기 위한 모성적 용기를 보여준다. 용기가 생명에 근거하는 발상이 그것인데 불신사회와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근거의 확인이라는 점에서 불신사회에 대한 항거의 의미를 가진다. 구체적으로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불태우는 의식으로 나타나며 그와 같은 불을 통한 재생 모티프의 은유화는 주제 형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라이트 모티프이다.




① 김상태, 소설의 문체, 현대소설론, 평민사, 1999, 211∼216 쪽.


② 이범선, 학마을 사람들, 현대문학, 1957, 1.


③ 이범선, 학마을 사람들, 현대문학, 1957, 1.


④ 한용환, 앞의 책, 236∼239쪽 참고.


서정소설은 계기적이고 인과적인 서사적 흐름 속에 서정시에 공존하는 이미지들을 투영하기도 하며 개성적인 인물의 행위를 시적 페르소나로 탈개성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서정적 효과를 추구한다. 말하자면 서정소설이란 일종의 위장된 서정시로서 소설이며 자아에 투영된 세계의 인상을 반영하기 위해 시정신의 실험을 산문 속에 도입한 서사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학마을 사람들"에서 주목할 서정성은 소설의 공간으로써 자연환경과 인물들의 영향관계이다.


인물과 상호영향의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을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자연환경과 삶이 밀접한 영향관계를 맺는 데에서 서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가령 학이 돌아온 날 마을잔치가 벌어진다던가 학의 똥을 물동이에 받으면 청혼을 한다던가 학을 吉凶禍福의 판단기준으로써 받아들인다던가 하는 등은 자연환경과 삶의 밀접한 관계를 뜻한다. 이와 같은 自然親和的 삶의 양식이 서정성을 획득한다. 왜냐하면 自然은 서정성의 本體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서정적 요소는 자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⑤ 이범선, 앞의 책.


⑥ 박경리, 불신시대, 현대문학, 1957, 8.


⑦ 채진홍,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확인, 1950년대의 소설가들, 나남, 1994. 254쪽.


⑧ 모티프는 문학에서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전통적인 의미에서 모티프이다. 그것은 작가와 시대가 바뀌어도 문학 작품 속에 변하지 않고 나타나는 이야기의 핵이란 뜻이다. 신화나 동화에는 어느 나라 어느 곳에나 똑같이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이야기의 뼈대가 있다. 그러한 것이 전통적인 의미의 모티프이다.


둘째,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모티프 개념인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이야기의 단위를 뜻한다. 즉 보리스 토마셰프스키는 단순하고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단위를 모티프로 정의한 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모티프를 동적 모티프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모티프를 정적 모티프로 분류한다. 토도로프는 결합 모티프(bound motifs)와 자유 모티프(free motifs)로 분류하는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때 삭제하면 사건의 연결에 혼란을 주는 모티프를 결합 모티프로, 삭제해도 서사적 일관성을 깨뜨리지 않는 자유 모티프로 규정한다.(보리스 토마셰프스키, 한기찬 옮김, 주제론, 신비평과 형식주의, 고려원, 1991, 참고)


⑨ 한용환, 앞의 책, 140쪽.


⑩ 박경리, 앞의 책.


⑪ 정호웅, 50년대 소설론, 1950년대 문학연구, 예하, 1991. 58쪽 참고.

淨化儀式을 “세계의 폭력성에 맞서 나를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 회복의 선언이며 출발”로 의미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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