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의 문학적 형상화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1) 전형적 인물의 형상화 - 손창섭의 "剩餘人間"
이 작품은 인물의 평면적 성격에 초점을 둘 수 있다. 인물에 대한 이해가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로 볼 수 있다면 손창섭에 대한 상반되는 두 입장의 차이는① 인물이해를 위한 접근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형식주의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은 인물의 기능적 측면을 중요시하고 사실주의자들은 주제적 측면을 강조한다.
즉 기능적 측면은 인물을 플롯의 하위에 두며 이야기의 연대기적 논리의 파생물이 아닌 플롯의 한 기능으로 여긴다. 따라서 인물이 플롯과의 관련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핵심이 놓이고 인물을 특정한 모티프들을 분류하고 질서화하는 보조수단으로 보거나 혹은 이야기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으로 본다. 반면에 주제적 측면은 환경과 관련된 이론으로서 <어떤 인물인가, 무엇을 뜻하는 인물인가>에② 주안점을 둔다.③
손창섭의 소설적 주제를 부정적이고 왜곡된 인간상의 창조라고④ 한다면 주제적 측면으로써 인물을 바라본 것이요, 육체적․정신적 불구자들이 황폐한 전후현실이라는 당대성의 의미를 획득한다는 이해는 기능적 측면이다.
이와 같은 기능적 측면의 이해가 가능한 것은 손창섭의 인물들이 대부분 정신적 외상(trauma)를 가진 전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평면적 인물은 허구적 상황이나 환경과 아무런 영향관계를 맺지 않는데 이는 작가의 인간관이 일관성을 가지고 인물에 지속적으로 투사된다는 것을 뜻한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방과 길의 부정적 이미지나⑤ 음울한 배경이⑥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인물의 평면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물이 플롯의 수단으로 작용할 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된 원리는 플롯이기 때문이다. 모멸과 연민으로⑦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식물적 인간이다. 「공휴일」의 도일은 마음에 없는 금순과 약혼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비오는 날」의 원구도 동욱의 부탁을 외면하며 「생활적」의 동주는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고 「미해결의 장」의 지상도 광순의 이부자리에 들어가 잠을 잘 뿐이다.⑧
「잉여인간」의 천봉우 역시 병원 대합실에서 없는 듯 있다가 간호원을 그림자처럼 뒤쫓아갈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실의의 인간이다. 전쟁의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자신의 삶조차 방임하는 실체 없는 그림자다. 이처럼 잉여적 인간으로⑨ 그려지는 봉우가 자기지향성(self-direction)을 결핍하는 직접적인 계기는 전쟁체험에 있다.
말하자면 봉우는 오관(五官) 중 다른 감각기관들은 다 자지만은 청각만은 늘 깨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자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된 연유를 그는 6․25 사변으로 돌리는 것이다. 피난 나갈 기회를 놓치고 적치(赤治) 삼 개월을 꼬박 서울에 숨어 지낸 봉우는 빨갱이와 공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잠시도 마음놓고 깊이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밤이나 낮이나 이십 사 시간을 조금도 긴장을 완전히 풀어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처럼 불안한 긴장 상태가 어느덧 고질화되어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⑩
피아의 폭력적 틈바구니 속에서 부모와 형제마저 잃은 봉우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청각능력을 발휘하지만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뒤이어 의욕의 상실과 피곤이 따라온다. 삶에 대한 적극적 자세를 결핍하는 실의에 빠진 정신적 외상(trauma)을 가진 인물이다. 막무가내로 미스 홍을 따라 다니는 점에서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측면과 상황에 대한 분석력의 결여를 함께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정신지체의 현상은 소외감과 열등감을 내포한다.⑪
또한 손창섭의 소설은 대부분 열린 플롯(open plot)을⑫ 가지고 있다.⑬ 「公休日」의 도일은 약혼을 파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비오는 날」의 원구는 호박 덩굴 우거진 밭두둑을 길 잃은 사람처럼 허정거리며 걸어가고 「雪中行」의 고선생은 눈 내리는 밤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며 「血書」의 준석 역시 어두운 밤길을 외발로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流失夢」의 철수는 어두운 골목 안으로 걸어간다.
또한 「未解決의 章」의 지상은 길에서 느닷없는 구타를 당한다. 「生活的」의 동주는 방에서 순이의 주검에 입맞추고 「稚夢」의 소년들은 방에서 을미의 상실을 맛보며 「人間動物園抄」의 사람들은 감옥 안에서 창살 너머 하늘을 바라본다. 이처럼 갈등의 해소 또는 사건의 해결로서 결말이 없는 열린 플롯을 가지고 있는 점은 「剩餘人間」도 마찬가지다.
사건을 이끌어 가는 인물들에서 결말이 도출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인지할 수 없는 숨은 공간에 있던 채익준의 아내가 병들어 죽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서만기와 봉우 처의 갈등이 미해결로 남아 있으며 홍인숙 간호원을 뒤쫓는 봉우의 행태도 이렇다할 해결이 없으며 비극의 당사자인 채익준의 가난도 마찬가지다.
즉 봉우의 처가 병원 건물을 매개로 서만기를 유혹하고 협박하는 분규부분이 채만식의 아내가 병사하는 정점부분과 직접적인 인과성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는 평면적 인물에 소설이해의 무게가 놓이는 것이 아니라 허구적 상황 또는 플롯에 무게 중심이 놓이는 것을 뜻한다. 인물에 대한 주제적 접근을 하면 전후현실을 인물들이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초점을 두게 되지만 기능적 접근을 통해 전후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정신적 외상을 가진 전형적 인물형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이 남긴 참상을 고발한다는 평가에⑭ 도달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신적 외상을 가진 전형적 인물인 봉우를 통하여 자기지향성의 결여를 보여준다. 이는 전쟁체험에서 비롯하는 기형성으로써 정신적 불구의 양태이다. 전쟁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정신적 양태를 보이는 인물을 잉여적 인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쟁 후유증이 산재하는 전후의 비정상적인 사회를 제시한다.
둘째, 열린 플롯을 통해 갈등의 미해결 상태를 결말로 삼는데 전통적인 소설의 구조로 전후사회를 형상화할 수 없다는 작가적 인식을 보여준다. 즉 인물에 대한 주제적 접근이 아니라 기능적 접근을 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로 볼 수 있다.
2) 정신적 외상(trauma)의 형상화 - 손창섭의 「神의 戱作」⑮
문학에 대한 신념으로 나타나는 S의 문학관은⑯ 육체적‧정신적 기형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것은 유년기의 체험에서 형성된 정신적 외상(trauma) 때문이다. S는 편모와 유곽거리에 살면서 어머니의 외도를 목격한다. S는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방문을 흔들었으나 낯선 남자는 도망치듯 달아나고 어머니는 증오에 찬 눈으로 “칵 뒈져라, 뒤져. 이 망종아” 라며 심한 구박을 한다. S는 어머니의 두 번째 외도를 목격한 뒤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소동과 S의 어머니와 동침을 연결하여 이해하면 정신적 외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모성의 양가성 및 모성고착임을 알 수 있다.
사타구니에 별안간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었다. 어머니의 손은 단정하게 그것을 주물러 주었다. 그러자 그의 조그만 부분은 어이없게도 맹렬한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어머니는 놀라선 지 주무르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놓지는 않고 한참이나 꼭 쥔 채로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의 감촉을 향락하듯이 고간(股間)에 힘을 주어 꼭 끼었다.⑰
이 사건은 S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수치심은 어머니의 동침사건과 결부되어 극히 희미하나마 일종의 까닭 모를 공모의식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공모의식은 낯선 남자 즉 멧돼지 같은 사내 때문에 나타난 심리적 현상이다. 또한 수치심은 S와 어머니의 행복한 일치가 어긋남을 의미한다. 어머니는 S의 사랑의 대상이다. S 역시 어머니가 욕망 하는 사랑의 대상이며 어머니에게 결핍된 남근이라는 기표를 제공한다.⑱
S는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어머니의 욕망에 종속시키게 된다. 모성고착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S의 관계는 낮선 남자에 의해 금지되고 아버지의 결핍으로 어머니·아버지·S의 삼각관계가 정립되지 못한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억압하여 무의식화하고 아버지라는 사회적 법과 질서와 규율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사회화를 성취할 수 있는데 이에 실패한다. 즉 부성의 페르조나(행동양식)를 체험하지 못함으로써 어머니의 “난 꼭 재 손에 죽을 거야” 라는 S의 모성의 양가성이 나타난다.
야뇨증은 모성의 영역에서 부성의 영역으로의 심리적 성장 즉 사회화의 실패에 따른 생리적 현상으로 읽을 수 있는데⑲ “겡까도리(싸움닭)”의 별명을 얻게 되는 직접적 계기이고 지즈꼬로부터 “혈육의 정”을 느끼는 동기가 된다. 또한 사회적 질서와 법과 규율이라는 부성적 페르조나의 경험 결핍에 따라 S의 청소년기가 부모도 형제도 집도 없는 “겡까도리”로써 이성적인 사회적 질서에 편입되지 못하고 그 밖에서 존재하는 기표로 읽을 수 있다.
신경득의 지적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즉 바라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보여짐의 존재라는 이중적 자기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S는 오직 자신의 시선으로만 현실을 바라볼 뿐이다. 병원에 입원한 후 미요꼬의 호의를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으로 본다던가 life work를 work life라고 우기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비현대성, 비문화성, 비일반성은 그의 정신과 육체의 기본 형성 요소인 기형성과 불구성에서 돋아난 가지(枝)로서, 그의 생활과 문학에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투영해 온 근원인 것이다.⑳
정신적 외상의 원인을 유년기의 체험에서 시작하여 야뇨증으로 대표되는 부성적 페르조나의 경험 결핍과 그에 따르는 바라봄과 보여짐의 이중적 자기인식의 실패로 정리한다면 자신의 생일조차 기억하지 않으며 정상인은 “규격품 인간들”이고 자신은 “야생 인간”이며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S는 손창섭을 문학적 자아로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S를 손창섭의 문학적 자아로 볼 수 있으며 정신적 외상의 개인적 체험과 밀접한 문학관의 형성과정을 형상화한다. 둘째, 정신적 외상의 내용물은 모성고착과 모성의 양가성인데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경험결핍에 원인이 있다.
① 손창섭에 대한 문학사적인 평가는 1950년대의 시공간과 관련하여 엇갈리고 있다. “「혈서」‧「비오는 날」‧「인간동물원초」 등이 대표하는 손창섭 문학은 닫힌 공간 멈춘 시간의 세계를 섬짓하게 그려낸다. 무의미한 현재의 순간순간만이 각기 고립된 파편으로 점점이 찍혔다 사라질 뿐이다.
과거는 기억 속에서조차 지속되지 않고 무화되었고 미래를 떠올릴 꿈길이 봉쇄되었으니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출구가, 출구를 상상 속에서라도 열 수 있는 꿈꾸기가 없는 이 무서운 잿빛 세계는 손창섭 특유의 인간 모멸주의의 소산이면서 황폐한 전후 현실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니 손창섭 문학의 “길” 없음은 50년대적 특성을 가장 명료하게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정호웅, “길”의 열림과 끊김, 한국문학 50년, 문학사상사, 1995. 156∼157쪽)”는 쪽과 “전쟁이라든가 그로 인한 1950년대 현실의 황폐상 등 객관적인 현실의 탐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김윤식‧정호웅, 한국소설사, 예하, 1994. 331쪽)”는 쪽으로 대표된다.
② 손창섭의 인물에 대해 극단적으로 주제적 접근을 할 경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배경이 곧 환경은 아니다. 예컨대 한 남자가 설악산에 갔다고 할 때 설악산이 배경이 될 수는 있지만 곧바로 환경이 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설악산 사이에 구체적 연관이 맺어져야 한다. 그러한 구체적 연관이 없이는 설악산은 한갓 공간적 배경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손창섭 문학의 예술적 성취도를 평가하는 데 있어 이 문제는 대단히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하정일, 전쟁 세대의 자화상, [작가연구], 1996, 창간호. 38쪽).
③ 오양호, 소설의 인물, 현대소설론, 평민사, 1999. 136쪽.
④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민음사, 1997. 155쪽.
⑤ 김상태, 한국현대문학론, 평민사, 1994. 141쪽 참고.
“손창섭의 소설 속에서 인간의 실존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방”과 “길”의 이미지를 지적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방은 언제나 부정적인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폐쇄적이고 절망적인 공간 속에서 무의미하게 허우적대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 손창섭의 작품에 나오는 방은 하나같이 어둡고 침침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무겁게 누르고 있는 방이다.”
⑥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믿음사, 1992. 247쪽.
⑦ 신경득, 한국전후소설연구, 일지사, 1983. 191쪽.
“손창섭의 행위양식은 그의 성장기를 통하여 심층심리에 자리잡은 願望과 怨恨 때문에 반항하고 좌절하고 마지막엔 나름대로 사회화를 꾀하다. 이 경우를 유종호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면 반항은 侮蔑이고 좌절은 憐憫이 될 것이다.”
⑧ 신경득, 앞의 책, 242쪽.
신경득은 심층심리분석의 측면에서 인물들의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어머니에게 固着하여 아버지의 발견을 하지 않기 때문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靜寂主義에 안주하게 되어 결국 도피의 메커니즘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⑨ 剩餘人間(Lishny chelovek)은 이상주의와 선(善)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 때문에 효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외부의 불의와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방관만 하는 지식인이나 귀족을 가리키는 문학용어이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널리 등장하는 인물유형으로, 러시아의 農奴制를 반영하여 나온 용어이다.
1950년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잉여인간의 일기」가 출판된 이래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여,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등에 등장하였다. 그밖에 A. 체호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잉여인간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⑩ 손창섭, 잉여인간, 「사상계」, 1958, 9.
⑪ 채익준은 사회적 관심도가 매우 높아 현실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있으나 사회적 활동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부정적 인물로 분류할 수 있다. 신문을 보며 悲憤慷慨를 하는 裏面에는 사회적 소외감과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절대적 궁핍의 처지에서 알 수 있다. 손창섭 소설에서 인물의 현실부정성은 無意味나 侮蔑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植物性을 통해 형상화되는데 채익준은 현실비판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변별성을 갖는다.
⑫ 김정자, 소설의 구조, 현대소설론, 평민사, 1999. 66∼86쪽.
이야기와 플롯의 변별성은 인과성에서 얻어진다. 플롯을 육체적·정신적 행위의 연속이라 할 때 각각의 행위들 사이에는 인과성이 개입되어 갈등의 충돌과 해소가 가능하다. 갈등의 전개양상에 따라 부룩스와 웨렌(C. Brooks & R. P. Warren)은 플롯을 발단·분규·정점·대단원으로 나눈다.
이스트먼(R. Eastman)은 플롯을 정점(climax)이 없는 느슨한 플롯(loose plot)과 정점이 있는 팽팽한 플롯(tight plot))으로 분류한다. 존스(Edward H. Jones)는 팽팽한 플롯을 열린 플롯(open plot)과 닫힌 플롯(closed plot)으로 다시 나눈다. 즉 플롯이 결말 없이 끝나는 경우를 열린 플롯이라 하고 결말을 독자에게 명확하게 제시하여 허구적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을 닫힌 플롯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열린 플롯은 일반적으로 결말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 대부분 결말의 부재 또는 해결의 부재로 나타난다(김윤식·정호웅, 한국소설사, 예하, 1994. 331쪽).
⑬ 김상태, 언어와 문학세계, 이우출판사, 1989. 154쪽 참고.
김승옥과 손창섭을 비교하면서 “별반 뚜렷한 스토리가 없는 대신에 분위기만 있다”는 공통점을 들고 있다.
⑭ 권영민, 앞의 책, 156쪽.
⑮ 신경득, 앞의 책, 187쪽.
신경득은 「神의 戱作」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손창섭의 작품행위는 결국 자기가 자라면서 줄기차게 받아온 수모와 원한에 대한 가학적인 혐오와 보복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형상화된 것이 「神의 戱作」이다.”
⑯ 예술가소설은 성장소설의 하위 유형에 속하며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예술에 대한 신념을 소설화한 작품을 일컫는다. 「神의 戱作」은 자화상이라는 副題가 있고 주인공 S는 손창섭의 머리글자(initial)로 추측할 수 있으며 작가연보와 주인공 S의 행적이 거의 일치한다(「작가연구」, 1996. 창간호, 159쪽). 뿐만 아니라 「曠野」․「落書族」․「師弟恨」․「生活的」․「人間動物園抄」․「血書」 등의 창작 동기가 되는 개인적 체험이 내용을 이룬다.
⑰ 손창섭, 신의 희작, 현대문학, 1961, 5
⑱ 김진기, 앞의 책, 47쪽.
일반적으로 기표는 기의와 함께 기호를 구성한다. 기표는 물적인 의미 담당체이고 기의는 그 의미를 말한다. 요컨대 동메달이라는 기표는 3위라는 기의를 뜻한다.
⑲ 신경득은 야뇨증에서 尿道 사디즘과 남근 성격을 읽는데 남근 성격은 일종의 자기애, 나르시시즘으로서의 자기방위의 양식으로 보며 김진기는 야뇨증에서 수치심과 복수심을 읽는다.
⑳ 손창섭, 앞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