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통한 자기서술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by 이순직

1) 객관묘사와 내적 독백의 병행 - 송병수의 「쑈리 킴」


내적 독백은 어떤 화자도 끼여들지 않은 한 인물의 무언의 사고들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① 이 작품은 객관적 묘사와 쑈리 킴의 내적 독백이 병행하는 서술방식, 즉 타자를 통한 자기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 불독은 쑈리를 가까이 부르더니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십 달러 짜리 두 장을 꺼내 뵈며 「쑈리 킴…」 어쩌구 은근히 지껄인다. ㉯ 이 돈을 줄 테니 오늘밤에 색시한테 가자는 말일 게다. ㉰ 어려운 양말(英語)이지만 놈의 눈치코치로 이쯤은 다 알아들을 수 있다.


단락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도 ㉮은 객관적 묘사이며 ㉯와 ㉰은 쑈리의 내적 독백임을 알 수 있다.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동일한 관점에서 연속적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의 객관묘사와 인물의 주관적 심리가 내적 독백으로 번갈아 배치되어 있다.


즉 객관묘사와 내적 독백이 병행하면서 짜여진 문장들이 지배적 서술을 이룬다. 이와 같은 서술은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인물의 주관적 심리 메커니즘을 여실히 표출해냄으로써 생동감을 부여한다. 내적 독백은 초점주체를 겸하는 서술자로서 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때 <나>는 자전적인 한계를 벗어난 예술화한 “나”이다.③


쑈리는 객관묘사를 제외한 서술에서 서술자이며 동시에 초점대상이고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이다. 쑈리의 정신적 성장환경은 전후현실로써 성의 상품화가 일상화된 주둔지 주변이며 안티고니스트(antagonist)로 존재한다. 비록 “저 산너머 햇님”을 부르는 소년다운 동심을 가지고 있으나 고아원에서 반장을 패주고 도망치기도 하며 따링 누나에게 가자는 불독을 데려갈 수 없는 이유를 막연히 짐작하며 쩔뚝이의 속내를 꿰뚫어본다.


또한 “식당놈을 잘 궈삶으면” 계란과 칠면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안다. 예컨대 부정적인 성인의 세계를 체험한다. 특히 쩔뚝이의 모략이 드러나는 결말부분은 소년다움과 동시에 부정적인 성인세계를 체험한 영향이 드러난다.


그저 따링누나를 만나 왈칵 끌어안고 실컷, 실컷 울어나 보고, 다음에 아무 데고 가서 오래 자리잡고 “저 산너머 햇님”을 부르며 마음놓고 살아왔으면… 쩔뚝이가 죽지 않고 살아날까 봐 걱정이다. 그놈이 살아나기만 하면 아무 때고 그놈의 손에 성해나진 못할 것이다. 쑈리는 왜 그놈의 대갈통을 으스러 버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쑈리는 쩔뚝이와 싸운 뒤 도망치면서 섬뜩한 살의를 보여준다. “저 산너머 햇님”과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이와 같은 심리적 격앙상태는 미군 부대를 출입하면서 경험한 부정적인 성인세계의 영향에서 비롯한다. 쩔쭉이로 대리되는 인간의 獸性과 악과 폭력과 공포 및 전쟁으로 인해서 타락한 삶을⑤ 알아버린 것이다.


따라서 쑈리로 대표할 수 있는 전후체험의 성장은 소년이면서 어른의 얼굴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비록 주둔지 주변을 배회하면서 펨프 노릇을 하는 등 타락한 삶의 방식이긴 하지만 그 속에 진정한 희망으로써 “저 산너머 햇님”이 놓이는 경우처럼 이율배반적인 삶의 실체를 제시함으로써 성장소설의 한 갈래를 보여준다.


또한 익명성은⑥ 인물들의 체험을 개인적이고 특수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환치해 놓는다. 경제적 궁핍에 쫓겨 미군을 상대로 성의 상품화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여인상으로 “따링 누나”를 꼽을 수 있으며 “쑈리”는 주둔지 주변을 배회하는 펨프의 보통명사로 시대적 특성을 획득한다.


이와 같은 익명성과 내적 독백의 지향점은 전후체험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성장소설은 소년기에서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한 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을 일컫는다. 따라서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의 과정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과 주관적인 차원에서 세계의 의미를 깨닫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이상의 논의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객관묘사와 내적 독백을 병행하여 타자를 통한 자기 형상화의 양상을 가진다. 또한 객관적 현실에 대한 심리적 움직임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를 통해 생동감을 획득한다.


둘째, 주둔지 주변에 놓인 삶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즉 쑈리와 따링누나 등은 개성적이고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주둔지 주변에 기생하는 보편적 인물들의 전형을 제시한다.


2) 초점대상의 이행 - 이호철의 「脫鄕」


이 작품의 서술유형을 분석하면 타자서술에서 자기서술로 移行하고 있다.⑦ 즉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두찬과 광석의 갈등을 보고할 뿐 갈등에 개입하지 않는다. 인물의 대화에서 직접 화법이 구사되는 것도 타자서술에 충실하다는 증거이며 광석이 화차간에서 떨어져도 “나”는 두찬을 그냥 가도록 내버려 둘 정도로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두찬에게 다음과 같은 핀잔을 받는데 직접화법의 타자서술로 처리되었다.


“야, 너 오늘 죽여 버린다. 어잉 이 새끼야, 넌 왜 그때 혼자만 간? 왜 날 붙들지 않안? 부르지두 않안? 그리군 이제 와서 괄세야, 이 개새끼야. 그땐 암말두 안허구 이제 와서. 넌 잘핸 것 같니? 잘핸 것 같애? 하늘이 내려다본다, 이 뻔뻔헌 새끼야.”


이와 같은 타자서술은 “나”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거리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즉 실향의 현실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실향현실을 수용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초점대상인 광석․두찬․하원에 비해 서술자인 “나”는 한시적이라고 믿는 귀향의 감정적인 기다림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자기서술에서 확실해진다.


지금 내 마음 밑 속에서 일어나는 돌개바람 같은 것을… 아 어머니! 이미 내 마음 밑 속에선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돌아갈 기약 없는 고향에의 그리움으로 눈물이나 짜고 있는 감상주의로부터 결별하고 단독자로 나서는⑩ 정서적 차원의 귀향소망이 뿌리내리기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즉 영토적 분단인식으로 전환하는 작품 내적 패러다임이 타자서술에서 자기서술로의 移行과 맞물려 있다.


귀향소망이 뿌리내리기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서술기법으로 타자서술에서 자기서술로의 移行을 꼽을 수 있다. 이는 형식의 내용화라는 소재의 문학적 형상화를 염두에 둘 때 매우 중요한 서술태도의 변화로 지목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서술양상의 측면에서 타자서술은 귀향소망을 형상화하며 자기서술은 객관적 현실로서 영토적 분단인식 내지는 분단수용의 인식을 구체화하는데 기여한다.




① 한용환, 앞의 책, 115∼116쪽 참고.


스콜즈와 켈로그는 다음과 같이 표준적 자질들을 예시한다. ㉮ 작중 인물의 자기언급은, 만약 있다면, 일인칭이다. ㉯ 현재의 담론 순간은 이야기의 순간과 같다. ㉰ 언어, 즉 사투리‧말투‧단어, 그리고 문장의 선택은 화자가 어느 곳에서 끼여들든지 인물의 성격을 증명할 수 있다. ㉱ 인물의 성격에 있어 어떤 것에 대한 암시는 곧 인물 자신의 생각 안에서 단지 필요로 하는 설명과 함께 만들어진다. ㉲ 受話者의 무지, 혹은 설명적인 필요에 대한 복종 없이, 생각하는 사람 이외에는 가정된 독자(청중)는 없다.


② 송병수, 쑈리 킴, 「문학예술」, 1957, 7.


③ F. K. Stanzel, 김정신 옮김, 소설의 이론, 탐출판사, 1994, 127쪽.


④ 송병수, 앞의 책.


⑤ 이재선, 앞의 책, 95쪽.


⑥ 命名法은 우의적 방법과 음성상징을 이용하는 방법, 별명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특히 별명을 이용하는 방법은 익명성을 전제로 하며 익명의 命名으로 어느 한 계층이나 유형에 속하는 불특정 다수의 전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쑈리 킴」에서 쓰인 익명은 별명을 이용한 것인데 英音訛傳과 外樣的 특징으로 명명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쑈리는 “I am sorry”의 “잘못했습니다․미안합니다”에서 온 이름으로 보기도 하지만(오양호, 앞의 책, 1999. 127쪽) “shorty”의 英音訛傳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꼬마·땅딸보의 英譯으로 볼 수 있는데 미군 주둔지 주변에 기생하는 소년이어서 英音訛傳의 익명이 타당성을 가진다. 따링 누나 역시 英音訛傳로 볼 수 있으며 “darling”에서 왔다. 둘째, 外樣에서 온 익명은 딱부리․쩔뚝이 등이 있다. 딱부리는 눈딱부리의 준말이며 눈이 툭 불거지고 큰 사람을 가리킨다. 쩔뚝이는 쩔뚝발이의 준말로 한 쪽 다리가 성치 않아 쩔뚝거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익명들은 주둔지 주변에서 기생하는 불특정 다수에 속하는 인물들의 전형성을 획득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英音訛傳의 익명들은 본명을 잃어버린 인물로 볼 수 있으며 주둔군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⑦ 일인칭 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는 형식을 갖는데 서술자가 반드시 초점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작품 안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서술상황을 고려해 서술자가 초점대상이 되는 경우는 자기서술이며 초점대상이 서술자가 아닌 다른 인물일 경우는 타자서술이다. 서술자와 초점대상이 일치하면 인물의 외면과 내면을 긴밀하게 조직하는데 자유롭고 일치하지 않으면 서술자는 단순히 관찰․보고하는 기능을 가진다.


⑧ 이호철, 탈향, 「문학예술」, 1955, 7.


⑨ 이호철, 앞의 책.


⑩ 정호웅, 50년대 소설론, 1950년대 문학연구, 도서출판 예하, 1991.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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