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종종 했다. 소설이나 시 쓰는 것도 생각하는 일도 책 읽는 것도 다 그만두고 그저 하릴없이 시간 보내고 싶을 때가 멍 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욕망의 강박감에서 벗어나 자연으로서 순수한 목숨으로 돌아가 꿈꾸듯 시간 보내는 일. 어진내(仁川)에 있으면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엄격히 말하면 이런 무위(無爲)의 기쁨 느낀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겨우 2년 정도? (1996.6.15.)
- 미치고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지금. 춘천 누님이 왔다. 어제. 불콰하게 취한 어제. 옆구리 지나가는 아픈 사건들. 그래도 목숨은 살아가야 하는. 바쁜 흉내로 지울 수 없는 상처. 누구나 있다. 상처. 묻어두고 잊고 쌓인 시간만큼 상관없다 여겨도. 그래서 잔인한. 삶은. 문득 생각나는 외할머니. 대학 1학년 무렵 집에 갈 때 소주 한 병 사들고 거실에 마주 앉아 외할머니와 마셨던. 담배도 음식이라던. 함흥 얘기 자주 하셨던. 함흥 사람들 순박하다던. 햇살 좋던 신창동 3층 빌라 거실에서 늘 심심해하던 외할머니는 안동으로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돌아가셨다. 대학 1학년 무렵 나는 언제 함흥 청진에 한 번 가보나. 꽃다운 새댁 외할머니 키 큰 외할아버지 기다리던 허름한 골목 구경이나 할 수 있나. 내 앞을 산 외할머니 미치도록 그리워지는 시간. 어떤 글로 나를 채워야 하나. (2021.5.19)
- 새벽 늦게 일어나 노트북 펼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절로 멍 때린다. 등 뒤에 남은 숱한 시간들. 서서히 흔적조차 사라진 시간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 쓰던 글도 멈추고 가만히 뒤돌아 본다. 가을이다. 초안산 근린공원은 가만히 아침 햇살에 웅크리고 있고. 그랬다. 여름은 위대했다. 몇은 태어나고 몇은 사라졌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잊혀질 것이고 엇비슷한 이야기가 도처에 꿈틀거린다. 부질없다는 생각은 금물. 아직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시간의 역행을 가로막고 있다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폭포처럼 내리 꽂히는 눈앞의 시간들. 다가오는. 스스로 힘을 줘야 하는 때. (202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