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5.2 - 사람마다 독법(讀法)이 다르다. 세상 읽는 것이 사람을 읽는 것이 책 읽는 것이. 글쓴이는 문장의 의도성(作意)과 내용의 철저함에 그 생명이 있다. 문제는 얼마나 철저히 독자의 독법마저 글에 담느냐이다.
2020.9.17 -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할 것들이 많다. 가장 먼저 표현 욕구다. 문법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며 단어에 대한 폭넓은 취사선택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욕구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용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용물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관점(生觀)인데 이게 쉽지 않다. 생관이나 사관(死觀)은 지식을 통해서 얻거나 만들 수 없다. 물론 종교에 입문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한 글은 쓰지 못한다, 사람을 가르치려 든다.
생사관(生死觀)은 결국 숱한 하루 반복하며 몸으로 겪는 세상살이 통해 자신 모르게 몸 안에 쌓인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저마다 살아온 세월만큼 단단한 생사관을 가지고 있다. 내용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미 내용물 안에 녹아 있기에 의미 구축까지 자연스레 연결되는데 이 지점에서 내용물과 의미 구축 사이에서의 냉혹한 자기 검증이 필요하다.
처음처럼
-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어셨나니
이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미당 서정주, 1987년)
그의 시가 민족의 앞에서 냉혹한 자기 검증을 쉽사리 빠져나간 것은 비단 이것뿐이 아니다. 가미가제 특공대의 유일한 한국인 마쓰이 히데오(인재웅, 印在雄)를 영웅화(軍神化)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마쓰이 히데오처럼 조선 청년들은 일본왕(당시 천황이라 불렀음)을 위해 목숨 내놓으라는 괴벨스 흉내내기도 자연스러웠다. ‘국화 옆에서’(경향신문, 1947년)란 시도 수상하다. 국화(菊花)는 일본의 국화(國花)가 아니던가.
松井伍長頌歌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만 리런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구국대원
구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몇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미당 서정주, 1944년)
마쓰이 히데오가 필리핀 레이테만으로 향하는 가미가제 출정 전날 술집에서 아리랑을 홀로 불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퍼졌다. 동료들은 그가 조선인이란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고 내선일체를 실천하는 이등국민임을 확신하고 감동을 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혔으며 일제 패망 후 인천으로 돌아왔다.
작년(재작년/필자) 11월 24일(29일/필자) 소위 특별 공격대원으로서 전사하였다는 송정오장(松井伍長=본명 印任雄, 23) ('印任雄'은 '印在雄'의 오기임/필자)이 생존하여 방금 인천 월미도에 머무르고 있는데 금 10일 아침 미국 포로 수송선으로 수송되어 인천에 상륙하게 되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허위보도하여 세인의 이목을 속인 것만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제국주의 일본의 천박한 선전 정책이 얼마나 가증한가를 알 수 있다. (1946년 1월 10일자 <서울신문>)
4.19와 관련성이 있는 그의 시는 김수영과 비교할 수 없다. 김수영에게 4.19는 시의 힘을 갖게 하는 사건이고 민족 앞에서 자기 검증을 부단히 거듭하는 반면 서정주는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남의 일이었다. ‘4.19혁명에 순국한 소년시인’이나 ‘1960년 4월 19일’이나 ‘4.19Ⅱ’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저 후배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할 뿐 자신은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4.19를 가운데 두고 서정주와 김수영의 차이를 논문으로, 아마도 석사논문 꺼리는 될 것 같다, 쓰면 재미있고 흥미로울 것 같다) ‘처음처럼’과 ‘松井伍長頌歌’를 쓰던 호연지기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