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1998.6.23 - 15층 연구실. 어느덧 이 공간에도 익숙해진 듯. 어제 동일호 선장 김인용 씨가 신고한 북한의 소형 잠수정을 동해안에서 속초로 예인 중이라는데 대체 이 일은 또 어떻게 진행될까? 결국 김대중 정부의 민족 관리능력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듯. 그것이 국가 관리능력으로 처리되면 이때까지의 정부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결국 분단 시대를 사는 한국인은 두 개의 잣대, 민족과 국가가 대립·대결 구도를 가진 상태의 이율배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들이다.
문학에서 민족이 앞서 자리하고 있으나 이는 선언적 의미 이상은 아니다. 왜냐면 현실을 체감하는 문학의 밀도와 생존의 밀도는 전혀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것이고 따라서 생존의 밀도가 담보된 이후에야 문학의 밀도 역시 그 정교함을 얻을 수 있다.
분단체제
1998.7.1 - 백낙청의 <흔들리는 분단체제>에서① “분단체제 극복 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를 읽었다. 아직 다 읽지 않아 단언할 순 없지만 시각이 확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물론 ‘분단체제’라는 용어 개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나 역시 그와 유사한 개념을 막연히 떠올리고 있었고 그래서 반쪽 국가의 논리가 분단체제를 만들었다는, 즉 남북이 분단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통일을 건국으로 보았을 때 남북한의 지배집단이든 피지배집단이든 일단 “헤쳐 모여”를 하게 되고 통일국가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분단체제는 過渡體制일 수밖에 없다.
①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 비평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