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은 알든 모르든 무엇인가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무엇이 주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주제란 ‘1. (연설이나 토론 따위의) 주요한 제목, 또는 중심이 되는 문제 2. 예술 작품에서 작가가 그리려고 하는 중심 제재나 사상 또는 악상’이다. 달리 말하면 주제란 글쓴이가 글로써 말하려고 하는 중심 내용이다. 그리고 소재는 주제를 구체성 있게 펼쳐내는 데 쓰이는 이야기 재료다. 그러나 때로 소재가 곧 주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글을 쓴다고 하자. 이런 글에서는 어머니가 곧 소재이며 주제이기 쉽다. 이때 주제와 소재를 굳이 나누는 것은 뜻이 없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시 꺼낸다. 지금도 궁극에 닿는 답은 내놓을 수 없다. 다만 어렴풋이 더듬어 본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꺼내는 주체는 바로 나다.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 분명하다. 인생을 살피는 어떤 생각도 나를 중심으로 삼아 나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바로 내가 사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으로 가자.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이다. 이 질문은 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무엇 때문에?’는 직접 동기, 예를 들어 배고파서 돈을 벌려고 결혼하려고…, 따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무엇 때문에’는 우리가 늘 가늠해보지만 ‘어디에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는 우리 삶이 실제 이루어지는 시간과 공간이다.
여기에서 ‘어디에서?’에 눈을 돌려 본다. 우리는 던져진 존재라고 한다. 태어나고 싶은 곳에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없다. 던져진 존재가 틀림없다. 하필 이곳에 던져진 것이다. 이곳을 이르는 말이 몇 개 있다. 세계·자연·세상이다. 가장 포괄성이 있는 단어는 세계인 듯하다. 이 단어 안에 포함되지 않을 사물이나 개념은 없다. 세계를 창조한 신(神) 정도가 예외일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 지금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세계 안에 속한다.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이르는 낱말이다.
‘나’는 이 세계 안에서 산다. 달리 말하면 나는 세계와 마주하면서 산다. 산다는 것은 내가 세계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과정이다. 내가 나의 의식과 감각이 세계에서 오는 자극에 반응하여 의식하고 그에 따라 무엇을 인식하며, 이 인식이 깊어져 사고와 사상이 생겨난다.
나………(교감)………세계
세계는 얼마나 넓고 깊은가. 얼마나 많은 빛과 향기가 있으며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는가. 별만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손가락으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우리는 산과 강·하늘·자동차·빌딩·시험·기차·자동차·신문·사람들……, 우리는 자연 속에 사는 동물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여 사는 사람이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물을 보고 느끼며 제 나름대로 깨닫고 온갖 희로애락을 겪는다. 삶의 흐름 위에서 관심사는 그때그때마다 다 다르고 시간의 공간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롭다.
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인가? 우리는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하려고만 한다면 끝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우리는 펼칠 수 있다. ‘끝도 없는 이야기’가 바로 주제이다.
‘끝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연,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세계 다음으로 포괄성이 큰 단어요 문제가 아닐까. 사랑, 행복, 역사, 시대 따위 문제를 끼워볼 수 있다. 그만큼 삶과 인간의 본질에 닿은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나온 존재이고 자연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정치의 세례를 받아 살며 돈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시대와 역사의 그늘 아래에서 숨 쉬며 누구나 행복을 꿈꾸며 산다. 이 주제는 너무 범위가 넓다. 피할 수 없는 개념들이 내 생활에서 어떤 영향력으로 자리하는가를 살펴 좀 더 이야기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
차례대로 조금씩 관심의 폭을 좁혀 보자.
첫째,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구나 지니게 되는 삶의 몫이 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느끼는 정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와 나누는 우정·사랑·추억 따위가 있다. 금강산을 다녀온 기분,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 생각, 사랑과 우정은 구별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들이 구체성을 띤 주제가 된다.
둘째,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에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글쓰기의 주제가 된다. 사회와 시대, 역사가 우리에게 펼치는 문제들이 많다. 기부금 입학제는 허용할 수 있는가, 이라크 파병은 해야 하는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집회 들이 직접 생활에 와닿을 뿐만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꼭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가 된다.
셋째, 우리 일상과 공동체가 쳐놓은 관심의 울타리 넘어가는,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들의 뿌리가 되는 문제를 주제로 삼기도 한다. 인간 존재와 신·죽음 따위를 주제로 다루는 글들이 그렇다. 이러한 주제도 좀 더 우리 생활에 가까이 끌어올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올바른 신의 개념은 무엇인가 따지든지, 현대인이 짐진 삶의 조건과 종교의 역할이라든지…, 따위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글은 자신의 삶에 어린 문제를 가만 놔두지 않고 늘 진지하고 성실하게 바라보며 탐구하는 자세가 낳은 결과이다. 삶의 주요한 국면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늘 사고하고 사색하는 습관이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밝고 넓고 깊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글의 재료를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에게 주제는 이미 그 마음 안에 있다. 물론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그다음 무엇을 쓸 것인가 정하기도 한다. 어떤 경험을 갖고 그에 따라 생각이 가슴과 머리에 넘쳐나서 글을 쓰는 것이 참다운 글쓰기다. 글을 써야 글쓰기라는 행위가 삶에서 소중하고 유익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교실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강제로 받은 주제를 가지고 글쓰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글쓰기는 엄밀히 말하면 글쓰기라고 할 수 없다. 주제는 자신의 삶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일컫는다. 문제를 남에게서 받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주제는 글쓴이가 지금 마음에 절실하게 느끼고 있거나 깊이 관심을 가지고 살핀 것으로 해야 한다. 주제란 글쓴이의 삶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글쓴이가 매일 겪는 일과 깊이 이어여 있어야 한다는 말. 자기가 지금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는 문제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 자신 있게 또렷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뜻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지금 가장 절실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피거나 무리 없이 가장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계기나 뜻하지 않은 동기에 따라 갑자기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져 글을 쓸 수 있다. 이때에도 주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여러 가지 면에서 깊이 헤아려 생각이 제대로 무르익은 다음에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글은 자신을 바라보려고 쓰지만 남에게 보이려고 쓰는 것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어서야 글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없다. 글은 나의 이야기를 남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모든 이에게 흥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바람직하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관심을 끌까 하고 잔뜩 벼르면서 일부러 글감을 찾아 헤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참으로 절실하게 느끼고 고민한 일과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 그때 글은 독자에게도 절실하게 다가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