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벌판 - 글쓰기 차례

by 이순직

1. 동기


우리는 가끔 글을 쓴다. 또는 글을 꼭 써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과제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거나 누군가 억지로 떠맡긴 원고 청탁에 쫓겨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강제로 하는 글쓰기이다. 달갑지 않고 실제 글을 쓸 때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언제나 그렇지 않지만 글 한 편을 쓰는 일이 어떤 고역만큼이나 지겹게 느껴진다. 이와는 달리 순수하게 내 느낌과 생각을 스스로 정리, 확인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때 다른 이의 부탁 따위는 물론 시간과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글쓴이는 자신을 헤아려 밝히면서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스스로 의욕을 일으켜하는 글쓰기에 초점을 맞춰 글쓰기 과정을 살펴보자.


2. 글쓰기는 과정 노동이다


어떤 이는 불현듯 영감이 떠오르고 그에 따라 한순간에 써 내려가 앉은자리에서 글 한 편을 완성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생과 문장에 능통하여 한 번 붓을 휘둘러 명문(名文)을 남기는 장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니 사전(事前)에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준비한 뒤에 정해진 단계에 따라 글을 쓴다. 그렇게 해야 생각을 온전하게 글로 옮기는 데에 좀 더 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다. 하나로 이어진 과정을 순서대로 밟아 나가야 편안한 가운데 효율성 있게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막 일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원고지에 글자를 적어 넣기 시작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이들이 그에 꼭 맞춰야 할 공인된 과정과 순서는 물론 없다. 글쓴이가 얼마나 글쓰기에 익숙한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글쓰기 버릇은 어떤가, 또 어떤 종류의 글을 쓰려고 하나에 따라 그 과정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흔히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른다. 달리 말하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을 때 우리는 좀 더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다.


* 주제와 소재 선정→(주제토론)→구상→주제문→개요 짜기→쓰기→다듬기


여기서 주제토론은 학교 교실에서 글쓰기 학습을 할 때 필요한 것이다. 주제 하나를 정해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과 느낌을 나눈다면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여러 각도에서 주제를 다시 바라보게 되므로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할 수 있어 바람직하다. 글쓰기 시간에서 글을 쓰지 않고 나 홀로 글을 쓴다면 책을 읽거나 자료를 조사하여 내가 지니고 있는 생각을 좀 더 가다듬는 과정이 된다.


3. 주제와 소재 선정


주제는 글쓴이가 글을 써서 드러내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다. 넓게 보면 우리들이 지니고 사는 갖가지 인생문제 모두가 곧 주제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민족·환경·사랑·우정 따위가 모두 주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는 그 포함한 내용 범위가 너무 넓어서 아직은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성 있게 잡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큰 주제 또는 가주제라고 한다.


이 큰 주제의 범위를 좁혀 우리가 직접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맞춰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정치라는 큰 주제를 ‘인간과 정치→현대 정치의 동향과 구조→도시빈민의 정치 성향과 집권세력에 미치는 영향→2007년 대선 구조와 문제점’으로 좁혀갈 수 있다. 또 사랑이라는 주제 역시 막연하므로 ‘사랑의 종류와 실천→이성 사이에 우정은 가능한가?→나의 첫사랑’ 따위로 범위를 좁혀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얻은 구체성을 갖춘 작은 주제를 작은 주제 또는 참주제라고 한다.


다시 한번 다짐해두면 좋지 않을까. 글쓴이 자신이 잘 알고 익숙한 구석에서 주제를 찾고 정하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 능숙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그 문제를 다루어 나갈 수 있다. 자신감이 없이 글을 쓰면 알찬 내용으로 글을 써내기 힘들다.


누구나 강제로 글을 써야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와서도 그럴 수 있다. 물론 퍽 괴롭지만 이렇게 글을 써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더욱 되도록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천천히 차근차근 글쓰기 과정을 밟아 나가야 바람직하다.


4. 구상과 개요


강제로 글 한 편을 써야 한다는 그래서 막연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의 글을 쓰려한다면 주제와 소재는 머릿속과 마음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주제와 소재를 어떤 틀 안에서 어떻게 펼쳐 글이 되게 할지 전체에서 계획을 짜는 것이 구상이다. 그리고 이 구상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실제로 종이 위에 정리하는 행위가 개요(설계도) 짜기다. 개요는 설계도이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가 꼭 필요하듯이 글을 쓸 때에도 개요는 꼭 필요하다.


개요를 작성하면 글을 쓰기 전에 글의 윤곽을 제대로 파악하여 거머쥘 수 있다. 그리고 글의 내용이 미리 생각한 주제의 틀을 지나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지 않도록 해준다. 그래서 처음에 가졌던 뜻과 계획에 따라 제대로 글을 쓰는 데에 또렷한 길잡이가 된다. 또 주제뿐만 아니라 구성과 소재 따위 다른 요소를 다시 살피게 한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글쓴이의 생각이 바뀌어 글의 내용도 따라서 많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미리 개요를 또렷하게 세운다면, 새로운 생각이 불현듯 기어들더라도 전체에서 글이 중심을 잃지 않고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설계도를 잘 짜면 짤수록 글쓴이는 자신의 사고력과 글쓰기 역량을 좀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글쓰기는 실기라고 했다. 개요 짜기는 글쓰기 실기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전 준비과정인데, 글쓰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남다른 영감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되도록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되도록 오랫동안 검토하고 가다듬은 뒤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하겠다.


5. 화제 개요와 문장 개요


개요에는 화제 개요와 문장 개요가 있다. 화제 개요는 어절로써, 문장 개요는 문장으로써 글의 뼈대를 세운다. 문장 개요는 화제 개요보다 좀 더 치밀하고 구체성을 띠기에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 각각 예를 든다.


예문 1)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걸어온 길

한홍구/성공회대 교수(한국사)


2007년 9월 18일 오전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적인 사유 등으로 집총(입영)을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군대 대신 다른 방법으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를 허용키로 했다"며 그 후속조치로 "내년까지 병역법과 사회복지 관련 법령, 향토예비군 설치법 등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병역 이행이라는 국민의 의무와 소수 인권 보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병역거부 분위기의 확산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구한다는 차원에서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분야를 가장 난도가 높은 부문으로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6년여 동안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어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해결의 가닥이 잡힌 것이다. 크게 환영할 일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1년 초《한겨레21》의 한 쪽짜리 짧은 기사가 반향을 일으키면서부터이지만, 그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징병제가 확대되면서 일본 내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을 거부하자 일제는 1939년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도 탄압을 가하여 신자 38명을 투옥하였는데, 이들 중 5명은 옥사하고 나머지 33명은 신앙 양심을 지키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옥문을 나섰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은 그저 신앙 양심을 지켰을 뿐이라고 했지만, 정부기관이 편찬한 각종 독립운동사에는 이들의 '등대사 사건'이 일제 말기의 주요한 저항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일제하에서나 독립된 대한민국에서나 똑같은 행동을 하였을 뿐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의 일제 말기의 행동은 독립운동으로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행동은 엄히 처벌해온 것이다. 인권운동가들조차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사이 정부 수립 이후(실제 광범위한 처벌은 5·16 군사반란 이후) 무려 1만 3천 명에 달하는 병역거부자들이 묵묵히 징역을 살아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제기된 시점도 매우 상징적이다.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인권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비전향 장기수의 석방과 북송 문제가 첨예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의 출범으로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두 석방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비전향 장기수가 북송되면서 90년대 내내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인권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비전향 장기수란 누구인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문둥이'보다 더한 천형이라 낙인찍힌 '빨갱이'들이 아닌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는 극도의 반공 지상주의, 국가주의, 군사주의가 판을 친 한국에서 '빨갱이'의 인권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드러난 그런 문제였다.


병역거부자의 99퍼센트는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이들이 산 징역 햇수를 모두 합하면 족히 3만 년은 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여섯 배쯤에 해당하는 징역을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산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남을 해친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인 총을 드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과연 이 일이 그토록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을까?


전 세계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많지만, 한국처럼 엄하게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전 세계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수감자 900여 명 중 현재 830여 명이 한국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르완다가 근 300여 명의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있었지만, 내전의 종식과 함께 이들을 석방한 바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군사대국, OECD 가입국,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제야 이런 불명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나, 일제시대에는 할아버지, 군사정권 시절에는 아버지, 그리고 민주화되었다는 오늘날에는 아들, 이렇게 3대가 감옥에 가는 현실을 보면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처음으로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된 뒤부터 따지면 약 4천 명, 2004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을 행정부와 입법부에 권고한 다음부터 치면 2천여 명의 청년들이 전과자가 되고서야 이번 조치가 발표되었다.


일부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사회복무제로 포용하는 조치가 국방력을 약화시킬 것이라 하나, 오히려 군의 효율적 운영과 병역제도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선 군부대에 가보면 지휘관들이 큰 부담으로 느끼는 것은 이른바 '문제사병' '관심사병'이라 불리는 복무 부적응자들에 대한 '관리' 문제이다. 일선 지휘관들은 이들이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이들의 '관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2000년에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타이완의 경우, 열악한 복무환경과 형편없는 사병의 인권상황으로 인해 해마다 군대 안에서 많은 인명사고가 발생했는데,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복무 부적응 사병이 될 소지가 있는 청년들이 사전에 대체복무제를 지원함으로써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얻은 성과 중 하나는 사병들의 복무환경과 인권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서도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변화시키려면 현역병들의 복무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군인 인권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2002년 일당 7백 원, 월 2만 원 정도에 불과하던 사병의 급여는 아직도 급여라 부르기에는 미흡하지만 올해 기준 평균 8만 8천 원으로 4.4배 인상되었다. 군인 인권은 아직도 적잖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권상황이 가장 많이 개선된 부분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군 당국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종교적 이유 '등'이라고 하여 종교적 이유의 병역거부자들에 국한하지 않고 일정한 선택권을 부여한 것은 잠재적인 '복무 부적응자'들을 대체복무로 유도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군인 인권과 복무환경 개선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동안의 뜨거운 논쟁에 비하면, 막상 정부의 방침 발표 이후에는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은 편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도 대체복무제 실시를 기정 사실화하면서 병역기피에 악용되지 않도록 감독과 운영을 잘해야 한다는 선으로 물러섰다. 사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들을 계속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조치는 큰 흐름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시행이 2009년으로 미루어져 있는데, 여러 가지 실무적인 준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현 정부 임기 내에 입법화 등 가시적인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당장 입영통지서를 받아놓고 있는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할 경우 이들을 계속 잡아들여 감옥에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매년 7∼800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오는 현실, 즉 하루에 2∼3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오는 현실에서 이들의 입영연기와 고소고발 취하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아가 현재 수감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각각의 조건에 따라 가석방, 형 집행정지 등의 전향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반대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대체복무의 기간과 조건이 충분히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병역거부자들 입장에서 한센병 환자 재활기관이나 결핵요양소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겠지만, 현역 복무의 2배라는 긴 기간은 재고되어야 한다. 유엔도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복무의 2배로 잡는 것은 너무 길며 징벌적 성격을 띤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이후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운동 상황의 악화, 국가보안법 폐지의 좌절, 양극화 심화, 한미 FTA 강행 등으로 지지기반이었던 진보-개혁진영을 계속 실망시켜왔다. 그나마 이번 조치가 일련의 과거청산 작업 ― 여전히 문제가 많고 더디기만 하지만 ― 과 함께 그래도 노무현정부니까 이 정도라도 했다는 평가를 받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창비주간논평, 2007.10.2)


이 글은 모두 13개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문단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에 즈음하여 정부가 발표한 조치를 문제로 내놓으며, 이를 크게 환영할 일이라고 한다. 현상 1과 진단 1이다. 2~5문단에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나타나 있다. 병역거부가 일제 저항사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동안 병역거부자들은 지나치게 심한 불이익을 감당해 왔다고 지적한다. 근거 1·2·3·4이다.


6~7문단은 이번 정부의 의지가 인권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어 낼 것이며, 그러나 너무 늦게 발표되었다고 한다. 진단 2와 3이다. 문단 8~9에서는 또다시 근거 몇 개를 내놓았다. 대체복무제가 가져올 이익과 병역거부 문제 공론화에 따라 생길 것으로 보이는 성과를 밝히고 있다. 근거 5와 6이다. 10문단은 대체복무제을 긍정하는 듯한 언론의 태도를 소개한다. 현상 2이다. 11과 12문단이 바로 주장 단락이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시성과 전향성을 띤 조치를 정부는 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복무기간이 너무 긴 것은 징벌성이 있으므로 다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장 1과 2이다. 마지막으로 13문단은 결론(닫는 말)으로서 이번 조치가 그나마 정권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가벼운 의미부여로서 무엇을 꼭 진단하고 주장하려는 뜻보다는 글을 마무리하려고 내놓은 의견이다.


보다시피 이 글은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퍽 많은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진단 은 결국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비 근거가 된다고 볼 때 글쓴이는 문단 8개를 가지고 읽는 이를 설득하고 있는 셈이다. 글쓴이는 아마 병역거부문제가 그만큼 뿌리 깊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 듯하다.


이 글의 개요를 짜 보자.


① 화제 개요


제목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걸어온 길

주제문 : 대체복무제는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조치이며 문제 사병관리뿐만 아니라 군 환경과 인권 개선에 이바지하는 제도이므로 빠른 시간 안에 구체성 있게 실시해야 한다.

개요 :

1. (머리말) 정부 발표 내용에 따라 해결의 가닥이 잡힌 병역거부 문제

2. 일제 저항 역사에 기록된 병역거부자들

3.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병역거부자들

4. 너무 뒤늦게 제기된 문제의식

5. 병역거부자가 받아야 했던 형벌의 과도함

6. 개선 조치가 지닌 의의(불명예 불식)

7. 너무 늦게 이루어진 조치

8. 대체복무제 시행에 따라 생길 이익 - 문제 사병 관리

9. 병역거부 문제 공론화에 따른 성과 - 사병 인권과 생활환경 개선

10. 반대 여론 약화와 그 이유

11. 가시성과 전향성을 띤 조치 촉구

13. 복무 기간 재고 요청

13. (맺는말) 정권 차원에서 찾아지는 의의- 정권의 업적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


② 문장 개요


제목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걸어온 길

주제문 : 대체복무제는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조치이며 문제 사병관리뿐만 아니라 군 환경과 인권 개선에 이바지하는 제도이므로 빠른 시간 안에 구체성 있게 실시해야 한다.

개요 :

1. (서론)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이바지하므로 바람직하다.

2. 일제 말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펼친 거부운동은 주요한 저항으로서 기록되어 있다.

3. 그러나 정부 수립 이후 정부는 그들을 부당하게 대했다.

4. 비전향 장기수 같은 민감한 문제를 해결한 뒤에야 병역거부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5.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는 그동안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6. 이번 개선 조치가 인권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

7. 안보상황을 들어 시기상조론을 펼치는 이도 있지만 수감자의 수를 생각할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8. 대체복무제로써 문제 사병을 효과 있게 관리할 수 있다.

9. 병역거부 문제를 공론화하여 사병 인권과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10. 반대 여론이 약한 이유는 결국 거부자를 또다시 감옥에 보낼 수 없다는 공감에 있다.

11. 정부는 가시성과 전향성을 띤 조치를 좀 더 빨리 시행해야 한다.

12. 또 복무 기간이 지나치게 긴 것은 징벌이라는 느낌이 강하니 재고해야 한다.

13. (결론) 이 조치는 정권이 거둔 업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개요들은 이미 써진 글을 보고 문단을 따라 내용을 정리하면서 거꾸로 세워본 것이다. 이렇게 개요를 짜는 것은 한 예일뿐이다. 개요 짜기에 어떤 정해진 틀은 없다. 글쓴이가 글을 쓸 때 그 편리에 따라 가면 그만이다. 다만 앞으로 쓸 글을 효과 있게 가늠할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생각을 또렷하게 정리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필요에 따라서 화제 개요 방식과 문장 개요 방식을 함께 써도 좋다.


여기에서는 주로 숫자 1·2·3…, 을 써서 순서를 매겼다. 이밖에 처음-중간-끝이나 서론-본론1-본론2-본론3-결론 따위, 자기가 쓰기에 편리한 그 어떤 틀도 괜찮고 여기에 나온 용어들을 섞어서 새 틀을 짜 보아도 상관없다. 또 1·,1-1·1-2·2·2-1·2-2·2-3…, 처럼 문단을 상위와 하위로 나누어 계단식으로 짜도 좋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본다.


예문 2)

인생의 묘미

김소운


실패란 것이 있고 성공이란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성공이며 어떤 것이 실패인가를 ㄱ씨는 모른다. 천 원어치 행상꾼이 만 원 밑천으로 판자 가게를 내개 된 것도 성공이요, 10억 자본의 큰 회사가 5억으로 줄어든 것도 실패라면 실패이다. 10만 원 이윤을 기대했던 장사가 5만 원 번 것도 실패라고 볼 수 있고, 5천 원을 바랐다가 만 원이 생기면 이것은 성공일 수밖에 없다. 하필 물질이나 장삿속에만 한한 것이 아니리라. 인간 일생을 통틀어서 과연 어느 것이 성공이요 어느 것을 실패라고 할 것인가? 이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ㄱ씨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결정적인 실패란 것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불행도 있다. 이 실패, 이 불행에 인생을 아로새기는 묘미가 있다고 ㄱ씨는 생각한다.


십여 년 전 ㄱ씨는 ‘바둑판’을 두고 글 하나를 쓴 적이 있다. 비자나무로 다듬은 일본식 바둑판 ― 단면의 무늬가 고르고, 모든 조건에 합격한 1급품은 30년 전 값으로 2천 원, 요즘 시세로는 30~40만 원은 간다.


이 1급품 외에 또 하나 특급품이란 것이 있다. 용재(用材)며 치수며 연륜의 무늬며 어느 점에도 1급품과 다를 데가 없으나 반면(盤面)에 머리카락만한 가느다란 흉터가 보이면 이것이 ‘특급품’이다. 물론 값도 1급보다 20퍼센트 정도 비싸다.


흉이 있어서 값이 내리는 게 아니고 도리어 비싸진다는 데 진진한 흥미가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공들여서 기른 나무가 바둑판으로 완성될 직전에 예측하지 않은 사고로 금이 가버리는 수가 있다. 1급품 바둑판이 목침 감으로 전락할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후는 아니다. 금간 틈으로 먼지나 티가 들지 않도록 헝겊으로 고이 싸서 손 가지 않는 곳에 간수해 둔다. 1년, 이태, 때로 3년까지 그냥 묻어둔다. 추위와 더위가 몇 차례 없이 반복되고, 습기와 건조가 여러 차례 순환된다. 그 새 상처 났던 바둑판은 제 힘으로 제 상처를 고쳐서 본디대로 유착해 버리고, 금 갔던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만이 남는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번 금간 그 시련을 이겨내는 바둑판은 열에 하나가 어렵다.


일어로 ‘가야방’이라는 이 비자목 바둑판은 연하고 부드러운 탄력성이 특질이다. 한두 판만 두어도 돌자국으로 반면이 얽어 버린다. 그냥 두어 두면 하룻밤 새 본디대로 다시 평평해진다. 돌을 놓을 때의 그 부드러운 감촉, ‘가야방’이 진중(珍重)되는 것은 그 까닭이다.


한 번 금이 갔다가 다시 제 힘으로 붙어진 것은 그 부드럽고 연한 특질을 증명해 보인, 이를 테면 졸업증서이다. 하마터면 목침 감이 될 뻔한 비자목 바둑판이 이래서 특급품으로 승격한다.


ㄱ씨가 말하는 인생의 묘미란 이것이다.


실패나 불행은 환영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실패와 성공은 몇 차례 없이 거듭하면서, 쓴맛 단맛을 고루고루 겪어 가면서 살아가는 인생 ― 만일에 쓰러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실패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막가는 실패요 불행일 수밖에 없다. 금이 간 채 제 힘으로는 아물지 않는 바둑판 맞잡이이다.


그러나 ㄱ씨는 믿고 있다. 때로는 그 불행, 그 실패로 해서 한결 더 깊어지는 인생이 있고 정화(淨化)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인간이 바둑판만도 못하다고 해서야 될 말인가.”

옛날에 쓴 ㄱ씨의 글에는 이런 끝맺음이 붙어 있다.


행복의 기준은 어디다 두어야 할 것인가? 앞 못 보는 소경은 단 한 번 빛을 보기를 원할 것이요,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는 제 발로 걸을 수만 있다면 ― 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소망일 것이다.


ㄱ씨는 그 옛날 수인 호송차에 실려서 대도회의 큰길을 달린 적이 있었다. 호송차에서 내다보이는 길 가는 사람들의 그 행복스런 모습, 그러나 행인들에게 그 행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 눈으로 빛을 볼 수 있는, 제 다리로 길을 걸을 수 있는 성한 사람들이 만일에 소경이나 앉은뱅이의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불행은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자유롭게 제 발로 길 가는 행인이 호송차에 실려 가는 수인의 마음을 엿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제 자신의 행복에 얼마나 가슴이 뛸 것인가?


온 천지에 넘쳐흐르는 행복! 목마른 자만이 아는 물 한 그릇의 행복!

― ㄱ씨는 눈을 감고 이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누구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는 인생 구조를 생각하며 글쓴이는 글을 연다. 앞부분에서는 이러한 양면성이 바로 인생의 묘미라고 한다. ‘가야방’이라고 불리는 특급 바둑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실패와 그에 다른 시련을 이겨낼 때 인생은 그만큼 값어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한편 뒷부분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할 때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앞뒤가 각각 다른 내용을 담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글 앞부분에서 다룬 실패라는 것은 이글 뒷부분에서 다룬 자기가 감당해야 할 상황에 속하는 예이다.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믿음은 자신의 처지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앞부분과 뒷부분은 내용에서 종속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인물인지 허구 인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글쓴이 자신인 듯하다. 아무튼 글쓴이는 ‘ㄱ씨’의 마음을 빌려 글을 펼친다. 그가 쓴 글과 겪은 일을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다. 글의 설계도가 조금 더 복잡하고 정교했을 것이다. 다음에 재구성해본다.


제목 : 인생의 묘미

주제문 :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인생살이다. 실패를 이겨내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만족을 구할 때 진정 행복해진다.

분량 : 약 2500자 (200자 원고지 15장쯤)

문단 수: 12개쯤

(분량과 문단 수까지 미리 정하는 것은 어떨까. 큰 계획을 짜 놓고 그다음 그에 바탕해서 글을 자유롭게 써 가도 좋지만 좀 더 세밀하게 계획을 짜서 차곡차곡 써 내려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1. (머리말)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은 앞뒤 사정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2. (본론 - 첫 번째 이야기) 불행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

2-1. 1급품 바둑판

2-2. 특급품 바둑판

2-3. 흉이 있어 더 값진 이치

2-4. 사고로 금이 간 나무

2-5. 금이 간 나무가 특급 바둑판으로 변하는 과정

2-6. 특급 바둑판인 ‘가야방’의 진중성

2-7. ‘한 번 금이 간 것’의 의미

2-8. 살면서 실패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 ‘ㄱ씨가 말하는 인생의 묘미란 이것이다.’는 문장 하나이지만 문단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내용상 ‘2-8’ 문단에 속한 것으로 여겼다.)

2-9. 그러나 실패와 불행을 겪고 인생은 더욱 깊어진다.

(* ‘“인간이 바둑판만도 못하다고 해서야 될 말인가.” 옛날에 쓴 ㄱ씨의 글에는 이런 끝맺음이 붙어 있다.’는 ‘2-9’ 문단에 속한다.)

3. (맺는말 - 두 번째 이야기) 행복의 기준은 각각 자기 입장에서 찾기 마련이다.

3-1. 호송차에서 겪은 일

3-2. 자신의 처지를 바로 새길 때 진정한 행복을 볼 수 있다.

(* ‘온 천지에 넘쳐흐르는 행복! 목마른 자만이 아는 물 한 그릇의 행복! ― ㄱ씨는 눈을 감고 이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는 ‘3-2’ 문단에 속한다.)


이 개요에서는 화제 개요와 문장 개요 방식을 그때그때 편리한 대로 섞어 썼다. 개요를 짤 때 정해진 규칙이나 용어가 있지 않다고 앞에서 말했다. 개요는 생각 내용을 미리 꼼꼼하게 정리하여서 글을 편하고 효과 있게 잘 쓰려고 짜는 것이다. 글쓴이가 글을 쓰는 데에 적절하고 효과 있는 나침판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글의 전체 윤곽을 또렷하게 세워 생각의 흐름을 잘 이어 줄 수만 있다면 어떤 형식이라도 상관이 없다.


6. 주제문 쓰기


개요 짜기에 앞서 또는 그다음에 주제문을 쓰는데 매우 중요하다. 주제문은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한 문장 또는 두 문장 정도로 정리하여 또렷하게 밝히는 것이다. 개요와 더불어 주제문은 글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나침판으로 쓰인다. 주제문은 글의 핵심 내용을 밝혀 못을 박아주므로 필자가 글을 써 내려가는 데에 집중력을 갖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덕과 장점에 힘입어 글쓴이는 편안하게 자신의 목적에 매진할 수 있다.


개요와 주제문 모두 글을 쓰기 전에 작성하는 것으로서 개요를 먼저 작성할 수도 있고 주제문을 먼저 작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요를 쓴다는 것은 곧 글쓰기를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주제문을 먼저 써 두면 좀 더 좋을 듯하다.


7. 다듬기


천의무봉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쓴 글이 천의무봉 하기는 퍽 힘들다. 천의무봉은커녕 다 쓴 뒤에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은가? 심하면 아예 내가 쓰려던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어찌할 수 없이 난삽한 글이 한 편 눈앞에 나타날 뿐이다. 글을 다듬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음 그럭저럭 내 마음에 맞게 글을 다 쓰고 나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끝나지 않은 듯 마음에 무엇인가 남아있을 수 있다. 좀 더 잘 쓰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틀린 것을 고치는 것은 아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떠올려 새롭게 바꾸려는 뜻이 있을 수 있다. 퇴고(堆敲)라는 낱말이 생겨난 유래를 살피면 좀 더 나은 표현을 고르려고 퇴(堆)로 할까 고(敲)로 할까 깊이 고심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처럼 이전보다 완벽한 글을 추구하는 마음이 곧 글을 다듬게 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단 한 숨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죽 글을 써놓아도 막힘도 없고 틀림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능력을 지닌 명인이 우리 곁에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말 그대로 십중팔구 달인이리라. 보통에 넘지 못하는 우리는 글 다듬기를 꼭 해야 할 처지에서 산다. 따라서 글 다듬기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고 하면 그럭저럭 좋은 것도 아니고, 글쓰기 과정에서 곁다리나 부록으로 끼어 순서가 아니다. 글을 다듬는 것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고 늘 어딘가 부족한 인간 언어, 인간 정신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글 다듬기는 차분하고 꼼꼼한 자세를 가지고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글을 다듬으면 그 글이 늘 좋게 바뀌나. 꼭 그렇지는 않다. 문장이든 낱말이든 앞뒤가 맞지 않아 오히려 전보다 더 어색한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쓰고 나면 곧 다듬기를 하되 더 좋게, 더 좋게라는 표어에 매달려 끌려 다니지만 말고 어느 순간 잠시 멈춰 만족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글 다듬기는 기어이 이상(理想)으로 가야만 하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내가 쓴 글을 보면 더 잘 보인다. 어떤 소설가는 평생을 두고 자신의 작품을 다듬어 개작했다고도 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다듬기를 할 때도 급히 서둘러 욕심을 내서는 안 되겠다. 우선 한 번 보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좋다. 글쓴이에 따라 다 다르지만 일주일쯤이 적당한 듯하다. 내가 쓴 내 글이니 처음에는 잘 안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좀 더 객관성 있는 자세에서 글을 훤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글 다듬기를 하려면 한 번이 아니라 적어도 2~3차례는 보리라 마음을 먹어야겠다.


그런데 요즘은 글 다듬기를 영 하지 않는다. 대중매체 시대가 되어서 그런가 속도경쟁시대가 되어서 그런가. 인터넷에 나오는 이른바 댓글을 보면 이러한 현상은 특히 두드러진다. 컴퓨터 언어를 제 말처럼 쓰는 것이야 또 다른 현상이니 여기서 말하지 않겠지만, 띄어쓰기와 맞춤법에서 국민이 기본으로 지켜야 할 법을 너무나 자주 그리고 많이 무시한다. 아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선 기분이 내키는 대로 내지르고 보는 자세다. 그러니 글을 다듬을 시간도 마음도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댓글 문화 자체는 글과 말을 잘못 쓰고 헤프게 쓰는 버릇이 그대로 굳어진 풍속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근본에서 반성이 필요하다.


글 다듬기를 할 때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야 당연히 넘치면 빼고 모자라면 넣고 틀렸으면 고치는 것이 대전제가 된다. 여기에 좀 더 자세하게 세부항목을 정리해 보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책에서 말한 것들이다. 다시 정리해 본다. 그리고 중요한 순서대로 나누어 보았는데 이는 결코 어떤 절대성에 매여 있지 않다.


글은 세상에 나오면 사람에게 읽힌다. 그러므로 쓸 때는 모르겠지만 일단 세상에 나오면 남들에게 제대로 읽혀야 한다. 글이 글로서 기본 자질을 지녔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다음 글은 말할 것도 없이 내 생각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내 생각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남김없이 글에 다 실렸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두 번째 기준이다. 그 다음은 좀 더 섬세하게 문장과 낱말이 제대로 쓰였나 눈여겨본다.


1. 첫 번째 기준


전체 내용이 앞뒤가 맞아떨어지나, 자연스럽게 글이 되었나?


2. 두 번째 기준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충분히 잘 쓰였나?

내가 원하는 주제와 어조와 문체가 잘 구현되었나?


3. 세 번째 기준

소재는 주제와 어울리는가?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은 잘 어울리는가?

뒷받침 문장은 뒷받침 문장으로서 값을 하는가?

뜻하지 않은 그러나 글의 내용에는 보탬이 없는, 쓸데없는 말은 없는가?


4. 네 번째 기준

문장이 너무 길지 않나?

문장과 문장이 잘 이어져 있나?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가 잘 호응하는가?

문장 주체(주어)가 또렷한가?

전달성, 표준성, 표현성에서 적절한 단어를 썼나?

과장되거나 어설프게 멋을 부린 곳이 없는가?

틀린 문장, 틀린 글자, 빠진 글자는 없는가?

문장 부호는 제대로 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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