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by 이순직

햇살 느슨한 오후. 낡은 계단 웅크려 앉아 담배 하나 피우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어제부터 부부는 마음이 난리다. 졸업 후 반드시 취직할 것을 명령할 때와 달리 들떠 있다. 다락에 처박혀 있던 텐트와 배낭 챙겨 오래 묵은 먼지 털고 이것저것 밑반찬 준비하는 부부는 난리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말없이 웃기만 하는데 자랑삼아 들으란 듯이 말한다.

“울릉돈 배 타고 가야 할 거야. 재는 아직 제주도도 못 가 봤을 거야.”

지난밤 전국 지도를 방바닥 가득 끌고 다니며 울릉도행 항구 찾느라고 난리 피우더니 잠시 내 생활이 걱정. 만원으로 부부의 부재 동안 살아보라고 으름장. 지레 겁을 먹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 와요?”

“가 봐야 알지.”

“그래도 대충….”

“가 봐야 안다니까.”

제길,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부는 문학이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노트북 앞에 앉아 시간만 죽이는 줄 안다. 연초에 시립대 졸업하고 기업은행 행원이 된 둘째가 프린터 사준 것도 부부는 못마땅한 터였다. 부부는 둘째마저 시간 죽이기에 동조한 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시간 죽이기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 부부의 울릉도 여행을 얘기하는 중이니까. 만원으로 일주일이 될지 며칠일지도 모를 날들을 살아내려면 겁부터 더럭. 천 원이라도 더 뜯어낼 작정으로 아양 떨어 보지만 부부는 시원찮은 수작에 넘어가지 않는다. 한 번 넘어가지 않으면 극약 처방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고집불통 성격을 아는지라 그만둔다.

부부가 내일 울릉도로 간다, 하니 독도 수비대가 떠오른다. 일본이 독도(獨島)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이름 붙여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자 울릉도는 독도의 전초 기지였다. 요즘은 가수 서유석이 독도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한돌은 노래까지 만들어 부른다. 그런데 선조가 물려준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도 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전쟁 이전의 상태를 유지했고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백두산 다섯 봉우리를 중국에 넘겨주었다는 흉흉한 소문. 조국애는 겨레의 땅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여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부부의 울릉도 여행을 짐짓 격려 하나, 혼자만의 생활이 걱정스럽다. 돈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부부의 부재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 그것도 이유가 아니다. 군대 3년 동안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던가. 솔직히 털어놓자면 늘 가까이 있는 부부가 나를 떠나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마음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분가(分家)한 둘째에게 별로 잘해 준 게 없다. 군에 간 막내에게도 잘해 준 게 없다. 자신에게도 잘해 준 게 없다. (1991.5.20)


- 1991년 5월 20일로 들어가 보면, 시야는 안개에 휩싸여 흐릿하고 살아갈 날들에 대해 확신 없는 걷는 길이 과연 내가 갈 수 있는 길일까. 의구심에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 갸우뚱거리며 글 앞에서 한없이 무너졌다. 세상을 평면적으로 보던 슬픈 날들. 지식과 인식이 엇박자 만들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경험의 공간에 먼지만 있었다. 자학이 날을 곧추세워 날뛰고. 2020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로소 경험 공간에 내용물 조금씩 들어차고 있다는 것만 빼면. (2020.9.11.)


- 행원인 둘째는 연초에 본부장으로 승진했고 군에 갔던 막내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산다. 늘봄식당 인수하고 밥은 먹고사는 모양이다. 물론 이런저런 사고뭉치 버릇은 여전하지만 예전만 못하다. 부부는 아래층에 살면서 삶의 구심력에 이끌려 안동 자주 내려간다. 글쓰기는 삶의 저 끝에 닿을 때까지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다. (2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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