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by 이순직

어떤 분야든 노동하는 아픔이나 기쁨에 회한과 슬픔이 숨어 있다. 적성이나 희망에 맞는 노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 생활하기 위한 노동과 존재하기 위한 노동은 엄청난 차이. 일에 종속하는 감정들. 암튼 노동보다 관계가 어긋나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노동보다 관계가 무서운 노릇. 가령 견딜 수 없는 갑질. 노동이 주는 괴로움이나 고통과 절망이 일하는 즐거움이라 스스로 속이더라도 불현듯 결별하는 순간들. 기쁨 뒤를 따라다니는 괴로움. 그림자처럼. 순간마다 만나는 생활과 존재의 갈등. 하루하루 선택의 벼랑 위에서 위태로움 가까스로 감당하며 사는. (1993.11.12)


- 학습지 선생 노릇 하며 스스로 위로하던 윗글. 한 달 남짓 하다가 박사과정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 그만뒀다. 배정받은 지역은, 그 무렵 어진내(仁川) 정착 초기라 지리감이 없던 관계로 담당 지역이 어디인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야트막한 구릉에 빽빽하게 들어찬 지붕 낮은 집들과 좁은 골목들. 그때 가르치던 아이들은 불알 거뭇거뭇한 30대가 되었을 터인데 온전히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을까? 박사과정 입학 후 두어 곳에서 학원강사 노릇 했는데 그 아이들 역시? 물론 대학에서 가르치던 아이들도?

종로 어디쯤, 문창반과 만났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장욱진도 있었다. 시간강사 그만두고 작은 회사에 다닐 무렵.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교수님, 아직도 늙은 아버지 가지고 있어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다른 사람이 쓴 수필을 교재로 하기 찝찝해서 내가 쓴 수필들로 강의했는데 후배가 ‘늙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니! 후배는 졸업한 지 몇 년이 훌쩍 지나 있었고 산림청에 근무하는 것으로 기억. 국립공원 직원. ‘현대수필의 이해’ 강의 듣고 문창반에 가입했다나. 그날 서문홍 부부가 함께 자리에 나와서 지금도 기억하는 모양이다. ‘늙은 아버지’가 후배의 삶에 쓸데없는 참견이었더라도 나로선 그저 고마울 뿐. (2020.9.29)


- ‘연극, 사람이 지나간다’는 반환점 돌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물론 한 달 남짓 걸리겠지만. 감동보다 사고의 폭을 뒤흔드는 반전이 얼마나 구체화될지 아직은 미지수. 사실 다음 날 무얼 쓸 수 있을지 나도 모르는 상태. 밑그림은 항상 배반한다. 살아온 삶으로 견디는 수밖에. ‘초안산, 십 년’을 쓸 때 내 안에 숱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그다지 틀리지 않은 듯. 그때는 장인 장모도 살아계셨는데. (2021.5.12.)


-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은 반환점 돌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물론 보름 남짓 걸리겠지만. 감동보다 글을 읽고 유추하는 재미를 주려고 하지만 얼마나 구체화될지 아직은 미지수. 사실 다음 날 무얼 쓸 수 있을지 나도 모르는 상태. 밑그림은 항상 배반한다. 살아온 삶으로 견디는 수밖에. 이십여 년 글을 쓰지 않다가 ‘초안산, 십 년’을 쓸 때 내 안에 숱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아직은 밑천 떨어지지 않은 모양.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에 등장하는 명주를 중심인물로 '윤명주'를 밑그림 중. 장인 장모가 돌아가신 날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하루들. 또 내 앞에 있다.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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