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2021년 봄

by 이순직

1

선거철이다. 정치꾼들의 권력욕을 향한 욕망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은 권력의 무상함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거다. 애초에 한 건하면 최소 3대는 먹고 산다고 여기니. 다카키 마사오가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나. 삶은 속임수다. 아니다. 사람이 속임수다. 그것도 아니면 자문해보라. 당신은 죽지 않고 이 땅, 이 역사를 산다고 말하지 마라. 내가 여기 있었다고. 웃기지 않냐. 플래카드 얼굴이 포토샵이라니! 정치는 없다. (2021.3.26)


2

새벽 4시다, 너무 늦게 일어나 글쓰기엔 틀렸다. (입점 여사가 보고 싶다) 어제 동석천 씨를 만나 술 마신 탓이다. 삶을 넉넉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나이에 닿기까지 절망과 자책과 숱한 모멸감에 얼마나 괴로워했나. 이제는 풍경으로 물러섰지만. 적어도 김수영만큼은 살아내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여야 하지 않나. 비록 그놈이 옆구리를 치면서 지나가더라도. 변함없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아내가 싫어하겠지만 누구도 영원할 수 없다. 닭치면서 생계를 꾸려갔던.


그러나 시대를 향해 거침없이 말하던 김수영을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딸아이 앞에서도 쩔쩔매는 나는 못난이다. 지혜란 반드시 시간의 몫이 아니다. 정치를 보면 깨닫지 않나.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마사오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살인과 폭력과 말살의 광기가 일상이던 날들 위에 포토샵이 휘날린다. 나사렛 그것처럼 내가 너희를 잘살게 해 줄 것이다, 선지자 흉내를 내는. 뼛속까지 속아도 여전히 속는 우리는 선거 운동의 어느 날을 살고 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그전에 입점 여사의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데 모르겠다. 가능할지. 그러나 대부분 이미 눈치채지 않았을까. 주인공이 오희나나 박병두나 황순호가 아니라 입점 여사인걸.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입술 오른쪽 아래에 점이 있는 서른다섯 젊은 여사를 본다. 입점 여사다! 인물은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옆에 있다.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혹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늘 말하지만 죽음 앞에서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은 모두 가짜다. 허상이다. 거짓이다. 더 심한 말로 나쁜 놈이다.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 휘날리는 포토샵 앞에서 내가 너희들을 잘살게 해 줄 것이다, 선지자 흉내를 내는 지독하게 거짓말하는 자들 앞에서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래, 네 똥 굵다! (2021.3.27)


3

토요일 비 내리는 오후. 막걸리. 아내는 호주산 소고기를 안주로 내놓는다. 나뭇가지마다 피어 있는 빗방울 혹은 이승 떠난 이들의 눈물. 똑바로 혹은 삐딱하게.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하여 나는 얼마나 괴로워했나, 끝내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나는 또 얼마나 망설였던가, 지나고 오니 그 또한 길이었음을. 누구나 위태롭고 불안한 젊음을 가지고 있다, 지나왔던 지나고 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 반공 포로 출신인 김수영도 그땐 젊었다, 상고 출신 시인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북진에 반대하는 미국에 이승만은 강짜 놓는다.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덕분에 김수영은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었던 서울 거리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이미 친구의 아내였다. 주세죽과 김단야처럼. 김수영은 아내를 다시 받아들였지만 박헌영은 끝내 외면했다, 그래서 김수영은 시인. 박헌영은 그냥 꼴통. 혹은 죽음 이후의 삶을 모르는 보통내기.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나무들. 잔가지마다 피어난다. 당신이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마저 살지 못한 목숨. 빗방울. 혹은 H2O. 시간이 지나간다. (202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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