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송 - 창조적 진화

by 이순직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논쟁이다. 개중에는 베르그송(Henri Louis Bergson, 1859∼1941)의①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qtrica, 1907)”라는 개념처럼 양쪽 모두를 포괄하는 논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획기적인 증거나 믿을 만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통일하지 않는 이상 논의의 여지는 항상 남는다.


진화를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적인 방법 - 물증(物證)이 반드시 필요한 인류학이나 고고학이 그렇다 - 을 차용하고 창조를 주장하는 방법은 인문학(종교)의 방법인데, 이 둘을 포괄하는 새로운 시각이나 방법이 필요하다.②


또한 어느 한쪽의 방법을 차용하든 중요한 것은 창조냐 진화냐를 칼로 두부 베듯이 싹둑 잘라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이 문제에 골몰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데에 있다. 개연성의 측면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지식으로 볼 때, 진화와 창조는 양자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철로의 두 선을 한꺼번에 보면서 평행선을 인정하듯이 진화와 창조라는 평행선을 포괄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진화로 볼 때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자의적이고 개인적으로 성취적인 욕구를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존재 이유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저마다 제각각의 노력으로 찾을 일이다. 이병훈의 <유전자들의 전쟁, 민음사>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단지 유전자의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차가운 시선을 맞닥뜨리면 누구든 존재 이유의 무지에 당황해하며 서둘러 찾으려고 발버둥 친다.


이때 진화의 입장은 흔들린다. 창조로 세상을 볼 때 운명론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며 세상의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여 나간다는 생각에 빠지며 개인적으로 성취 욕구를 가지기보다 모든 것을 운명이거나 필연으로 설명하려고 들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신에서 찾지만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은 힘들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려 세상에 대한 인식이 한 개체로서 주관성을 갖기 어렵다.


진화와 창조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파악해야 하며 어느 하나를 추종하면서 다른 하나의 멸시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 둘은 어느 한쪽이 존재해야만 다른 한쪽도 존재하는 개념이며 인식 체계며 지식의 거대한 뿌리다.


2020.10.10 - 26년이 지난 지금은 진화론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인문학은 등 뒤에 있고 자연과학이 앞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을 무시할 수 없다. 걸어온 발자국이 없으면 걸어갈 발자국도 없기 때문이다.




① 프랑스의 철학자. 유대인 음악가를 아버지로, 영국인을 어머니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리세에서 고전과 실증 과학, 기타 인문학을 배우고, 1878년 고등사범학교에서 스펜서의 <제1원리>를 탐독하였으며, 모교 강사를 거쳐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했다. 1896년 <물질과 기억, Matiére et Mémoire>을 내고, <창조적 진화, L'Évolution Créatrica, 1907>를 발표했다. 1914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국내외의 정치무대에서 활약하면서 이스라엘 건설에 노력하였다. 1932년에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la Religion>을 발표하여 19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 유심론(唯心論)의 전통 위에서 실증성의 극한을 걷는 현상학(現象學)을 받아들인 위에,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주체성을 다루는 생의 철학이다. 그는 생명을 시간 속에서 행동하는 현실론적인 것이 아니요, 순수 지속(durée pure)에 의해 그 생을 비약시키며 창조적으로 진화(L'Évolution Créatrice)하는 실존적인 생명이라고 하였다. 또 “종교에는 남을 배척하는 폐쇄적 종교와 남을 받아들이는 개방적 종교가 있다”라고 하고, 최후로 전 인류와 우주를 넘어서서 모든 존재의 주체성과 일치하는 극한점에서 성립되는 개방적‧창조적인 종교를 역설했다. 그의 철학은 사조로는 생의 철학이며, 체계적으로는 우주론이고, 그 방법은 직관주의에 서 있는데,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1941년 나치스 군대의 점령하에 있던 파리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1927년 노벨상 수상.


② René Wellek & Austin Warren, Theory of Literature, Peregrine Books, Reprinted 1966, page 17. “It should be simply recognized that there is this difference between the methods and aims of the natural sciences and the humanities.”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이러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시도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왜냐면 모든 불가능에 대한 도전만이 인간 정신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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