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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발 Sep 04. 2020

아이가 다쳤다. 우리는 자책했다.

아이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턱 아래쪽이 찢어졌다.


아이는 놀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고, 아이를 돌보던 남편은 자책하는 얼굴로 나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한가롭게 책을 보고 있던 나도 너무 놀랬지만.. 남편이 이미 자책의 얼굴로 너무 순간을 후회하고 있었기에..


나는 현실적으로 이 일을 해결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헸다. 응급처치를 하고,  아이가 가던 큰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시간은 토요일 1시. 타이밍도  정말 안 좋지...



무슨 일이 있으면 가던 큰 병원 응급실에 갔다.


코로나 지정병원이라 되도록 오지 말고,  현재 전공의 파업으로 기다려도 언제 봉합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했다. 레지던트 1년 차 선생님이 전체를 다 돌고 있다고.. 오늘은 안 다쳤어야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것이 할 말인가.. 이미 다쳐서 온 아이와 보호자에게..


의사는 현재 상황에서의 최선은 엄마가 봉합하는 작은 병원을 찾아보는 것.. 그래도 안되면.. 수면 마취할 수 있는 4시간이 지난 후에 오라고 했다.


남편은 기다렸다가 여러 번 아이와 연이 있는 큰 병원에서 하자고 했지만...

느낌이 싸했다. 왠지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대안을..

다른 큰 병원에서는 아예 오늘은 봉합 수술 자체가 안된다 했다. 전공의가 없다 했다..


여러 성형 외에 전화를 돌리고 인터넷 서칭을 한 결과 나와 같이 빨간 날에 아이 얼굴 부위가 찢어진 엄마가 병원 링크를 올려둔 것을 보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에 전화를 했다.


"저.. 아이가 턱이 찢어졌는데.. 봉합 수술이 가능할까요? "

" 네 저희는 합니다., "라는 말..


남편과 나는 아이를 태우고 그곳으로 갔다.


가는 중에 큰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금식 시간이 다 끝나면 와서 봉합 수술을 기다려 보라 했는데.. 코로나 확진자와 병원 사정으로 인하여 와도 안될 것 같다는 병원 측의 전화였다..


아..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이곳밖에 없다..


우리는 그 병원을 향했다. 24시간 봉합 수술. 외과 수술을 하는 이곳에서 아이는 다행히 빠르게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이야' 라는 말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말고도 팔이 갑자기 부러진 아이..  손가락이 부러진 어른 등 많은 환자들이 계속 들어왔다.

이렇게 주말에도 24시간 열어 응급 수술을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마 이곳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10 바늘을 꼬매고 나온.. 마취를 풀리는 아이 모습이 안쓰러워 울지 않는 내가 조금 눈물을 훔쳤다. 다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내 탓.

그리고 마취 가 풀린 후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잘못 되었을까 봐 속을 태웠다.


그때에 아이를 돌보던 사람은 남편이었기에 남편은 속으로 더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올 때 즈음 우리는 "우리 탓이야 더 잘하자 "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이는 금세 활력을 되찾았고 우리는 그날 빠르게 병원을 찾아 처치할 수 있었던 상황에 감사했다.


그리고 잘 봉합되어 부디 흉 없이 잘 아물기를 바라며 지내고 있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부모는 자책을 한다.

나는 그날 아이가 다쳤을 때 자하던 남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심각하든 안 심각하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마음 한 구석의 그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팩트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도 중요치 않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


아이가 잘 아물며 커가면 이 순간도 추억으로 남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 됨 어려움을 오늘도 뼈저리게 느꼈던 날이었다. 그리고 자책, 후회의 마음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매일매일 너무 당연했던 아이의 미소가  조금씩 다시 돌아왔을 때_ 우리는 비로소 다시  자책하는 마음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가끔 아이의 턱을 바라볼 때, 밀려오는 자책의 마음은 이제  어쩔 수 없음을 안다. 이 마음을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부모가 되는 것뿐.. 오늘도 이런저런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부모란  역할에 나를 맞추고 살아간다. 오늘은 좀 더 나은, 부모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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