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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01. 2018

낭만의 섬, 미야지마


미야지마는 교토 근교 아마노하시다테, 미야기현의 마쓰시마와 함께 일본 3경 중 하나로 꼽힌다. 미야지마는 세토내해에 떠 있는 섬으로 ‘신의 섬’으로 숭배해 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간직한 미센, 유서 깊은 신사와 사찰이 있는 낭만적인 섬이다.     


바다 위에 그림 같은 풍경, 이쓰쿠시마 신사와 도리이

미야지마에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15분에 한 대씩 10분 정도 페리를 타고 가면 아름다운 섬 미야지마에 도착한다. 섬의 땅을 밟으면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다. 마치 시골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백구처럼 눈망울이 큰 사슴이 섬 안을 마구 돌아다닌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바다 위에 떠있는 빨간 오도리와 이쓰쿠시마 신사다.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미센이 병풍처럼 신사를 두르고, 언덕 위에 있는 오층탑까지 한 장면에 들어온다. 자연과 인간의 창조물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593년 창건된 이쓰쿠시마 신사는 21채의 건물이 붉은 칠을 한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회랑의 길이는 300m에 달한다. 12세기 헤이안시대에 제 모습을 갖추었다. 신사는 바닷물에 떠 있는 모습이다. 해신(海神)을 섬기는 신사로 용궁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물에 잠기게 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숲 안에 들어가 있으면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숲 바깥으로 나와 숲 전체를 바라보면 그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미야지마 신사도 밖으로 나와 전체를 바라보았을 때 풍부한 색깔을 볼 수 있었다.    


미야지마를 상징하는 도리이는 높이 16미터, 둘레 10미터로 바다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다. 거대한 도리이를 미끄러지듯이 통과하는 크루즈의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그 장면에는 현세에서 배를 타고 내세로 간다는 정토 신앙의 의미가 담겨 있다. 썰물이 되어 진흙이 드러나면 도리이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미야지마는 섬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다. 프랑스 북부의 몽 생 미셸처럼 섬 자체가 보물이다. 석양이 바다로 내려와 노을이 물들면 이쓰쿠시마 신사는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 벤치에 걸터앉아 하늘로 솟은 붉은 도리이와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교차하는 황홀한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본다. 미야지마에 내리는 노을 빛 속으로 들어간다.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담은 빛은 가슴속에 스미어 뭉클해진다.

    

화려하고 웅장한 센조카쿠 고주노토

미야지마의 골목은 운치 있다. 빛이 새어 들어와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목은 입체적이다. 골목 끝 언덕 위에 솟아있는 화려한 탑은 빛에 반사되어 눈부시다. 센토카쿠 고주노토로 이어진 골목의 고즈넉한 풍경이다.


계단을 올라 센조카쿠에 들어서면 넓은 경당이 나온다. 센조카쿠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안코쿠지의 승려 에케이에게 명하여 지은 대경당이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불경을 독송했다. 1000장의 다다미가 깔린 저택은 경이로울 만큼 넓다. 경당 안에는 큰 주걱이 서 있는데, 그 옆에 서서 키를 재보니 주걱의 키가 두 배는 족히 커 보인다. 주걱의 발상지답게 곳곳에 거대한 주걱이 세워져 있다. 경당 안에는 지붕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숨바꼭질해도 좋을 만큼 많이 세워져 있다. 경당 밖으로 나가면 넓이만큼이나 긴 회랑이 있다. 회랑을 걸으면 미야지마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넓은 경당은 수평적인 바다와 이어져 무한하다.


센조카쿠에서 나오면 건물 옆에 화려한 5층탑, 고주노토가 세워져있다. 일본과 중국 당나라의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붉은 탑이다. 1407년에 세워진 고주노토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다. 이쓰쿠시마 신사와 도리이, 고주노토의 붉은색은 섬 안에 펼쳐진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이 있다. 이 붉은색이 미야지마를 또렷하게 설명한다.

고주노토는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어 미야지마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바다 위에 떠있는 이쓰쿠시마 신사와 탑의 조화는 미야지마 풍경의 정수라 할 만하다.   

  


미야지마 제일의 사찰 다이쇼인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다키노코지라 불리는 골목을 걷다보면 그 끝에 미야지마 제일의 사찰, 다이쇼인이 나온다. 다이쇼인은 이쓰쿠시마 신사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볼거리가 많다. 정식명칭은 다키야마 스이쇼지 다이쇼인이다. 806년에 창건되었고, 미야지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2006년, ‘14대 달라이 라마’가 방문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미센산 기슭에 세워진 사찰을 보려면 촘촘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중턱에서 발길을 멈추고 돌아보면 미야지마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붉은 신사의 지붕을 건너면 푸른 바다가 있고, 바다를 건너면 또 다른 마을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아득하다.


풍경을 뒤로하고 사찰에 오르는 길 곳곳에 다양한 불상들이 숨어있다. 호빵맨, 울트라맨 같은 캐릭터 불상, 모자를 쓴 불상, 망토를 두르고 있는 불상 등 수많은 불상이 사찰을 지키고 있다. 많은 사찰을 다녔어도 이곳만큼 많은 불상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운데에 법문이 새겨진 원통이 주욱 늘어서 있다. 티벳의 마니차와 같다. 마니차는 원통형 모양에 반야심경이 새겨져 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이라 하니, 요란한 소리를 내는 원통을 돌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향을 피워 놓고 기도를 올리는 기도당 앞에 멈추었다. 한쪽에서 사람들이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슬쩍 들여다보니 나무주걱에 각 나라의 사람들이 다양한 문자를 성심껏 적고 있다. 사찰에는 나무판에 소원을 빌어 걸어놓는데, 그것을 에마라고 한다. 주걱의 발상지답게 에마도 주걱모양이다. 사람들 옆에 서서 나무주걱 에마에 독백하듯 품고 있던 한 구절을 적어 놓았다.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라. 그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 -혜민 스님-  

 

오모테산도, 그 활기 있는 거리에서

상점가는 활기 있다. 맛있는 먹거리와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 독특한 기념품 등 어느 멋진 관광지 못지않게 볼거리가 넘쳐난다. 나는 여행 중에 상점가를 꼭 둘러보곤 한다. 지방의 정서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곳이 상점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상점가를 가면 작은 기념품 하나라도 꼭 사들고 나온다. 세계의 시장이 나의 방 안에 펼쳐진다.


미야지마 오모테산도 상점가는 이쓰쿠시마 신사와 바로 이어진다. ‘참배하러 가는 큰 길’을 오모테산도라고 하는데 보통 신사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상점가가 늘어서 있다. 도쿄의 오모테산도와 이름이 같은 미야지마 오모테산도는 도쿄만큼 화려하고 번화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가장 활기 있는 거리다. 에도시대 후기에 주변을 매립해 쇼와 때인 일본 경제고도성장기에 미야지마의 중심가가 되었다. 거리에는 특산품점이나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미야지마의 특산품도 만날 수 있는데, 에도시대 말부터 이어온 나무로 만든 수공예, 주걱 등이 유명하다.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걱이 누워있다. 수령이 270년이나 된 느티나무를 깎아 만든, 길이 7.7m, 무게 2.5톤의 거대한 주걱, ‘오샤쿠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걱의 발상지 미야지마를 상징하기 위해 2년 10개월에 걸쳐 제작했다고 한다.


미야지마를 둘러싸고 있는 원시림에는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야지마에서 단풍 모양의 만주가 나오는 건 당연할 터. 팥앙금이 들어간 촉촉한 만주의 달콤함이 피로를 가시게 한다. 모미지 만주는 미야지마 대표 간식이다.

매년 2월에는 굴 축제가 열릴 만큼 굴이 유명하다. 오모테산도 상점가에는 굴 요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많다. 상점 앞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숯불 위에 직접 굴을 구워준다. 이 장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주문을 하고 역시 기다렸다.


굴이 구워지는 동안 미야지마에 가면 마셔봐야 할 미야지마 맥주를 먼저 마셨다. 맥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일본이지만 미야지마 맥주는 또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진한 향을 품은 에일 맥주다. 색깔과 맛과 향이 라거 맥주보다 진하다. 미야지마 맥주의 깊은 맛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 사이 껍질에 담긴 채로 구워 낸 굴이 나왔다. 뽀얀 굴은 알이 크고 통통하다. 레몬즙을 살짝 뿌려 간장에 찍어 먹으니 향긋한 굴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식감은 우유처럼 부드럽다.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리고 상점가를 나섰다. 어느새 태양은 바다로 침몰했고, 어둠이 내려앉은 사위는 푸르렀다.  

오후 8시가 넘으면 섬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뜬다. 급하게 떨어지는 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쁘게 한다. 해가 진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섬은 고요하다. 상점에는 하나 둘 불이 꺼진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버렸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사라진 거리에는 외로운 사슴들만 어슬렁거린다.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까만 밤 조명이 켜진 도리이는 잠든 섬을 홀로 비춘다. 밤 11시가 되면 도리이를 비춘 불빛도 잠이 든다.

 새벽 동 틀 무렵, 신사의 지붕이 점점 밝아지고, 그 위로 푸른빛을 띤 구름이 넓게 퍼진다. 시간마다 다른 빛을 내는 섬.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미야지마의 하룻밤. 잠시 스쳐간 사람들은 이 귀한 풍경을 알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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