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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01. 2018

조선통신사도 반한 도모노우라

후쿠야마


히로시마 남쪽 끝 후쿠야마의 작은 마을에 닿았다. 도모노우라, 이름도 낯선 곳. 일본의 지중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섬들이 둘러싼 세토내해에 있는 항구마을이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엽집>에 등장할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18세기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들러 가는 곳이었다.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 마을을 사랑했다. 6개월 넘게 이곳에 머물며 단골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스케치를 하고 이미지를 구상하여 2008년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를 만들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들른 관광안내소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과 사인이 걸려있다.

영화 <울버린:사무라이>, 일본 영화 <깨끗하고 연약한>, 일본 드라마 <유성왜건>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 마을에서 촬영됐다. 항구의 전망대에서 오롯이 내다보이는 한적하고 잔잔한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병풍을 펼쳐놓은 후쿠젠지

후쿠젠지는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앞에 두고 절벽 위에 세워진 사찰이다. 헤이안 시대인 950년에 창건했다. 본당과 그에 인접한 객사 다이초로는 에도시대에 건립되었다.

한국과 일본,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굴곡진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역사를 지닌 두 나라는 조선과 에도시대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할 만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대마도를 거쳐 에도로 가는 동안 경치가 가장 좋은 곳에 머무르며 국빈 대접을 받았다. 도모노우라 후쿠젠지 다이초로는 조선통신사가 머물던 영빈관이다.


후쿠젠지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748년 후쿠야마 번에서 조선통신사 500여 명이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열 번째 조선통신사가 도모노우라 항에 도착했을 때 오이타 현의 대관들이 후쿠젠지에 묵고 있었다. 후쿠젠지는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파견될 때마다 묵었던 숙소였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그곳을 숙소로 내어 달라고 요청했다. 어쩔 줄 모르던 후쿠야마 번 관리는 다른 이유를 댔다. “후쿠젠지에 우물이 없어 물이 부족합니다. 문 앞에 민가들이 있어 좁을 뿐 아니라 절의 바로 뒤가 절벽이라 화재 시에 피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에 예전에 통신사 일행으로 참가했던 사람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관리는 당황하여 “후쿠젠지가 전날 화재로 타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후쿠젠지가 일본 제일의 경치라고 들었소.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사찰이 있던 절벽 위에 올라보고 싶습니다.”며 후쿠젠지에 들어가려 했다. 관리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사절단 한 명이 후쿠젠지로 들어가 사찰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했다. 화가 난 사절단은 다른 숙소에 가지 않고 그날 밤을 배 위에서 보내며 다음날 새벽, 에도를 향해 출발했다.


사절단은 에도에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도모노우라에 들러 후쿠젠지에서 머물렀다.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통신사의 정사였던 홍계희는 아름다운 풍경을 찬탄하며 객사에 ‘다이초로(對潮樓)’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이초로는 ‘조류를 기다리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도모노우라 항에서 조류와 바람이 바뀌기를 기다렸던 조선통신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아버지 홍계희를 따라온 홍경해는 ‘對潮樓’라고 글씨를 썼다. 그러면서 사찰의 주지에게 “이 글씨를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걸어주시오.”라고 요청했다. 주지는 지나가는 배에서도 볼 수 있는 곳에 ‘對潮樓’라는 현판을 붙였다. 나중에 목조 현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후쿠젠지 다이초로 경내에 걸려 있다.


이런 웃지 못할 일화가 있었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후쿠젠지 다이초로 마루에 앉아 가만히 둘러본다. 마치 액자처럼 여덟 개의 창이 열려 있다. 동쪽 창으로 내다보면 ‘신선이 도취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이름의 센스이지마를 가운데 두고 작은 섬들이 점을 이룬다. 남쪽 창으로 바라보면 멀리 시코쿠의 산들이 둘러 있다. 필름 한 컷 한 컷이 지나가듯 창마다 열린 잔잔한 풍경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경내에는 조선통신사들의 행렬을 재현한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 사람들이 조선통신사를 성대하게 맞이했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도모노우라 전통주 주조장, 오타케주타쿠

옛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도모노우라의 골목은 매력적이다.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좁은 길을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수백 년 전 거리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어딘지 모르는 골목은 그리움이다.


한적한 골목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하나 둘 들락거리는 건물이 있다. 오타케주타쿠, 도모노우라를 대표하는 상인이 살던 집이다. 1991년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곳에서 도모노우라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주, 호메이슈를 판매한다. 오타케주타쿠는 호메이슈를 저장하는 창고였다. 호메이슈의 역사와 주조과정도 볼 수 있다. 호메이슈는 16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술로, 약 350년 전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가옥에서도 오랜 전통이 느껴진다. 도모노우라 항구의 옛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이 걸려있고 기념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찬찬히 내부를 둘러보다가 작은 잔에 따라 놓은 시음용 호메이슈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약재의 향이 진하면서도 뒷맛은 달달하다. 단맛은 찹쌀에서 나온 자연적인 것이라고 한다. 술맛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나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라 단맛에 홀짝홀짝 마시다가 취할지도 모르겠다. 주인이 술에 대해 하나씩 설명을 하는데, 자세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몸에 좋은 술이라는 말 같았다. 도모노우라에서만 생산되는 술이라니 작은 병에 담긴 호메이슈 한 병을 사들고 골목으로 다시 나섰다. 그늘이 드리운 골목 끝에 쏟아져 내리는 빛을 향해 걸어갔다.   


옛 모습 그대로, 도모노우라 조야토

빛을 따라 나오면 바다가 펼쳐진 항구가 나온다. 작은 배들을 정박해 놓은 항구는 소박하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옛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파도마저 잔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골목에서 도모노우라 항의 옛 모습이 담긴 엽서 한 장을 사들고 나왔는데 그 모습 그대로다. 부두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두 청년도 사색에 잠긴 듯 서로 말이 없다.


항구에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에도시대의 무사, 사카모토 료마의 기념관인 이로하마루 전시관이 있다. 사카모토 료마가 이끌던 사설 해군, 가이엔타이를 태운 이로하마루가 도모 앞바다에서 기슈 번의 군함과 충돌하여 침몰했다. 전시관에서 ‘이로하마루’의 유품과 침몰 상황을 볼 수 있다.

일본 영화 ‘천재탐정 미타라이:살인 사건의 진실’의 배경이 된 항구에는 타마키 히로시의 사진이 실물처럼 서있다. 아름다운 항구는 일본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다.


길의 끝에는 가로등 모양의 돌이 서 있다. 어두운 밤 환하게 불을 밝히는 상야등, 도모노우라 조야토다. 이 상야등은 도모노우라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에도시대 항구 풍경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다. 1895년 도모노우라 항구 남쪽 끝에 세워졌다. 높이가 10m를 넘는다. 남아있는 에도시대의 상야등 중에서 가장 크다.

계단으로 된 선착장의 풍경은 당시의 풍경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앞에서도 묵묵히 서 있었을 상야등, 도모노우라 항구의 조야토는 항구에서 가장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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