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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01. 2018

기후 현, 온천의 명소 게로

기후현

온천의 명소, 게로  

해질 무렵 다카야마에서 출발해 어둑어둑해져서야 게로 온천마을에 도착했다. 온천수로 피로를 풀고 잠들기 위해 조금 무리하게 이동해서 게로 온천 료칸에 숙소를 잡았다. 선택은 탁월했다.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빠듯하게 돌아다녔던 기후 현 여행의 피로가 물속에 녹아버린다.

나고야 북부, 기후 현 중앙에 있는 게로는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일본 온천 중 최고의 명소 중 하나로 군마현의 구사쓰 온천,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과 함께 일본의 3대 온천으로 꼽힌다. 게로에는 색과 향이 없는 알칼리성 온천수가 나온다. 피부염과 신경통에 효과가 있고, 피부를 매끄럽게 해서 이곳에서 온천을 하면 미인이 된다고 한다.


목욕 후에나 여름에 입는 일본 전통의상 유카타를 입고 마을을 산책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거리를 걷다보면 온천 마을답게 곳곳에 무료로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비너스 족탕, 백로 족탕, 황금 족탕 등 10개의 족탕이 있다. 특히 유아미야 족탕이 인기가 있는데, 100엔만 내면 온천물에 직접 달걀을 삶아 먹을 수도 있다.

게로는 물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마을이 조용하고 한적해서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하다. 어느 지역보다도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은 게로에서 히다 강을 바라보며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그 순간에는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전설이 담긴 온센지


아침 일찍 온천욕을 하고 마을을 나섰다. 미인이 된다는 일본 3대 온천이라 하니 다른 지역에서보다 온천장을 더 자주 이용했다. 게로 온천의 전설로 세워진 사찰 온센지로 향한다. 게로 오래 전부터 온천수가 솟아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원래 온천이 솟아나던 곳은 히다 강변이 아니라 산이었다고 한다.

 1265년 지진이 발생하면서 온천에서 더 이상 물이 솟아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근심했다.

어느 날 백로 한 마리가 강가에 찾아왔는데 다음날에도 또 찾아왔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백로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 온천수가 펑펑 솟아오르고 있었다. 백로가 날아가 앉은 소나무 아래에 약사여래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약사여래가 백로로 변해 온천이 솟아나는 곳을 알려 주었다고 믿었다. 그런 사연으로 1671년 약사여래를 모시는 온센지를 세웠다.

온센지는 마을 높은 곳에 있다. 오르막 길을 따라 온센지 입구에 서면 173개의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계단 수만큼 높이 올라가면 사찰의 담 너머로 게로 온천마을의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잔잔히 흐르는 강이 평화롭다.

사찰 건물은 오래된 가옥같다. 세월이 묻어나는 경내는 고적하다. 마을을 살렸다고 믿는 약사여래를 모셔놓은 사당은 소박하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사찰 담장 앞에 우뚝 서 있는 불상의 표정이 자애롭다.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고 온센지 뒷길로 나가면 산을 오르는 길이 나온다.


산책로를 따라 숲속을 걷는다. 아침 햇살이 비추는 높은 소나무 숲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보인다. 상쾌한 숲 속의 공기가 기분 좋다. 바람이 스치는 나뭇잎 사이로 ‘사르락 사르락’ 소리가 새어나온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5월의 숲속에서 듣는 이 노래는 청량한 숲길과 너무도 잘 어우러져 환상적인 산책길을 만든다. 지금도 이른 아침 걸었던 숲길과 노래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해 오월 햇살, 그대의 눈빛과 머리 결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해. 아직 난 너를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난 널 지울 수가 없어’    


게로 아사이치, 게로온센 갓쇼무라

상쾌한 숲길을 내려와 아침시장이 열리는 게로온센 갓쇼무라로 향했다. 게로 온천 합장촌인데, 합장촌 입구 아래에서 매일 아침 8시부터 12까지 아침 시장이 열린다. 규모는 작지만 현지에서 재배된 채소와 과일, 주스, 특산품, 소품 등을 팔고 있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곳은 아기자기한 그릇과 도쿠리, 찻잔, 술잔, 인형, 지갑 공예 같은 소품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물건도 예쁘지만 가격을 보고 더 신이 났다. 작은 접시 하나에 50엔, 기품 있는 술병, 도쿠리가 300엔이라니, 가게 안의 물건들을 몽땅 쓸어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친구에게 선물할 것까지 이것저것 맘에 드는 물건을 잔뜩 담아 계산해도 다른 곳에서 샀던 도쿠리 세트 하나 가격 밖에 되지 않았다.


물건이 깨지지 않게 정성껏 포장해주던 주인에게 “이렇게 많이 사는데 덤으로 작은 소품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여기 있는 물건 가격 자체가 도네이션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작은 술잔을 하나 더 챙겨 주신다. 시골 장터의 인심에 기분이 좋다. 작은 시장에서 소박한 사람들을 만나니 여행은 두 배로 즐겁다.


시장 끝에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게로온센 갓쇼무라, 합장촌이 나온다. 시라카와고에서 본 합장촌이 이곳에도 있다. 게로온센 갓쇼무라는 시라카와고, 고카야마 등에서 10채의 갓쇼즈쿠리 가옥을 옮겨왔다. 민가를 재현하여 합장 마을을 만들었다. 옛 모습을 한 갓쇼무라는 시라카와고 마을의 축소판이다. 이미 시라카와고 마을에 다녀온 터라 재현된 마을의 감동은 덜했다.


이 가운데 높이 25m, 폭 12.5로 합장양식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구 오오도가 주택은 국가 지정 중요유형민속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이 건물을 만드는 데 1833년부터 1846년까지 13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가옥에는 예전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농기구와 생활 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합장촌에는 음식점과 찻집도 있다. 도예 같은 일본 전통 문화 체험을 할 수 있고, 공연도 열린다.

배우 김남길, 한가인이 출연했던 우리나라 드라마, ‘나쁜 남자’의 촬영지가 게로 온천마을이다. 마을 여러 군데에서 드라마 촬영 장소라는 표시를 볼 수 있었는데, 이곳 합장촌에도 드라마 장면 사진이 붙어 있다. 일본의 소도시를 우리나라 드라마 촬영지라고 홍보하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한류를 실감한다.

     

외롭지 않은 채플린 동상

게로 온천 마을에는 개구리가 눈에 많이 띤다. 우리는 개구리 우는 소리를 ‘개굴개굴’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본어로는 ‘게로게로’라고 한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게로와 발음이 비슷해 개구리가 게로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개구리 신사도 있고 기념품 숍의 개구리 인형부터 맨홀 뚜껑의 개구리 그림까지 거리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개구리가 귀엽고 친근하다.    


게로 마을 가운데로 계곡이 흐르고 길을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다. 연두 빛으로 물이 오른 수양버들이 바람결에 하늘거린다.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온천 거리 중간에 느닷없이 미국 배우 찰리 채플린이 돌계단에 앉아 있다. 시골 마을에 찰리 채플린이 웬일인가 했더니, 예전에 게로 온천을 부흥시키기 위해 온천 거리를 영화의 거리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제1회 채플린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동상을 제작했으나 이후로 영화제는 개최되지 않았고 채플린 동상만 홀로 남았다.


채플린 동상과 함께 남녀가 사진을 찍으면 연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채플린은 일본을 여러 번 방문했고 온천을 좋아해서 료칸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만 그의 옆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앉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 그리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채플린 옆에 앉았다. 관광안내소에서 나오신 듯한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한다. 이후로도 그 노인은 채플린 동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직접 찍어주셨다.

채플린 동상 옆에 반리슈쿠의 동상도 서 있다. 무로마치 시대의 승려 시인이었던 반리슈쿠는 게로 온천을 ‘일본 최고의 온천’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맞은편에는 원숭이들과 춤을 추는 듯한 하야시 라잔 동상이 있다. 에도 시대의 학자로 자신의 시집에서 게로 온천을 군마현의 구사쓰 온천,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과 함께 일본 3대 온천으로 꼽았다. 그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게로 온천 마을 입구에 동상을 세워 놓았다. 그 거리를 따라 기념품 숍들이 늘어서 있다. 게로의 특산품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산책하면 좋은 길이다.


게로 대교를 건너 게로 역으로 향하는 강변에 카와하라 노천 온천이 있다. 무료 노천 온천이다. 24시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노천에서 알몸으로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수영복을 입고 입욕할 것을 권장하지만 게로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알몸으로 온천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남녀 혼탕이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으니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용 가능하다.

게로 온천 지역은 힐링의 마을이다. 이 마을 안에서는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마을을 산책하다 따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쉬어가도 좋고, 훌륭한 료칸에서 일본 온천 문화를 즐기면 된다.
지진이 잦고 화산이 많은 일본 지형에는 온천이 많다. 그래서 게로와 같은 온천 명소가 많다.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온천을 지역별 특징을 살려 발전시켰다. 온천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게로 온천에서 따끈한 물속에 피로를 녹여내고 사색했던 시간은 몸이 누린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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