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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0. 2018

시네마가 펼쳐진다, 시마네 현 마쓰에

시마네 현

물의 도시 마쓰에

넓은 호수가 펼쳐진 마쓰에는 물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수로와 배가 많다. 중국의 쑤저우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처럼 운하를 끼고 있는 도시의 풍경은 왠지 특별하다. 마치 어머니의 양수에 떠 있는 것처럼 물을 품은 도시는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마쓰에가 물의 도시가 된 것은 1611년 마쓰에 성을 축조할 때 군사적인 이유로 많은 수로를 건설했기 때문인데, 훗날 우리는 그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마쓰에 여행은 마쓰에 성부터 출발한다. 어느 곳이든 도시는 성과 성 주변부터 발전했다. 성을 둘러싼 강을 따라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보고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 미술관까지 돌아본다.

     

국보 마쓰에 성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마쓰에 성은 구마모토 성, 히메지 성처럼 크지 않고 명성은 덜하지만 에도시대 이전에 지어져 아직까지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12개의 성 중 하나다. 천수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성은 산인지역에서 유일하다. 에도시대라고 하면 우리나라 조선 중‧후기쯤인데, 그리 오래된 건축물은 아니지만 마쓰에 성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축성 방식과 천수각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5개의 성은 효고 현의 히메지 성, 시가 현의 히코네 성, 나가노 현의 마쓰모토 성, 아이치 현의 이누야마 성, 그리고 시네마 현의 마쓰에 성이다. 마쓰에 성은 이즈모지역의 다이묘였던 호리오 요시하루가 1611년 5년에 걸쳐 완성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두 군주를 섬겼던 호리오 요시하루가 마쓰에의 발전을 예견하고 신지호숫가에 마쓰에 성을 지었다.

메이지시대 일본 성은 대부분 철거되었다. 마쓰에 성도 철거명령이 내려졌다. 건물을 해체하면서 천수각이 180엔에 팔렸다. 성을 지키고자 했던 지역 유지들은 서로 뜻을 모아 자금을 마련하여 천수각을 다시 사들였다. 당시 쌀 한 가마가 3엔이었는데 쌀 60가마에 팔려 사라질 뻔했던 마쓰에 성 천수각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살아남았다.

산인지역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해체와 재건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쓰에 성의 가치는 크다. 원형 그대로 보존된 12개의 성 중에서 마쓰에 성 천수각은 규모가 두 번째로 크고, 높이는 세 번째다. 건축연대가 오래된 순서로는 다섯 번째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마쓰에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 우뚝 솟아 있는 마쓰에 성을 귀하게 여길 것이다.

천수각은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내부는 6층이다. 화재에 강한 오동나무로 만들어졌다. 군사적 요새와 망루의 역할에 충실했던 마쓰에 성은 마츠다이라 가문의 갑옷과 투구, 검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 센고쿠 시대의 전설적인 무사, 사나다 유키무라의 부채도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천수각에 꼭대기에 오르면 마쓰에가 360도 파노라마로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처음엔 바다인줄 알았던 신지호수는 바다만큼 넓다. 멀리 다이센도 보인다.


마쓰에 성은 주변의 공원과 성터 주변에 흐르는 강의 풍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성을 나오며 한 여름 더위에도 갑옷을 무장한 사람을 만났다. 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인데,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익살스런 포즈를 잡아준다. 그 옆에 서서 아름다운 성을 뒤로하고 유쾌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호리카와 유람선

호수가 잔잔히 펼쳐진 도시에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닌다. 마쓰에 성을 둘러싼 호리카와 강 위를 조용히 미끄러져 가는 유람선을 타고 시가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유람선에 올라 신발을 벗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배는 50분정도 마쓰에 성 해자를 돌며 호리카와 강 주변을 떠다닌다.

마치 필름처럼 배가 지날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 아기자기한 예쁜 가옥이 나오기도 하고 무사의 저택이 나오기도 한다. 강가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어린학생의 모습은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다. 강에서 바라보는 작은 도시는 평화롭다.

짙은 청록색을 띤 호리카와 강에는 16개의 다리가 있다. 다리마다 그 모양과 크기와 높이가 다르다. 어떤 다리는 너무 낮아서 유람선을 덮고 있는 천막 지붕을 아래로 내리고, 승객들이 허리를 바닥까지 굽혀야 지나갈 수 있다.


뾰족한 밀짚모자를 눌러 쓴 호리호리한 뱃사공은 일본 여인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주변의 풍경을 가리키며 해설한다. 일본인 승객들은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무언가 재미있는 사연인 듯싶은데, 온통 일본어로 얘기하니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해설을 하던 뱃사공이 갑자기 가늘면서도 구성진 목소리로 민요 한 곡조를 뽑아낸다. 말은 달라도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 하지 않던가. 가사의 의미를 알지 못해도 노래 가락이 잔잔하게 가슴에 스민다.

 그 가락은 고즈넉한 풍경에 정취를 더한다. 사공의 뱃노래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큰 박수를 보냈다. 마쓰에의 풍경을 바라보며 잔잔한 물결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배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한 폭의 그림같은 아다치 미술관

‘정원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일본 사람들은 정원을 예술품으로 만든다. 예술 같은 정원 중에서도 아다치 미술관은 일본 최고의 정원으로 불린다. 미국의 일본 정원전문지(The Journal of Japanese Gardening)에서 주최하는 <일본 정원랭킹>에서 15년간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일본정원 900여 곳 이상을 대상으로 세계 각국의 정원 전문가들이 순위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아다치 정원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본관, 도예관, 신관으로 나뉘어 있는 아다치 미술관은 정원만 보고가도 아쉬울 게 없다. 잡지는 ‘일본의 정원을 좋아한다면, 아다치 미술관을 보기 위해 시마네 현에 가야한다.’라고 소개한다. 나 또한 아다치 미술관을 보러 시마네 현 마쓰에에 왔으니 말이다.

1970년 아다치 젠코가 개관한 아다치 정원은 5만평의 넓은 부지에 6가지 테마의 정원을 액자에 담아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야외로 나가 정원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실내에서 전시회를 관람하듯 자연을 감상한다. 자연을 즐기는 기발한 발상이다. 고산수정, 백사청송정, 태정, 지정이라 이름 붙여진 풍경은 일본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정원을 관람하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가장 먼저 태정(苔庭)을 만난다. 이끼정원이라고 하는 태정은 새벽에 보면 좋을 풍경이다. 이끼 깔린 잔디 위로 쭉쭉 뻗어있는 소나무에 새벽안개가 내리면 몽환적일 것 같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프레임 안의 정원은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고산수정(枯山水庭)은 아다치 미술관의 메인 정원이다. 정원의 진수를 보여준다. 차경 기법을 이용하여 물을 쓰지 않고 돌과 나무로 폭포와 산수를 표현했다. 정원 가운데 서있는 돌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거기서 흐르는 물이 큰 강물을 이루는 웅대한 산수의 정취를 보여준다. 장엄함과 신성함이 담긴 정원은 멀리 있는 산과 연결되어 더 웅장하다.

‘살아있는 액자’라는 테마의 창은 창문자체가 살아 있는 액자다. 창문너머 보이는 풍경은 일본화의 병풍을 떠올리게 한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빛이 들고 날 때마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을 담은 액자는 살아있는 듯하다. 커다란 창틀이 풍경의 구도를 잡는다. 창에 담긴 풍경이 거대한 액자 같다. 감미로운 삶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담겨있다.


정원 너머로 멀리 보이는 구학폭포는 높이 15미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정원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지정(池庭)이라 불리는 연못정원은 요코야마 다이칸 특별전시관을 둘러싸고 있다. 연못의 물은 고이지 않고 흐른다. 잔잔히 흐르는 물위에 정원의 풍경이 거울같이 비춰진다. 각 테마마다 다른 기법으로 풍경을 담아내니 놀랍기 그지없다. 정원의 경이로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살아있는 족자’는 도코노마의 벽을 뚫어,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마치 방 안에 한 폭의 산수화를 걸어놓은 것 같다. 족자의 그림을 보는 듯한 풍경은 아다치 미술관의 명물 중 하나다. 도코노마는 일본 건축에서 방의 한 켠을 바닥보다 한 층 높게 만든 곳으로, 움푹 들어간 벽에는 족자를 걸고 인형이나 화병, 미술 작품 등을 장식한다.


아다치 정원의 도코노마 너머로 사람들이 지날 수 있는데,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정원 속의 작품이 된다. 사람들이 지날 때 마다 족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 순간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는 족자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예상대로 근사한 한 컷을 건질 수 있었다.

웃지 못 할 해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도코노마 장식이 예쁘다 보니 외국인들이 료칸이나 일본풍의 방에서 도코노마에 올라 앉아 사진을 찍는 일이 간혹 있다. 일본에서는 도코노마를 신성하게 여긴다. 예쁜 장소지만 앉으면 안 된다. 알지 못해서 했던 행동이 그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도 ‘도코노마’에 앉은 모델 사진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상대의 문화를 알고 존중하는 것도 여행자의 매너가 아닐까 싶다.


정원에서 마지막으로 관람한 곳은 백사청송정(白砂靑松庭)이다. 일본 제일의 화가, 요코야마 다이칸의 명작 ‘백사청송’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한 정원이다. 봄의 빛깔을 점묘한 진달래의 분홍빛과 소나무의 푸른빛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정원을 돌아보고 난 후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혹자는 잘 다듬어진 일본의 정원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고 한다. 자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 심정도 이해된다. 일본 정원은 어느 곳을 가던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정원과 풍경의 완벽한 조화를 위해 아무렇게나 놓은 것도 없다. 돌 하나에도 큰 의미를 담는다. 마치 강박증을 가진 사람이 다듬어 놓은 것처럼 자로 잰 듯한 정원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일본의 정원에 찬사를 보낸다. 정원을 예술품으로 생각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담아 의미를 부여하고, 혼을 불어 넣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아다치 미술관의 정원은 내가 본 최고의 정원이다.     


아다치 미술관의 보물은 정원뿐만이 아니다. 미술관에는 일본 제일의 화가 요코야마 다이칸의 작품도 120여점 가까이 소장하고 있다. 요코야마 다이칸은 전통 일본화를 부활시킨 일본화가로 생생한 필치와 정감 넘치는 그림을 그려 일본 근대 회화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일본화를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감탄할 만큼 수준 높은 그림이다.
‘가와이 간지로’와 ‘키타오지 로산진’ 도예의 두 거장의 작품도 도예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동화 화가인 하야시 요시의 동화도 소장하고 있다. 아다치 미술관은 자체가 보물이다. 정원과 함께 둘러보면 반나절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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