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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8. 2018

교토보다 조용한 근교 소도시, 우지

오랜 문화유산과 문학의 향기 가득한 마을

교토에도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교토 근교 우지(宇治)는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조용한 사색의 길을 걷고 싶다면 교토를 조금만 벗어나 보자. 교토 근교에 한적하지만 오랜 문화유산과 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마을이 있다. 우지가 그곳이다.

우지는 소도시지만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본 최초의 신사인 우지가미 신사가 있고, 천년고찰 보됴인이 있다. 일본 고대 소설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겐지모노가타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생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북적한 교토를 벗어나 근교의 소도시 우지 마을로 떠난다.

     

소설 <겐지모노가타리>의 우지

우지는 일본의 대표 고전문학 <겐지모노가타리>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겐지모노가타리>는 헤이안 시대 중기, 궁정의 시녀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장편소설이다. 일왕 4대에 걸친 70년이 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대의 이상적인 남성이었던 히카루 겐지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많은 여성과의 연애 이야기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겐지가 죽은 후, 후손들이 경험하는 삶의 이야기도 다룬다. 인간 내면의 고뇌와 갈등 속에서 궁정의 암투와 귀족 생활도 묘사되었다.


<겐지모노가타리>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소설은 크게 3부, 200자 원고지 4800장에 400여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대작이다. 교토에서의 겐지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1, 2부와 겐지가 죽은 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3부로 나누어진다. 3부의 무대는 교토를 떠나 우지로 옮겨간다. 우지 곳곳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여자와 남자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우지 마을에는 <겐지모노가타리>의 흔적들이 넘쳐난다. 우지를 여행하면서 <겐지모노가타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락의 궁전 뵤도인

우지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뵤도인이다. 일본 동전 10엔짜리에는 마치 한 마리 새가 화려한 날개를 펼친 듯한 봉황당이 새겨져 있다. 바로 극락의 궁전이라는 불리는 뵤도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의미를 넘어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닌 사찰이다. 동전에 새길만큼 일본 사람들은 뵤도인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1052년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그의 아버지 후지와라 미치나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개축한 뵤도인에서 <겐지모노가타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겐지모노가타리>를 쓴다. 이 소설로 후지와라 미치나가 가문에 발탁되었다.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중궁 쇼시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뵤도인은 <겐지모노가타리>의 모델이었던 미나모토 노 토루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나중에 후지와라 미치나가가 별장으로 사용했다.

뵤도인의 핵심은 봉황당이다. 봉황당을 바라보면 마치 극락과 정토가 나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연못을 건너 봉황당에 이르면 부처님을 따라 극락에 닿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20분 간격으로 50명씩 제한하여 봉황당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봉황당 안에는 노송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아미타여래좌상이 금박의 옷을 입고 화려한 자태로 앉아 있다. 흰 벽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52구의 운중공양보살상이 걸려있다. 작은 불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정토를 날아올라 아미타여래를 찬양한다.

차례차례 봉황당을 둘러보고 잔잔한 연못을 건너 정원으로 나서면 봉황당의 화려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찰의 붉은 기둥과 날렵한 곡선의 기와지붕과 지붕 용마루 끝에 장식된 황금색 봉황이 연못에 그대로 비친다. 봉황당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봉황당을 감싸고 있는 연못은 어머니 뱃속에 생명이 떠 있는 양수의 공간을 의미한다. 사람은 두 번 물을 건넌다고 한다. 한 번은 어머니 뱃속에서 양수를 건너서 세상으로 나온다. 또 한 번은 강을 건너 다른 세상, 극락으로 간다. 그 상징적이 모습이 연못에 떠 있는 듯한 뵤도인에 담겨있다.

     

우지가와에 흐르는 문학의 흔적

뵤도인을 나와 걷다 보면 우지가와를 만난다. 우지가와를 가로지르는 우지바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646년 고구려 도등 스님이 건설했다고 한다. 거칠게 흐르는 물이 화살같이 빨라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강가에 말을 멈추었다. 강변에는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과 말들로 장사를 이루었다. 이 모습을 본 도등 스님이 다리를 놓아 강을 건널 수 있게 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물살은 여전히 거셌다. 스님이 마음이 아니었다면 세차게 흐르는 강을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다.

우지가와에는 <겐지모노가타리> 3부에서 두 남자가 한 여인을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애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가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거친 물살을 바라보며 여인이 자살을 시도하는 등 소설 속 애절한 이야기가 우지 다리 아래로 흐른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흔적도 묻어있다. 1943년 도시샤 대학 영어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징병을 피해 귀국을 결심한다. 윤동주는 우지가와에서 학우들과 송별회를 하며 생애 마지막이 된 사진을 찍었다. 송별회 자리에서 학우들의 요청으로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윤동주가 마지막 사진을 남긴 배경은 우지가와에 놓인 아마가세 구름다리다. 그때는 알고 있었을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게 되리라는 것을. 흑백 사진 속에 담긴 그의 엷은 미소가 처연하다.

우지는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청년, 윤동주를 기억한다. 2017년 10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가 우지 강변 신핫코바시에 세워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우지가미 신사

우지바시에서 우지가미 신사를 향해 걷다 보면 주홍빛 아사기리바시를 만난다. 다리 아래에는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인물 우키후네와 니오노미야가 배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묘사한 동상이 있다. 소설 속 장면과 겹쳐진 이들의 모습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아사기리바시 바로 앞에는 규모가 작은 우지신사가 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지가미 신사가 나온다. 1060년경에 세워진 우지가미 신사는 오진 일왕과 그의 아들 우지노와키이라쓰코, 닌토쿠 일왕을 신으로 받들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신사의 경내는 아담하다. 다각으로 독특하게 휘어진 신사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경내를 찬찬히 둘러보면 가장 오래된 신사답게 신령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줄기가 굵은 고목도 신사의 세월을 말해준다.


무로야치 시대 우지의 7대 명수 중에서 유일하게 마르지 않은 샘물, 기리하라미즈가 신사의 경내에서 여전히 샘솟는다. 수수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지가미 신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녹차 향기 가득한 우지

우지의 골목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차의 향기가 솔솔 새어 나온다. 겐지모노가타리와 함께 우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지 차(茶)’이다. 우지는 사이타마, 시즈오카와 함께 일본의 3대 녹차 산지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쉬어간다.

우지바시 앞에 강을 바라보고 있는 고풍스러운 찻집, 츠엔에 들렀다. 8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찻집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여기에서 다도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우지가와가 흐르는 창가에 앉아 녹차 세트를 주문했다. 쌀가루를 반죽하여 작고 둥글게 빚은 당고와 함께 나온 녹차는 특별했다.

우린 것이 아니라 다린 것이라 해야 할까. 흔히 생각하는 찻잎을 우려낸 맑은 녹차가 아니라 탕약을 다려낸 듯 진하고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녹차 특유의 쌉쌀한 맛은 함께 나온 당고의 달콤함에 사르르 녹아든다.



오랜 문화유산과 문학의 향기가 짙게 밴 마을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고향을 그리며 별을 헤었을 그의 별이 뜬것일까. 우지의 까만 밤에 보석이 걸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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