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천년고도’ 교토를 여행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담은 사찰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유서 깊은 문화유산의 흔적을 찾고 싶기도 하다. 문학과 영화의 무대로 녹아든 풍경에 짙게 밴 예술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교토를 여행하는 또 다른 이유를 대라면 시간이 멈춘 듯 천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운치 있는 골목을 걷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토를 걸으면 일본의 심장을 걷는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소설 <금각사>로 빛나는 킨카쿠지
역시 금각이다. 교토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교토에 온 이유를 찾았다. 탐미 문학의 거장 미시마 유키오는 그의 소설 <금각사>에서 주인공 미조구치의 마음을 빌어 금각의 아름다움을 찬탄했다.
“여름철의 꽃들이 아침이슬에 젖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 금각처럼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한 구름이 산 저편을 가로막고 천둥을 머금은 채 암담한 테두리만을 금빛으로 번쩍일 때에도, 그 웅대한 광경을 보며 금각을 연상했다. 심지어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마음속으로, ‘금각처럼 아름답다’고 형용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그렇다. 금각을 마주한 순간,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햇살에 부딪혀 금빛으로 반짝이는 사찰, 그림자가 투영되어 금빛으로 일렁이는 연못, 600년 세월을 연못에 섬처럼 떠 있는 소나무, 연못 위에 안개처럼 내려앉은 구름. 이 모든 장면은 상상 속 미완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켰다.
금빛으로 빛나는 킨카쿠지(金閣寺)는 일본 교토 기타야마에 있는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이지만,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전에 금박을 입혔기 때문에 킨카쿠지라고 알려졌다. 킨카쿠지는 무로마치 시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 교토에 만든 별장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킨카쿠지는 화려한 외관에 비해 불행도 겪었다. 정신병자로 추정되는 사미승이 금각에 불을 질렀다. 지금의 금각은 1955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소설 <금각사>의 내용도 이러하다. 금각에 대한 유별난 애정을 느끼던 주인공 미조구치는 성장하면서 현실과 마주칠 때마다 금각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라 방해를 받는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도 금각의 모습과 겹쳐져 죄책감을 느낀다. 이를 괴로워하다 결국 금각을 불태운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미에 대한 질투’와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갖고 금각과 함께 죽고 싶었던 사미승이 실제로 금각사를 방화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불타는 아픔을 겪고 복원된 킨카쿠지는 귀족적인 화려함과, 선사의 조용함과, 연못을 담고 있는 정원이 조화를 이룬다. 연못은 조 도 만 자라(정토의 여러 부처 모습을 그린 불화)에 그려진 그림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기타야마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킨카쿠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음속에 그리던 금각을 마주한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과 같은 마음이었다.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 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었다.”
인간이 빚어낸 우주, 예술의 정원을 간직한 료안지
킨카쿠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금은 한적한 사찰 료안지가 있다. 황금빛 사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못 주변을 울타리처럼 둘러싼 킨카쿠지와 대비되는 풍경이다. 사람들에 떠밀려 돌아다니다 조용한 사찰을 만나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료안지 입구부터 다듬어지지 않은 속내를 드러낸 연못은 넓고 깊다. 료안지는 무로마치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1473년 세워진 선종 사원이다.
료안지의 백미는 가레산스이 정원이다. 가레산스이는 물을 쓰지 않고 돌과 모래로 산과 물을 표현한 차경 기법이다. 정원은 하얀 모래와 돌로 이루어져 있다. 하얀 모래는 바다를, 바위는 바다에 떠있는 섬을 상징한다.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뚜렷이 존재하는 우주를 담장 아래 마당에 산수화처럼 펼쳐 놓았다.
정원 안의 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7개, 5개, 3개씩 모두 15개가 놓여 있다.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한 번에15개의 돌을 다 볼 수 없다는 것이 재미있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종의 정신이 담겨있다.
너른 마루에 앉아 바위와 모래로 인간이 빚어낸 우주를 가만히 바라본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돌의 숫자를 세어본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바쁘게 걸어가는 삶, 보이지 않는 수만큼은 삶에서 내려놓으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