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걷다
달빛이 비추는 다리의 풍경은 어떨까. 아라시야마 가쓰라가와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다리는 그 이름처럼 아름답다. 도게츠교다. 도게츠는 ’달이 다리를 건너는 듯하다’는 의미다.
강을 넘어 길게 뻗은 도게츠교는 자연과 어우러져 고즈넉하다. 다리 위에 올라서면 아라시야마의 호젓한 풍경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다리 위, 인력거가 달리는 풍경은 영화의 한 장면이 상영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헤이안 시대 일본 귀족들의 별장이 많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교토의 북서쪽에 있는 아라시야마는 명승지가 많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시원한 강바람이 녹음을 흔들어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가을에는 오색찬란한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산 능선이 하얀 고깔을 뒤집어쓴다.
사스락 사르락 사르락... 청아한 바람소리에 대나무 숲이 흔들린다. 저 멀리서 울리는 댓잎 부비는 소리는 가까이 다가오다가 나의 귓속을 파고든다. 소리의 물결이 온몸에 퍼지면 머리는 청량함으로 맑아진다. 대나무 숲 치쿠린, 아라시야마에서 걸어보아야 할 길이다.
소설 겐지모노가타리와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도 등장하는 치쿠린은 텐류지 북문 오른쪽에 있는 노노미야 신사부터 출발한다. 신사 입구의 기둥문인 토리이는 대부분 주홍빛이지만 노노미야 신사는 검은 토리이가 특이하다.
이곳에는 사랑을 이루어주는 신과 자녀의 진학을 기원하는 신을 모신다. 그래서일까. 손을 꼭 잡은 커플들이 눈에 많이 띈다. 경내에는 문지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돌과 이끼 낀 정원이 있고, 주변이 온통 대나무 숲이라 운치 있다.
신사를 돌아 숲으로 나오면 인력거가 숲길을 달리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힘들겠지만 인력거를 끄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얼굴에 미소가 넘치니 이곳을 거닐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모두 잊혀지는 게 아닌가 싶다.
숲길을 걷다 대나무 줄기를 따라 올려다 본 하늘에 시선이 머문다. 숲에 가려 조각난 하늘이 눈부시다. 품고 있던 걱정하나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