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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Dec 27. 2018

세계유산 후지산을 품은 시즈오카

시즈오카현

‘잠시 후 시즈오카 공항에 착륙하겠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후지산!” 갑자기 창가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아직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흘러내릴 듯 하얀 눈이 뒤덮인 단정한 봉우리가 저 멀리에서 선명한 자태를 드러냈다. 일본의 심장, 후지산이다.

후지산을 보러 시즈오카에 간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시즈오카 어느 곳을 가도 후지산이 보인다. 일본 차(茶)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넓은 녹차 밭 너머로, 들판에 흩어져 있는 호수 위에서, 소나무 숲이 병풍을 친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건물이 촘촘하게 모여있는 도심 속에서도 후지산은 우뚝 솟아 있다. 웅장한 산은 자연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시즈오카와 후지산은 어쩌면 동의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오카에서는 후지산이 세상을 품는다.


녹차밭에 걸린 후지산, 오부치 사사바

시즈오카 공항에서 후지산을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산은 잠시 사라졌다 나타났다 반복한다. 웅장한 산 아래로 파란 바다도 지나간다. 아름다운 녹차밭이 있는 오부치 사사바로 향하는 길. 시즈오카는 일본 최대 녹차 산지다.

오부치 사사바, 조용한 마을에 들어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처럼 단정하게 배열된 녹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푸른 지평선 끝에는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듯 하얀 눈이 뒤덮인 후지산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넓고 푸른 녹차밭 능선 너머로 우뚝 솟아있는 후지산은 시즈오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후지산은 시즈오카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있지만 언제나 그 웅장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날이 흐리거나, 혹은 맑은 날에도 짙은 뭉게구름에 가려 온전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다. 다행히 깊어가는 가을날 찾아갔던 푸른 녹차 밭 위에서 후지산은 단아한 모습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비단실처럼 흘러내리는 시라이토노 타키

‘이 위에 어떤 공주님이 살고 있기에 베실 꾸리를 늘어뜨리는가.’ 헤이안 시대 말기의 무사이자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시라이노토 타키를 보고 읊은 단가다. 절벽에서 하얀 명주실을 갈래갈래 늘어뜨린 듯 흘러내리는 폭포는 우아하다. 높이 20m, 폭 150m에 달하는 폭포는 후지산의 눈이 녹아서 지층 사이로 흘러내린다. 시라이노토 타키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폭포로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쇼와 25년(1950년)  ‘일본 폭포 100선’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폭포를 보려면 숲이 우거진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단풍이 곱게 물든 숲 속에서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계단 중턱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절벽에서 가는 물줄기가 쏟아져내린다. '와'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폭포는 그림 같았다.

시라이토노 타키 가까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25m 높이의 절벽에서 굉음을 내며 폭포수가 쏟아진다. 시라이토노 타키가 여리여리하고 섬세한 여성 같다면 오토도메노 타키는 기골이 장대한 남성 같다. 폭포의 이름도 장쾌한 소리 때문에 지어졌다고 한다.

약 800년 전, 소가 형제가 아버지의 원수인 쿠도 스케츠네의 목을 베기 위해 이곳에서 상담을 했다. 그러나  폭포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신에게 빌었더니 그 순간 폭포 소리가 멈췄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소리를 멈추게 하는 폭포'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헤세 2년에 ‘일본의 폭포 100선’에 시라이토노 타키와 오코노메노 타키가 뽑히기도 했다.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다누키코

호수에 비친 후지산을 보기 위해 다시 산길을 따라 달린다. 후지산은 여전히 숲길에서도 따라온다. 다누키코는 이른 아침이 가장 아름답다. 아침 호수에 후지산이 비치면 그 모습이 다이아몬드 모양 같다해서 '다이아몬드 후지'라고 한다. 사진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후지산 정상에 태양이 머물면 다이아몬드 두개가 이어진것 같은 '더블 다이아몬드 후지'도 볼 수 있다.

녹차밭에 걸린 후지산을 보고, 아름다운 폭포를 보고 나니 해가 저문다. 후지내리는 양이 호수를 적시는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하며 다누키코에 도착했지만 사위는 둠이 물들고 있었다. 후지산은 저녁 안갯속에서 희미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풍경을 둘러보니 호숫가에 드문드문 텐트가 세워져 있다. 단풍이 물든 고요한 숲 속 호숫가에서 캠핑이라니! 이른 아침 눈을 뜨면 후지산은 다이아몬드 빛을 내고 있을 테고. 일본을 여행하면서 가장 부러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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