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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Dec 18. 2018

신궁의 도시, 이세

미에 현

미에 현에 있는 이세는 이세신궁과 더불어 발전한 도시로 일본 신앙의 메카가 되는 곳이다. 이세에 온 이유는 딱 하나다. 이세신궁이 있기 때문이다.  이세신궁은 둘러보는 데 하루가 걸릴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프랑스 파리 시와 같은 면적이라고 하니 부지가 얼마나 넓은지 상상이 된다.

이세신궁은 내궁(內宮)과 외궁(外宮)으로 나뉘어 있다. 내궁 주변에는 산과 강이 있고, 19~20세기의 건축을 이축하여 옛 모습을 재현한 오카게 요코초에 많은 상점이 모여 있다. 외궁은 다카쿠라야마 기슭에 있어 숲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이세는 작은 도시지만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신사의 메카, 이세신궁

일본을 여행하면서 많은 신사에 가본 것 같다. 산꼭대기까지 빨간 도리이가 이어진 신사, 바다를 향해 빨간 도리이가 이어진 신사, 숲 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가장 오래된 신사, 바다 위에 떠 있는 신사까지 다양한 빛깔을 지닌  신사를 곳곳에서 만났다. 그만큼 일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신사는 항상 있었다는 얘기다.

일본 사람들에게 신사는 숲과 같은 존재다. 일본의 숲에 가면 언제나 신사를 만나, 신은 숲처럼 일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의 일부다. 생활과도 같은 신을 모시는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우리가 종교를 갖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편한 진실로 남아 있는 신사에 대한 편견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세신궁은 수많은 신사 중 으뜸이다. 일본 건국 신화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여신을 모시는 신사다. 차별 없이 따뜻하게 세상을 비춘다는 태양신이 머무는 곳이다. 일본인이라면 살면서 한 번은 가게 된다고 할 정도로 연간 600만 명이 넘는 참배객이 이곳을 찾는다.


이세신궁은 내궁과 외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궁은 왕족의 조상신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를 모시는 고타이진구(皇大神宮)이고, 외궁은 풍요로운 수확과 의식주를 다스리는 도요우케노 오오카미를 모시는 도요우케대진구(豊受大神宮)다. 내궁과 외궁 외에도 별궁, 섭사, 말사, 소관사 등 125개의 크고 작은 신사가 있으며 거기에 모신 신의 숫자만 140좌에 이른다. 과연 신들의 대전이라 할 만한다. 커다란 숲으로 둘러싸인 신궁은 웅장함이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세련된 절제미가 있으며 소박하다.

일본 신사에서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현재의 크기와 똑같은 크기로 새로운 신전을 만든다. 신복장, 가구, 보물도 다시 만든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신전의 신체(神體)를 새로운 신전으로 옮긴다. 이런 의식을 시키넨센구(式年遷宮)라고 하는데, 이세신궁은 20년에 한 번 건물 전체를 바로 옆에 다시 짓는다. 20년마다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것은 일정 기간이 지나 신전을 새롭게 지어 신들을 깨끗한 곳으로 옮기면, 신이 더 젊어지고 강한 수호의 힘을 가지게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낡고 쇠퇴한 것을 정화시키고 재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신관(神官)이 했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의식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석재로 만들어 영원히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전은 폐허처럼 무너져 버렸고 신앙마저도 잊혔다. 그러나 썩기 쉬운 목재로 만들어진 이세 신궁은 주기적으로 재건축을 하여 신앙과 함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내궁은 일본에서 가장 신성한 영역이다. 가미지야마 기슭에 자리한 신궁 앞에는 이스즈가와가 흐른다. 내궁으로 들어가려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우지바시를 건너야 한다. 신궁이 강 너머에 자리한 이유는 신성한 영역을 속세로부터 분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나무로 된 100m가 넘는 긴 다리도 시키넨센구의 하나로 20년마다 재건된다.

강을 건너 넓은 공을 지나면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길이 나온다. 울창한 고목이 이어진 숲을 따라 길의 끝까지 걸어가면 정궁,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신전이 있다. 일본 3대 신궁의 신전에는 왕의 보물이라 불리는 삼종신기인  검, 구슬, 거울을 각각 모셔 놓는다. 이세신궁의 정궁에는 왕의 세 가지 보물 중에서 거울이 모셔져 있다. 아마테라스가 왕손 니니기에게 ‘아마테라스 자신을 보듯이 거울을 보라’고 말하며 건네준 거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울이 사진으로 남겨진 것도 없고 일왕도 볼 수 없다고 하니 소재에 대한 시비도 있다고 한다.

이세신궁 정궁은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박공지붕 모양으로 중앙에 계단이 있는 목조 건물이다. 본전은 네 겹의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참배객은 세 번째 울타리 입구 앞에 모셔져 있는 신에게 참배한다. 이세 신궁은 신성한 신사로 여겨 서민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2세기 이후부터 서민들의 참배가 허락다. 지금도 성스러운 곳이라 해서 신사 내부의 사진 촬영은 할 수 없다.

   

이세의 전통거리 오카케 요코초

다리를 건너 내궁을 나오면 길옆에 골목이 있다. 오카케 요코초라는 골목은 일본 에도와 메이지 시대(1603~1912)의 거리를 재현한 상점가가 늘어서 있다. 레스토랑, 잡화, 공예,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목조 건물에는 당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카케 요코초 입구에는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네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고양이 동상 뒤로 이어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깃초 쇼후쿠테이’라는 상점이 있다. 일본 각 지역의 도예가들이 만든 마네키네코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모양의 마네키네코는 표정도 다채롭다. 일본의 모든 마네키네코가 이곳에 모여 있는 듯하다. 수많은 고양이 인형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곳이다. 행운을 불러온다고 하니 금전을 부르는 운과 사람을 끄는 운이 들어있는 한 쌍의 마네키네코를 사들고 나왔다.

거리에는 먹거리도 다양하다. 떡과 밥을 꼬치에 끼워 구운 다음 된장, 간장 등을 발라 먹는 미타라시 당고, 밥을 뭉쳐 꼬치에 끼워 된장을 발라 구운 고헤이 모찌, 일본 3대 소고기 중 하나인 마쓰자카규, 이세에비 등 독특한 일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아카후쿠 모찌와 이세우동은 신궁의 역사와도 관련 있는 이세의 명물이다. 1707년 만들어진 아카후쿠 모찌는 옛날 수없이 밀려드는 참배객들에게 더 많은 모찌를 팔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모찌는 찹쌀떡 속에 단팥을 넣지만 아카후쿠는 단팥 속에 떡이 들어 있다.  찹쌀떡 속에 단팥을 넣는 것보다 단팥으로 떡을 감싸는 것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명물, 이세 우동은 이세신궁을 찾는 수많은 참배객들이 빨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면에 뜨거운 국물 대신 간장소스를 뿌렸다. 먼 길을 온 사람들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도록 면발은 굵고 소화가 잘되도록 푹 삶았다. 굵기가 1cm 정도 되는 것도 있을 만큼 굵은 면발에 계란 노른자와 간장소스를 넣어 비벼 먹는다. 음식에도 역사가 담겨 있으니 그런 사연을 생각하며 먹는 음식은 더 특별하다.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골목은 소박한 멋이 묻어난다. 옛 모습을 간직한 고즈넉한 거리에서는 숨어있는 모든 풍경이 드러난다.


푸른 숲이 우거진 외궁

내궁에서 외궁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외궁으로 가려면 차로 이동해야 한다. 다카쿠라야마 기슭에 있는 외궁은 마치 숲 속에 있는 별장 같다. 궁을 둘러싼 편백나무 숲은 맑은 공기를 뿜어낸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신전으로 가는 길에는 둘레가 엄청나게 굵은 고목들이 높이 솟아 있다. 신궁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들은 에도시대에 심어진 것이다. 나무의 둘레와 높이가 숲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산책하듯 길을 걷다 보면 외궁의 정궁이 나온다. 외궁 신전의 건축 양식은 내궁과 거의 비슷하지만 외궁 고유의 미케덴이라고 불리는 신전이 있다. 미케덴에서는 하루에 두 번 신궁의 신관들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다른 신들에게 신성한 음식을 바친다. 왕족의 번영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외궁이 만들어진 이후 1500년 동안 지내온 의식이다.

일본 서민 생활을 주제로 그린 회화로 불리는 우키요에의 화가, 안도 히로시게의 ‘이세참궁, 미야가와 도강(1855년)’이라는 풍속화에는 일본 각지에서 이세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풍경이 담겨있다. 에도시대 중기부터 아마테라스에게 복을 구하는 이세 신앙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세 신궁에 참배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남녀노소가 참배 행렬 속에서 춤을 추며 이세로 몰려들었다.

16세기 말 일본에 머물렀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편지로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일본 전국에서 아마테라스를 참배하기 위해 몰려드는 순례자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서로 앞을 다투어 이세신궁을 참궁하는 풍습인데, 이세에 가지 않는 자는 인간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여길 정도다.”

1830년에는 전국에서 약 486만 명이 이세로 몰려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깃발을 든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손에는 국자를 들고 일본의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과 북을 울리면서 춤을 추며 걸어갔다고 한다. 이세신궁 참배 길은 기이한 장관이 연출되었다. 참배길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엄청난 규모의 이세신궁의 역사를 보면 이세신궁이 일본 신사의 메카가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세신궁은 일본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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