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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03. 2018

히다후루카와 <너의 이름은>

기후 현, 고즈넉한 전통마을 히다 시

깊은 산세에 둘러싸인 기후 현 히다 시에는 서로 닮은 두 마을이 있다. 히다 후루카와, 히다 다카야마다. 두 마을은 미야가와 하류에 있고, 마을이 생겨난 것이나 마을에서 풍기는 정서가 교토의 역사와 닮아 ‘쌍둥이 작은 교토’라고 불린다. 고즈넉한 전통 거리를 조용히 산책하면 좋을 히다의 두 마을, 가까이에 있는 두 마을 중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으로 잘 알려진 히다 후루카와를 먼저 찾았다.  

   

히다 후루카와, 너의 이름은

히다 후루카와는 400년 전 일본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는 성하 마을이다. 일본식 전통 양초 전문점, 양조장, 종이 공예 공방, 미술관 등 전통과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들이 가득하다. 마을은 ‘속세 생활에 지치면 후루카와로!’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고적한 마을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의 성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너의 이름은>의 흔적을 따라 히다 후루카와 마을을 산책한다.   

 

애니메이션 여행의 시작, 히다 후루카와 역 

히다 후루카와에서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소는 히다 후루카와 역이다.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타키의 아르바이트 선배와 친구가 미츠하를 찾으러 타고 왔던 열차가 들어오는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히다후루카와 역에는 철길을 건널 수 있는 육교, 히다후루카와 에키바시가 있다. 이곳에서 선로를 내려다보면 애니메이션의 장면과 똑같은 풍경이 보인다. 열차가 하루에 몇 대 들어오지 않는 역인데, 운이 좋게도 마침 열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열차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선로의 반대편에 있었지만 역의 풍경은 하늘의 구름마저도 똑같아 이곳이 현실인지 만화 속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감독은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든다. <너의 이름은>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기후 현 히다 산악지대 이토모리 마을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서로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다. 꿈은 현실처럼 생생하다. 두 사람은 낯선 가족, 낯선 친구들, 낯선 풍경들을 만나면서 서로가 뒤바뀐 걸 깨닫는다. 타키와 미츠하는 몸이 바뀐 상태에서 서로 소통하는데 몸이나 노트, 스마트폰에 메모를 남긴다. 그러면서 점점 서로를 알게 된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타키는 자신들이 특별한 운명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고 미츠하를 만나러 간다. 3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절대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운명이 된다.


‘혜성 충돌’이라는 소재로 운명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너의 이름은>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모티브가 되었다.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마을을 삼켜버린 것처럼 운석이 충돌하여 사라진 마을에 미츠하를 찾으러 떠나는 타키는 나고야, 다카야먀, 히다 후루카와를 거친다. 미츠하가 살았던 이토모리 마을은 실제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히다 후루카와를 이토모리 마을의 배경으로 삼았다. 히다 후루카와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너의 이름은>의 장면을 둘러보는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로 인기를 끈다.

 

히다후루카와 에키바시를 내려와 역 안에 들어가면 일본 3대 소고기로 손꼽히는 히다규 마스코트가 서 있다. 타키와 함께 이곳까지 왔던 여자 선배가 이 모형을 보고 귀엽다고 펄쩍펄쩍 뛰던 곳이다. 역을 나오면 택시 정류장이 바로 나오는데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 그림을 보여주며 택시를 타던 곳이다. 애니메이션은 이런 장면까지도 마을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역을 나와 마을 속으로 걸었다. 마을에는 어떤 장면이 숨어있을까.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세토가와‧시라카베도조마치

히다 후루카와 마을에는 강이 흐른다. 미야가와의 지류인 세토가와가 좁은 수로를 타고 마을을 가로지른다. 세토가와는 채소도 씻어 먹을 만큼 깨끗했지만 마을이 발전하면서 오염되었다. 세토가와를 살리자는 염원으로 강에 잉어를 키웠다. 그래서인지 수로를 내려다보면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잉어들이 떼 지어 다진다.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수로가 흐르는 골목에 접어들면 하얀 벽의 건물, 시라카베도조마치가 이어져 있다. 돌다리가 놓인 수로와 어우러진 하얀 벽은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건물 맞은편에는 신사와 사찰이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골목은 좁지만 다양한 표정을 지녔다. 바삐 걷지 않아도 된다. 수로가 흐르듯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표정을 살핀다. 사진을 찍으면 그림처럼 나온다. 이런 풍경을 만나러 줄곧 소도시를 여행하는지도 모르겠다.


골목의 고즈넉한 풍경 속을 빠져나와 타키 일행이 라멘과 이 지역 명물인 고헤이 모찌를 먹었던 상점, 아지도코로 히다 후루카와로 향했다. 점심때가 지난 터라 가게 안은 한산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보고 있으니 주인이 알아서 <너의 이름은>의 라멘을 짚어 주신다. 다카야마 라멘이라고 하는데, 애니메이션 덕에 이 지역의 명물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실내에도 애니메이션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라멘이 나왔다. 라멘은 일본에서 많이 먹었던 돼지육수의 깊은 맛이 아니라 미소된장으로 국물을 내 깔끔하다. 그다지 특색 있는 라멘은 아니다.

고헤이 모찌는 이곳에서 팔지 않았다. 가게를 나서 시라카베 도조마치가 있는 방향으로 가니 오미야게라는 간판이 붙은 상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상점 가판대에서 고헤이 모찌, 히다규 꼬치, 당고 등을 팔고 있다. <너의 이름은>의 배경지에 온 것이니 당연히 그들이 먹었던 고헤이 모찌를 주문했다. 고헤이 모찌는 밥을 떡처럼 뭉쳐서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 막대에 끼운 뒤 일본 된장 소스를 발라 구운 것이다. 약간 짭짤하지만 한 번쯤 사 먹어도 좋을 간식이다.  

히다 후루카와는 지자케(지역 술)로도 유명한 곳이다. 마을을 걷다 보면 주조장을 많이 볼 수 있다. <너의 이름은>의 여주인공 미츠하는 신사의 무녀인데, 제를 지내는 춤을 추며 술을 만들기 위해 쌀을 씹어 뱉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씹어서 뱉어낸 쌀을 발효시켜 만든 쿠지카미자케를 최고의 술이라고 여긴다. 주조장마다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하얀 술병에 담긴 쿠지카미자케를 팔고 있다. 무녀가 씹다 뱉은 쌀을 발효해서 만든 것인지는 확인 불가다.

히다 후루카와는 애니메이션의 흔적을 따라온 사람들이 많지만 그 외에도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건축물도 독특하다. ‘히다의 장인’이라고 불리는 목수들이 많아 지붕의 처마 밑과 격자가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마을의 건축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걸어도 좋겠다. 마을은 화려한 마쓰리가 유명한데, 4월 20일에 열리는 후루카와 마쓰리에서 수레에 새겨놓은 조각은 감탄할 만하다.


히다 시의 시립도서관인 히다 후루카와 도서관은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을 찾기 위해 정보를 찾아보던 장소로 나온다. 도서관도 애니메이션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오니 도서관의 서가를 거닐어도 재미있다. 대신 사진 촬영은 할 수 없다. 타키 일행이 마을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보던 게타와카이야 신사는 본당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고, 소소한 시골 마을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천천히 산책하는 게 좋다.  


마을의 기념품 숍에서는 미츠하의 머리끈, 타키의 팔찌 등 <너의 이름은>을 테마로 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나는 타키의 팔찌를 샀다. 미츠하 할머니의 무스비였던 전통공예 쿠미히모도 체험할 수도 있다. 실을 엮어 머리끈이나 팔찌 등을 만드는 일본 전통 끈을 쿠미히모라고 하는데, 이것은 미츠하와 타키가 시공간을 초월하며 만나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츠하와 타키의 연결고리였던 머리끈과 팔찌는 인연, 운명을 상징한다. 사람의 인연을 실을 엮어 만든 끈으로 표현했다.

<너의 이름은>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은 인연, 운명을 뜻하는 매듭, 무스비라 볼 수 있다. ‘실을 잇는 것이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다. 뒤틀리고 얽히고 때로는 돌아오고 또다시 이어지는 그게 바로 무스비, 그게 바로 시간이다.’라는 대사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시간을 거슬러도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시간, 히다 후루카와 작은 마을에 서 있는 것도 무스비, 운명인 것처럼.

소중한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어버리면 안 되는 사람, <너의 이름은>의 마을에 아련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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