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모가 집 근처 새로 개업한 이탈리안 식당에 커다란 화분 몇 개를 선물했다. 전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느라 애지중지 키운 화분 몇 개가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마침 식당 주인도 휑한 공간을 초록색으로 채울 식물이 필요했고, 둘의 요구가 적당히 맞아떨어져 이모 집에서 자라던 화분 몇 개가 그 레스토랑에 가서 살게 됐다. 나라면 당근마켓을 먼저 떠올렸겠지만 이모한테는 아닌 듯했다. 이모에게 화분을 선물 받은 식당 주인은 적당한 와인 몇 병과 복권을 선물했다고 했다. 생판 남에게 복권을 선물하는 일은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의아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오늘 아침 문득 그 일이 생각난 건 책상 앞에 앉아 잘 자라고 있는 우리 집 아레카야자를 별생각 없이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는 저 나무가 너무 커진다고 해서 남에게 줄 수 있을까?부터 시작된 생각의 꼬리였다. 그런데 왜 하필 복권이었을까, 싶어서.
복권이야말로 모 아니면 도 아닌가. 당첨되면 수억 또는 수천만 원이지만 이건 가능성이 너무 희박한 경우고 분명 대부분 꽝일 거다. 만일 꽝이라면 어쩌면 수억짜리일지도 모르는 종이의 가치가 0으로 결정 나는 것이다.
나도 로또를 사 본 적이 있다. 좋은 꿈을 꾼 어느 가을날 당첨이 잘 된다는 명당을 굳이 지나치지 않고 로또를 몇 장 산 것이다. 기왕 사는 거 연금복권도 몇 장 샀다. 한 달에 수백만 원이 더 들어오거나 한꺼번에 수십억이 생기는 즐거운 상상으로 며칠을 보냈다. 결과는 당연히 꽝이었지만 혹 시라도 당첨됐을 경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워지는 것이다. (띄어쓰기 일부러 한거다..)
누군가는 복권을 두고 가난한 사람이 푼돈을 모아 부자의 밥그릇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필이면 그날 좋은 꿈을 꾼 가난한 내 푼돈과 각자의 이유로 그 주 복권을 산 사람들의 푼돈들이 모여 커다란 금액이 되어 그 주 토요일 누군가는 부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복권에게는 그렇게 차갑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어떤 낭만 같은 게 분명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없는 돈이 내 생에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는데, 그것들이 마치 내 인생의 우선순위 같았달까.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서울 안에 있는 적당한 평수의 숲 뷰 아파트를 적당히 대출 끼고 사고 싶었고, 그다음으로는 엄마 아빠와 이탈리아 여행을 가고 싶었으며, 나머지로는 하고 싶은 사업을 마음껏 시도해보고 싶었다.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도, 이게 잘 됐을 때 정말 한 해 몇 톤의 플라스틱이 이 땅에서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며 일했을 때, 스스로 의미 부여하며 일했던 그때의 그 즐거움이 잊혀지지 않는달까. 이제 나에게는 로또 당첨금이 없으므로, 이 중에서 다시 당장의 우선순위를 조금씩 조정했지만.
결국 복권을 선물한다는 건 정말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떠나 가장 최선의 케이스를 상상하는 그 즐거움 자체를 선물한다는 게 아닐까. 이모는 그 복권을 긁기 전까지 어떤 상상을 했을까. 이모라면 분명 세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주변에 숲과 강이 있는 곳에 예쁜 집을 샀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