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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Jun 01. 2021

열정은 생각보다 흔하다. 드문건 인내지.

앞으로 글을 자주 쓰겠다는 다짐을 또 이렇게 길게

어릴적 사교육 시장을 전전하며 어떤 것에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도 재능을 발견하지도 못했던 내가 유일하게 재미도 붙이고 엉덩이도 길게 붙이고 앉아서 했던게 글쓰기였다. 산문보다는 시 끄적이는걸 더 좋아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건 비둘기를 가지고 쓴 시가 상을 타면서 우쭐해졌었던 것과, 고학년들이 나가는 시조대회에서 꽤 큰 상을 받았었다는 것 정도다.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은 꽤나 이어져서 고등학교 1학년 문예부를 들어갔는데, 세상 지루함을 참을 수 없어 댄스부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그렇게 글쓰기에서 멀어졌다. 공부도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문대 준비를 위한 논술도 필요없었다. 그저 문제를 많이 잘 풀어 점수를 올리는데 그닥 좋지도 않은 머리를 집중했다. 글쓰기에 대한 노력과 관심도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이후 글쓰기와 운명처럼 재회했는데, 쓰지 않으면 월급이 안나오는 홍보회사에 들어간 것이다. 월급을 받기 위해 써야 하는 글은 대체로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정해진 형식대로 팩트를 나열하고 거기에 멋들어진 회사 대표나 팀장 정도의 멘트를 그들에 빙의해 집어 넣고 고객사에 보내는 일이었다. 내가 쓰는 글은 고객사에서 우리 회사에 주는 리테이너 요금에 속한 계약 건수로 계산됐다. 나의 시간은 내가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고객사 업무를 해내기 위해 쓰였다. 글쓰기가 재미없어졌다. 가끔 그런 생각도 했는데, 나는 왜 하필 쓰는 것에만 이과 아닌 문과에 진학할 정도의 재능과 관심같은게 있었을까 하는 푸념같은 것. 그만큼 나에게 글쓰기는 더 이상 공들여 다뤄지는 어떤 중요한 주제같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 글쓰기가 나에게 무엇인지조차 고민하지 않았으니까. 홍보 에이전시를 벗어나면서 내 글이 고작 계약서에 명시된 건수로 치부되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따로 글을 쓰는 일 같은건 하지 않았다.


글쓰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기 시작한건 이제 정말 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글을 써보려니 예전의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가고 어떤 날은 정말 한 마디도 내딛을 수 없어 창을 닫아버린 날도 있었다. 이슬아 작가가 한 말, ‘피곤한 것이 부끄러운 것보다 낫다’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디 가서 수업이라도 들어볼까 싶었지만 소용없을 것임을 알았다. 나는 그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걸 어느 순간부터는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마법처럼 갑자기 좋은 글이 술술 써지길 바란 적도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술술 써 올린 글이 수백 건의 좋아요를 받고 기사화까지 되던 날처럼 말이다. 그런 일은 보란듯이 인생에서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은 바라지 않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도 좋다는걸 이제는 정말로 잘 알고 있다.


작년 언젠가 트위터의 짧은 글 한 줄을 보고 뭔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정은 흔하다. 드문것은 인내다.’ 열정 과잉시대라는 말이 생길 만큼 누구에게나 열정같은게 요구되던 때도 있었다. 열정만 있으면 다 해결될것 같았던 때.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어려운 순간이 올 지언정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렵고 그래서 더욱 값지다는걸, 이제는 머리로나마 알게 됐다. 문제는 실천이지. 그래서 몇 번 씩이고 내딛었던 단 한 문장들을, 그렇게 또 다른 조급함과 분주함에 밀려 완성되지 못했던 수 많은 빈 페이지들을 다시 한 번 채워나가 보겠노라 다짐한다. 결국 써내려가면서 나 자신과 하는 대화에서 오는 힘이 있다는걸, 그게 그 어떤 대화보다 중요하다는걸 이제는 또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슬아 작가는 그의 책 ‘부지런한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재능이 빛나는 아이에게 그저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라고 말할 뿐이라고. 그 아이가 재능을 믿고 게을러지는 아이가 아닌, 계속 써나가는 아이이길 바래서다. 그 또한 ‘꾸준함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아는 작가는 많이 없지만 그 누구보다 이슬아라는 작가를 존경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그는 어떤 거창한 문인이나 예술가보다는 tv프로그램 ‘서민갑부’같은데 나오는 사장님들처럼 글을 쓰는 것 같다. 그가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탐나고 샘난다. 담아낼 능력이 없어 담기지 못하는 생각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꾸준하겠노라 다짐한다. 마치 조금씩 자라는 근육처럼, 매일 써내려가다 보면 나의 생각도 노력으로 만들어진 알맞은 그릇에 담겨 내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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