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 May 23. 2021

두 번째 퇴사를 멈추기로 했습니다

무모함과 대담함 그 사이 어드매쯤 자리 잡았던 나의 두 번째 퇴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른 이유 하나도 없이 오직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냥 새로운 도전에 매진할 정도로 풍족하게 모아 두고 퇴사하지 않았거든요. 굳이 멈추는 대상을 ‘퇴사’에 한정지은 이유는, 다시 회사에 돌아간다고 해서 제가 퇴사하면서 결심한 것들까지 포기이자 실패로 정의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의 이력서는 더욱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받아줄 회사는 있겠지만,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는 아마 갈 수 없을 거예요. 이런 흐름을 예상하고 사표를 던지고 창업 길에 뛰어든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엉망진창이 될 이력서가 두렵진 않았습니다. 퇴사 이후만 걱정해도 모자랄 판에 퇴사 이후의 이후까지 생각할 정도로 멀리 보고 살고 있진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 자신의 이번 퇴사 이후를 높이 평가합니다. 셀프 칭찬이랄까요. 어차피 저 잘났다고 자신감을 갖고 우기면 어느 정도는 먹히는 세상인 것 같아 저도 조금 묻어가렵니다. 안정적이었던 퇴사 이전과 벼랑 끝의 지금을 굳이 비교해도 저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제가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에 돈 쓸 때 행복하고 어디에 돈 쓰면 아까운지, 그래서 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돈을 버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그럼 그중에서 나는 어떻게 돈을 벌고 싶은지 정말 그동안 많이 공부하고 고민하고 정의했거든요. 돈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그렇게 무시하고 미워했는데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은 돈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돈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했더니,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퇴사 전, 그러니까 회사와 커리어 같은 것들이 제가 가는 길의 전부였을 때, 저에게 돈은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주 5일 하루 8시간을 근무하고 매 달 25일 받는 것, 그래서 카드값 내고 공과금 내고 뭐하고 하면 남는 게 없으니 화가 나니까 내가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하고 하는데 쓰는 것, 같은 거였거든요. 돈이 뭔지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게 어려서부터 그다지 제 기억에 풍족했던 적은 언제부턴가에서 끊겨 있고, 우리 부모님에게 돈은 무섭고 나쁜 것 같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뭔가를 만들어 팔아보니, 돈은 내가 만드는 가치만큼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더라고요. 내가 버는 돈이 내가 세상에 내놓는 가치를 정의한다면, 나는 스스로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어야겠다, 라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거죠.


퇴사 이전에 마음먹었던 건, ‘회사를 나가서 내 힘으로 돈을 쓸어 모아 보자’였습니다. 솔직히. 가치고 뭐고. 나는 이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면서 누군가 나에게 주겠다고 정해놓은 월급 받으며 내 인생 더 이상 낭비할 수 없다, 기조였거든요.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쌓아놓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고, 장사치가 될 수 없으니(장사 폄하 아니고 당시의 생각을 말하는 겁니다) 좀 있어 보이는 걸 하자, 해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서 첫 펀딩에서 600%가 넘게 팔렸고, 정식으로 몰을 오픈해서 운영하는데 대기업 같은 데서 주문도 들어오고, 별 경험을 다해봤어요. 하지만 인생, 정말 나라고 뭐 별반 다를 거 없이 접어야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내가 만든 첫 번째 브랜드가 남의 손에 넘어갔어요. 물론 정당한 가치는 받았어요. 엑싯이라면 엑싯이랄까요. 하지만 어찌 됐건 처음 그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꿈꿨던 그림은 절대 아니죠. 그렇게 두 번째 퇴사의 이유가 끝난 거예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쯤’ 되면 돈이 들어오고 있겠지, 예상했던 그즈음에 수입이 하나도 생기지 않으면서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 싶어 유튜브에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영상이란 영상은 모조리 챙겨보고, 신사임당부터 허대리까지 온갖 책은 다 사다가 봤어요. 돈은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사람이 가장 많이 번다는데, 아마 슈카가 책을 냈다면 그 책도 사다 봤겠죠. 아무튼 그렇게 디깅(?)을 했는데, 제 길은 신사임당에게도, 허대리에게도 없었어요. 그들은 그저 그들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내놓아 돈과 교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거죠. 세상 사람 수만큼의 꿈이 있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 수만큼의 돈 버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게 제가 스스로에 대해 내린 결론은, 저는 평생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동안 일에 대해 스스로가 잘못 정의 내린 게, 나라는 사람에게 일이란 자아실현의 도구이고,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인데, 나는 떼돈을 벌어서 언젠가 일을 그만두고 자본소득으로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누려야겠다,라고 누군가의 돈을 버는 목적을 제 것으로 잘못 가져와버린 거죠. 나는 일을 할 거고 돈은 필요 없어! 가 아니에요. 무엇을 앞에 두느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하지만 명확하게 알게 된 거죠. 나는 결국 내 브랜드를 만들 것이고, 그 브랜드가 세상에 주는 가치만큼 돈을 벌고 싶다는 걸. 그런 큰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요. 친환경 사업을 하며 ‘환경’이라는 단어의 브랜딩이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경제적 자유’니, ‘N잡’이니, ‘월 1000’이니, 하는 것들이 대세인데, 결국 그렇게 돈 벌어서 그만두고 싶은 건 원하는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써야 하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갑질도 받아줘야 하는 ‘출근하는 삶’이 아닐까요. 내 ‘일’이 아니라요.


아무튼 이렇게 두 번째 퇴사를 마무리합니다. 내가 어느 곳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안 채로,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 사람인지 거의 내 안에 완성해둔 채로요.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달라진 게, 제가 사장이 되어보니 제가 월급으로 주는 돈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사람에게 응당한 것을 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저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돈을 받는 노동자가 아닌, 제가 받는 대가에 상응하는 가치를 만드는 노동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늦었지만,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던가 싶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게 근로가 됐든, 사업이 됐든, 뭐든지 간에요. 저 자신을 이렇게까지 알게 된 것만으로 이번 퇴사는 저에게 아주 큰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다시 출근 준비를 하러 갑니다.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자주 불안하고 괜찮지 않은 마음에 기대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