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새 페이지 다시 펼치기
언제부턴가 겨울이 좋아졌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도, 한 해가 시작되는 것도 좋다.
삶의 새로운 장을 펼치는 느낌이랄까.
지지부진 할 수 없었던 것들도, 중요하지만 놓치고 있던 것들도 어쩐지 새해를 맞아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워질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들이 삶에 종종 등장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 편이다.
굳이? 싶었던 것들도 틈타면 해볼 만한 것들.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미뤄왔었는데, 어쩐지 한 해가 다시 시작하는 김에 그래서 나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한 해는 또 어떻게 보내야 할 건지 등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삶의 큰 변화는 갑작스레, 어떤 큰 의미 없이 불쑥 찾아온다.
지난해가 유난히 그랬달까.
서로 결혼은 그닥 생각 없다며 연애를 시작한 사람과 어느새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내 전셋집 계약이 만료된다는 이유로 5년 간의 1인 가구 생활을 마치고 반려묘와 반려인이 함께 사는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생각보다 요리하는 걸 즐겨하고 꽤 맛도 낼 줄 아는 사람이었네?
집에서 꽤 멀끔하게 하고 있을 수 있는 건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저 사람한테 계속 잘 보이고 싶어서구나?
내가 성격이 생각보다 급한 편이고, 생각보다 깔끔 떠는 스타일이며, 그래서 가끔 좀 피곤하네?
등등.
이렇게 함께 사는 사람을 거울삼아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 내는 것도 지난해 처음 알게 된 소소한 재미였다. 혼자 사는 내가 더 근사한 줄 알았는데, 지금은 분명 누군가와 함께 사는 내 모습이 좋다.
한 해가 다시 시작된 김에 그간 정신없이 회사 밖 생활을 꾸려간다는 이유로 매일매일의 바쁨에 묻혀 잊고 있었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들을 다시 적어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서는 그게 정말 내 것인지 알 길이 없으므로.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쏟아내니 그럴듯한 계획이 완성됐다.
계획이 어려운 ENFP에게 이 정도 계획은 계획이라기보다는 거의 꿈리스트에 가깝긴 하지만, 결국 그것들을 한참 내려다보며 이미 이뤄진 것 마냥 즐거워졌다.
꿈은 선명하게 꾸라고 배웠으니까.
다름 아닌 꿈만이 이루어진다고, 작년에 읽은 책에서 마스다 아저씨가 한 이야기가 가슴 깊게 남아있으니까.
잠시 꿈꾸는 것조차 버거워지긴 했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훌훌 털어내고 새삼스럽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금 이 겨울, 새해의 계절, 1월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