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잔향

by 리솜


글이 써지지 않고, 그림조차 그려낼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미완의 문장, 그리고 마무리되지 않는 선과 면.


잃어버렸던 나와 닿는 건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아무리 기억의 뒤꽁무니를 좇아가봐도 하이얀 공백만을 맞이한다.

사라진 나, 들은. 어디에 있을까.




해리 현상.

과거의 나를 찾을 수가 없다.

어딘가로 모습을 감춘 너는, 이제와 지금의 나를 부르면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소리와 체취를 가졌다.


뒤늦게 좇아간 자리에

이미 너는, 다시 사라졌다.








이런 형태의 글은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고선 차마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을 듯해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남긴다.

누군가에겐 어쩌면 암호같을 지도 모르겠다.


해리 현상을 겪는 일이란 꽤 흔하다지만, 나처럼 지속적으로 관련 기억이 무너지는 일은 드문 듯하다.

그날 이후 2~3년간의 일부가 날아가있다. 성인이 된 뒤로도 그 일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순간엔 검은 선들이 나타나 그 장면을 꼭, 뒤덮고 말았다. 혹은 머릿속을 떠다니던 하얀 실뭉치가 이내 입을 막는다.


'사라진 나'들은 발견되지 않으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어딘가에 묻혀 내내 혼자일 텐데.

너에 대한 기억은 늘


이미 지나간 연기 같다.


잃어버린 나를, 언젠가는. 마주할 날이 올까.

손 끝에 닿은 연기를 문장으로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