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를
날것의 마음이 기록된 글입니다.
시간을 두고 여유로운 날에 읽어 주시기를 권합니다.
아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leesomstory/94
오늘만 쓸 수 있을 것 같은 글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퇴색되어, 하고 싶은 말을 뱉지 못할 것 같은 때. 오늘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를 쏟아내고 싶다.
시뻘건 핏덩이.
생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이다. 그날 끊어져 내린 기억은 몸으로 파고들었다. 생전 없던 생리통이 발현된 뒤로도, 몸이 하는 말을 알아듣게 되기까지 이십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살기 위해 스스로 분리시킨 과거의 나이지만 여전히 제대로 닿을 수 없다. 사라진 '나'들은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 잡힐 듯 달아난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그날 무너져 내렸다. '성'에 대한 인식이 올바르게 자리 잡아야 할 나이에 겪은 일은 몸의 일부를 부쉈다. 이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차마 복원될 수 없을 정도로. 비워진 자리는, 오늘도 공백이다.
슬픔이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지워진 너는 대체 어떤 감정이었을까.
조금 더 성숙해지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살아있지 않고 묻혀 있으니, 이미 죽은 걸까 넌. 이곳에 나는 존재하는데, 너는 없다. 심연의 끝에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저 엉겨 붙은 지 오래된 핏덩어리의 비릿함만이 코를 찔러 뇌로 들어온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채로 떠오르는 문장을 써 내려간다. 이것은 기록이자 일기이며 상처의 흔적이다.
월경일이 다가온다. 두렵다. 분명 또다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텐데. 무의식 중에 생리가 미뤄지는 건가.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시작하지 않는다.
울부짖는 몸을 외면할 수밖에 없던 대가가 지연된 고통이라면, 참으로 가혹하다. 어째서 깊은 곳에 심어진 상처는 화석처럼 굳은 채 움직이질 않는 걸까. 들어내기엔 그 무게가 참혹하게 무겁고, 외면하기엔 이미 네가 있는 곳으로 나는 기울어져 있다.
몸이 가라앉는다. 무언가가 나를, 끌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