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6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를 붙드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리솜 Mar 17. 2025
아래로


  "S님의 아픔이 사라지진 않더라도, 작아져 갈 수는 있을 거예요. 앞으로 S님 곁에 계속 함께해 줄 사람이 있잖아요. 결혼 축하해요."

  "작가님의 글에 봄이 오길 바랄게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앞으로 만날 때마다 안아줘야겠네."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면 되지."

  "괜찮아진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통증은 예고 없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니까. 상처란 원래 그런 거니까."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고 힘이 되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어."

  "사랑해."

   

  오랜 시간 무인도에 있었다. 상담을 시작한 지 5-6년쯤 되었을 때려나. 한 날 선생님은 처음 나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이야기해 주셨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섬에 혼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고.


  사람들에게 영향받는 게 싫었다.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관계는 유한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혹여 죽음으로서라도 결국 내 곁을 떠날 테고, 그러면 역시나 사무치게 외로워질 테니까.


  긴 시간 동안 모두에게 나는 '어쩐지 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게 좋았다. 그 누구와도 안전거리, 그러니까 이제와 다시 정의하자면 "그 사이를 가르는 거대한 벽"을 둬서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스스로 섬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애정하는 이가 머물다 사라져 버린 상흔이 생기느니 차라리 그 누구도 내 영역에 들이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는 고립이 되고, 외로움과 공허만 커져갔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던 결핍은 거대한 블랙홀로 자리잡아 점점 생의 에너지를 갉아먹었다. 어딘가 좀 이상해졌다고 느낄 무렵 상담을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지금의 연인, 머지않아 미래의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났다.


  쉽지 않은 관계였다. 삐걱이던 나를 온전하게 바라봐 준 사람. 세상을, 나를 향한 분노 혹은 자괴감을 애꿎은 그에게 풀어낼 때 그런 나를 가만히 봐주던 사람. 그러다가도 간혹 따끔하게 "그건 아니다."며 아프게 선을 그어줄 수도 있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내 존재를 항상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온기 가득한 사람. 어쩌면 나는 안정된 관계의 정의를 그로부터 새로 배우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와의 연애가 길어지고 상담을 병행해 가면서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드로잉 모임에서도, 불특정 다수인 독자들에게도 감정을 조금씩 내보일 줄 알게 되었다. 서툴게나마 상처를 얼기설기 드러내는 연습을 하게 되면서 내 삶에도 낯선 위로라는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온하고 침착해 보이던 나는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별 수 없이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무던한 가짜의 삶보단 진짜인 불편한 삶을 감당하는 게 한층 더 나다워 가뿐했다.

  단언컨대 내가 가벼워져 가는 이유는 마음에 박힌 거대한 돌덩이를 잘게 쪼개어 부시고, 조각난 칼날들을 감히 용기 내어 사람들 앞에 보이기 시작해서라 믿는다. 아직 혈흔이 어린 상처들은 때로 전이되어 벼린 비극을 부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간 그저 상흔으로서 삶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 그것만 해 보기로 한다. 경직되어 있던 몸이 감각을 되찾고 멎어 있던 숨이 차분히 돌아오기 시작하면, 실은 생각보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들이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를 인식하면 때로 사랑하는 이에게 짐이 되어버린 듯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역으로 사라지고 싶은 날도 이따금 오겠지만 이내 그로 인해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갖게 되리라. 여전히 무너짐과 회복을 반복하던 나는, 오늘도 나를 붙드는 말 덕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쓰지 않아도 존재하는 삶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