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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부터 사택까지, 타인과 어울려 사는 삶

by 김이소


20대때에는 인테리어 책들을 많이 사 모았다. 사촌언니는 인테리어는 트렌드가 자꾸 바뀌는 분야인데 이 분야의 책을 굳이 왜 사냐고 의아해했지만 나는 유독 나만의 공간, 방 꾸미기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 집에서 리모델링을 할 때에도, 남동생은 휘뚜루마뚜루 넘어갔지만 난 내 선택을 반영하곤 했다. 천장과 벽지, 포인트벽지, 장판도 스스로 다 선택했고(결국 장판은 세트여야 했기에 엄마에게 결정권이 넘어갔다…), 내 취향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행복을 누렸다.


문득, 나는 왜 이렇게 내 취향의 공간에 유독 집착하는 가 의문을 가졌고, 당시 짧은 고찰을 거친 결과, 20대 중후반까지 나는 오롯이 나의 공간을 갖지 못하고 떠돌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부모님을 떠나 성인으로서의 독립은 학교 기숙사가 시작이었다. 4인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내가 자유롭게 쓸 수있는 것은 이층침대 중 한 칸, 그리고 책상이었다.


나는 매번 윗층을 썼는데 처음에 눈치없이 일층에 자리잡았다가(당시 처음 기숙사 생활이기도 했고, 내가 두번째로 입실해서 나는 그냥 자연스레 일층에 내 짐을 풀었었다.) 한 학년 선배 언니가 하급생이 경우없이 아랫층 쓰는거 아니라고 면박을 주어서 윗층으로 올라갔었다. 처음엔 무슨 꼽을 저렇게 주나 불만이었고, 그녀는 군대 간 남친과 꼭 방에서 통화를 하며 둘 사이의 희노애락을 필터없이 공유했기에 돌아버릴 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의 도파민 추구기에 나름 기여한 사람이기도 해서 지금은 웃음만 나온다.


그리고 다음번 기숙사 입실때 아랫층에 자리잡았다가, 같은 침대를 쓰는 후배가 워낙 잠꼬대가 심해서 이러다가 침대가 무너질까봐, 압사당할까봐 무서워서 심심한 사과의 말과 함께 침대 위치를 바꾸자고 제안했고 후배는 흔쾌히 바꿔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층침대 윗층의 매니아가 되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게 처음엔 겁이 났지만 몇 번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척척 잘 밟고 오르내렸고, 당시엔 20대 초반 젊은 청춘이었기에 가능했지, 지금 하라고 하면 무릎이 시려오는 공감각적 고통이 전혀져서 거부하게 된다. 쓰면서도 세월의 무상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롯이 천막을 가린 침대만이 내가 안심하는 공간이었다. 다행히 룸메들도 크게 모난 사람들이 아니어서 서로 잘 배려하고 지냈고, 아예 안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았기에(주로 야간실험, 그리고 나이트와 클럽과 그외 음주가무를 즐기던…) 매번 4인실이 꽉꽉 차진 않았다.

나는 외박은 거의 안했기도 했고, 평소엔 늦어도 8-9시엔 입실하고 주로 교내 도서관만 전전했기에 주로 방을 지키는 건 내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만 있는 1인실도 아니고, 어쨌든 화장실과 주방과 세탁실을 누군가와 공유해야 했기에, 한참 쉬고만 싶거나 그럴 때에도 룸메들은 시시때때로 방을 오갔기에 편히 쉬는 느낌이 없었다.


그렇다고 왕복 너뎃시간을 투자해서 학교를 오갈 자신이 없었기에 기숙사에 있었어야 했다. 오묘한 불편함,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는 답답함으로 화가 쌓여갔지만 감내해야했고, 매번 방학을 기다렸다. 기숙사 생활은 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많았지만, 나는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기엔 그리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아니구나라고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사는 불편함을 한번 더 겪었어야 했는데 지방근무로 인해 사택에서 살아야 할 때였다. 내가 지내게 된 방은 거실 겸 방으로 쓰이는 공간이었고, 회사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니 괜찮을까?라고 생각했다.

허나 처음 사택 룸메들끼리 밥 먹는 자리에서 룸메1은 다음달 퇴사, 룸메 2는 세달정도 뒤 결혼해서 퇴사예정이었다….덕분에 나는 사람을 쫓아내는 기운이 있는거 아니냐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지만, 결국엔 얼떨결에 스쳐 지나간 룸메1과 룸메2를 보내고 소형 아파트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제는 진짜 혼자서 지낼수가 있었다! 하지만 자유도는 제한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구 좀 사고 꾸밀수도 있었는데 사회 초년생이라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고, 이상한 쪽으로 보수적인 면도 있어서 감히 회사에 “이 거지같은 옥색 가구들을 버리고, 내 취향의 가구로 채우고 싶소”라고 읍소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70년대 레트로 스타일의 옥색 식탁세트와 책상, 이상하게 쿰쿰한 냄새가 나는 옷장,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느껴지는 매트리스에서 퇴근 후와 주말을 보냈어야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이 집에 최대한 머물지 않으리라-



실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이 취향이 안 맞거나, 의자나 식탁이 거북목메이커거나 그러면 불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타인이 얘기하는 게 귀에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방청객처럼 듣고 마음속으로 잘잘못을 판정하기에 쉬이 산만해진다. 그래서 결국 커피만 마시고 핸드폰만 하다가 나오는데 굳이? 싶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를 가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사택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순환버스를 타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많은 카페와 상점들을 돌아다녔다. 어쨌든 늘 지내는 사택보다 예쁜 분위기의 공간이면 되었었다, 사택이 있는 곳은 지방이었고, 조금만 더 가면 광역시가 있었는데 제법 자주 광역시로도 나가곤 했다. 작은 여행들을 하면서 책을 읽고 수많은 물건과 인테리어, 풍경을 보면서 나만의 인테리어 인사이트를 만들었고, 때론 잡지나 출력물을 오려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곤 하였다. 핀터레스트가 나오기 전의 원시적인 방법인데 이렇게나마 해야 답답한 속이 풀렸다. 그때의 자료들은 현재 내 스타일과 달라서 과감히 버리긴 했지만, 내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공간 꾸미기에 관심이 있구나란 걸 떠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집이 아니기에, 정확히는 내가 지내기는 하지만 계약자가 내가 아니기에, 내가 원하는대로 꾸밀 수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답답함과 암담함으로 불만이 쌓여가고 언제쯤 완전한 독립을 하려나 싶은 한탄은, 그로부터 5-6년은 지난 낯선 곳 제주에서 시작을 결심하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


때로는 현재의 불만과 불편함이 미래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공간에 대한 갈망이 그러하였다.



-이번 지급임차료 편은 할 이야기가 많아서 1,2편으로 나뉘어질 예정입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늦었지만 즐겁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