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고 소중한 경차주행기
주변에 비해서 비교적 늦게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수도권에 사니깐 대중교통 잘 되어있고 운전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지방으로 취업하면서 매일 걸어서 왕복 40-50분은 걸리는 거리로 출퇴근했다. 길이 안전하고 깨끗한 길만 있는게 아니었고, 중간에 굴다리도 나오고 음침한 곳도 지나야해서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면 무서워서 덜덜 떨며 퇴근해야 할 때도 있었다.
아직은 사회초년생이라 돈이 없어서 부담되었고, 결혼하지 않는대신 차량대금을 달라는 반협박을 가해서, 그렇게 부모님 도움을 받아 작은 경차를 매매하였다.
그것이 나의 작고 소중한 첫 차였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도 나는 아직도 이 첫 차와 함께 다니고 있다.
운전 첫 해는 가관이었다. 빗길에 잘못 봐서 역주행을 할 뻔도 했고, 하이마트 기둥에 장렬하게 불쾌한 소리를 내며 차량 옆 면을 길게 긁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접촉사고도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때 현타가 온 것은 상대차량은 거의 멀쩡한데 내 차는 꽤 큰 부상을 입었다. 아무래도 경차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승용차나 suv에 비하면 타격이 컸다. 1-2년차 때에는 내가 운전을 하며 다닐 수 있을까란 걱정이 무럭무럭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경험의 문제였다. 점차 앞만 보고 핸들 윗부분만 잡고 거북목이 되어서 공포를 느끼며 운전하는
횟수가 들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날수록 자연스레 운전시야가 넓어졌고, 동네를 오고가며 오전 9시 전후는 출퇴근과 초중고등학생 통학차량으로 인해 붐비는 구간이 있다거나, 내가 사는 동네는 대략 퇴근차량이 언제 많으니 이때 외출은 피하자며 나름의 운전 루틴을 마련했다.
겁이 줄어드니 수도권 외곽도 용감하게 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고, 사촌언니가 마포에 살아서 미친척 운전대를 잡고 강변북로를 가면서 내 운전 프라이드는 급상승하였다. (비록 처음엔 마포를 가야 하는데 대교를 잘못 건너서 여의도를 찍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때 보이는 63빌딩은 내게 얼마나 혼란을 야기하던지…)
최대한 안전하고 조심스레 운전하되, 너무 긴장하지 말고 급하게 차를 틀거나 정지하지만 말자. 그렇게 나름의 규칙을 쌓고 뭐가 되든 차를 끌고 나가니 벌써 10년차 베테랑 운전자가 되었다. 나의 경차는 그렇게 수도권 외곽인 파주부터 대한민국 최남단에 가까운 제주까지 다녀온 영광스러운 주행기록이 있다. 비록 10년생에 5만킬로가 안되는 얌전한(?) 차량이어도 다녀온 곳들은 전국 방방곡곡이었다.
주로 내가 차를 갖고 가는 목적은 대다수가 마트쇼핑과 당근거래가 되었다. 왠만하면 핸드폰으로 주문하면 시간차이만 있을뿐 집앞까지 배달이 되는 세상이지만, 아직은 눈으로 보고사야 안심되는 경우도 있다. 한때 코스트코 멤버쉽 결제를 하고 냉동하고 소분해서 먹으면 되는거 아니냐는 기적의 합리화를 하며 50만원 어치의 물건을 싣고 온 적도 있었고, 제주시에서 서귀포시 국제학교단지까지 야자수 조명을 사러 갔다온 적도 있었다.
꽃 키우기가 취미일때는 한창 상토와 용토, 모종으로 차가 흙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고, 가끔 제주로 놀러온 친구들과 제주의 동서남북을 다니며 해안도로도 달리곤 했다. 특히나 내 차는 제주에서 활동을 많이 한 편이라 나는 친구들에게 꽃내음과 바다내음이 제일 진하게 밴 차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차를 타고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거나, 본가의 강아지를 놀이방에 등하원 시키는 등 점차 종족을 넘은 화합의 차량이 되어가고 있다. ( 엄마는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서 내 차를 탈 때 조심스러워 하지만, 결국 본가의 강아지 냄새가 더 많이 남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데려다줄 때도 많아지고 있기에…)
돌이켜보면, 차와 함께 만드는 추억도 켜켜이 쌓여갔고, 나도 나이가 드는 만큼 내 차도 점차 지쳐하는 게 보여서 내심 이별을 준비해야하는구나-센치해질 때도 있는 요즘이다.
비록 이 센치함이 처음 차를 살 때에 비해 반도체값 상승과 기타 물가상승으로 인해 차 값이 엄청나게 뛰었다는 지점도 기여했지만, 막상 내 작고 사랑스러운 이 차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만화 원피스에서 주인공 일행이 타고다닌 고잉메리호와 작별해야 할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나의 추억도 저물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무상함이 나를 무겁게 하는 걸 수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남은 기간 최대한 지하주차장에 세우며 아껴주고 중간중간 정비와 세차도 자주 해줘야지 맘을 먹게된다.
그러니 내 경차야, 비록 은퇴하고 싶을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힘내보자. 되도록 너를 다른 사람이 양도하는 게 아닌, 내가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으니까.
이왕이면 임종까지 널 보호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