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훈련비 01

모르는 건 수능때는 괜찮았어도, 직장에서는 안 된다.

by 김이소

오랜만에 갓생을 살게 되었다. 평일 저녁에 세무회계 직무관련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게으른 직장인이 모처럼 힘을 내 보았다.


다니게 된 이유는 업무적으로 느끼는 자괴감때문이었다. 사수가 있기도 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시기도 했지만, 결국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건 나의 몫이었고 인생은 실전이라고, 휘뚜루마뚜루 세무 사이클을 몇 번 돌리다보니 하면 할 수록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자괴감의 무게가 점점 거대해져 이대로 안주하다가는 도태되고, 심하면 짤릴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어서 내일배움카드를 탈탈 털어 국비학원에 등록했고, 현재 열심히 수강중이다.


업무능력이 부족해 한심하다고 우겨져서 펑펑 울다가 부은 눈으로 출근한 적도 제법 있었다. 허나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거울을 보며 셀프로 뺨을 촥촥 두드리며 정신차리라고 나 자신을 독려한다. 그리고 인터넷 강의나 학원 수강를 통해 공부를 하거나, 스터디나 뉴스레터 등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업무 경험치를 쌓는다-이것이 내가 직무와 관련된 우울함을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스앵님같은, 수능 컨설턴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버지 지인과 만난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인가, 어쨌든 당시로서는 꽤 신문물이었다.

컨설턴트 아저씨는 내게 꽤 많은 질문과 테스트를 하셨지만, 딱 하나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었다.


“이소는 친구들이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으면 기분이 어떠니?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니?”


나는 좋아하는 세계사나 근현대사 등 역사 과목이나 윤리 과목에서가 아니라면 성적이 별로 안 나와도 주눅이 들기는 커녕 별 생각이 없던 학생이었다.(당시 역사 오타쿠였고,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몰두하는 탓에, 다른 과목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비겁한 변명을 이곳에서도 늘어놓는다.)

그리고 성적이 잘 안 나왔다고 우는 학생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했다. 과정보단 결과를 우선시했고, 그로 인해 도출된 결론을 받아들어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쓰고 나니 그때는 학생이었다. 결론은 t라서 그렇다, 그런 수준이 아니고 그냥 공감능력이 부족한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했었다.


“친구들이 성적을 저보다 더 좋게 받은 것은 그만한 노력을 해서 얻은 결과라서 축하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가 아니라면 솔직히 잘 모르겠고, 성적이 잘 안나왔다고 우는 애들 보면 왜 저러나 한심하기도 해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저 대답이 가장 결정타였을거고, 결국 난 입시 컨설턴트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수능에는 욕심이 있고, 경쟁의식을 발휘해서 성취를 얻을 때 만족감이 있는 사람이 유리한 편인데, 난 선택적 성취를 즐겼고, 그것은 수능의 생태계에서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 뒤로 미성숙에서 비롯된 벌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능에서 엄청난 성취를 하지는 못했고 수리는 심지어 5등급이 나왔다. 담임은 내게 미대를 진학하냐고 했는데, 우습게도 미대는 아니지만 성적이 그리 되었다. 고등학생때는 역사 과목을 제외하고서는 1-2등급의 성적을 받아본 적이 드물었다.


그렇게 나는 보통 수능 끝~졸업식 즈음 붙는 명문대 진학 현황 현수막에 카운팅되지 않은 졸업생이 되었다.



다행히도 대학에서는 성적이 괜찮게 나온 편이었다. 좋아하는 역사 전공이었고, 스스로 자료를 찾아가며 도서관 책에 파묻혀 공부하는 것도 즐겼고, 고등학생때와 달리 비교적 과목 선택권이 주어져서 나름 좋아하는 공부를 취사선택해서 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수학은 쳐다보지 않아도 뭐라 하는 이들이 없었고, 강제로 들어야 했던 이과 관련 교양은 과학사로 대체할 수 있어서 이 또한 행복이었다. (그때 하필 담당교수님이 물리학 교수님이셔서, 평소 화학이나 지구과학쪽 수업을 하실때는 동태눈을 하시다가, 물리학자 파트가 되니깐 칠판 가득 엄청난 이론을 판서하시는데 맑은 눈의 광인이 뭔지 제대로 직관했던 것 같다.)


비록 4학년 1학기부터 취업준비를 하다보니 내가 공부했던 전공들로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지원이 쉽지 않았지만-당시 인문학부 전공자들은 대기업의 마케팅이나 경영지원에 지원하려면 경영학과 복수전공이 필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인문학부 내에서만 전공을 이수했다-그래도 대학 때 공부를 재밌게 즐겼나요? 라고 물어본다면 기꺼이 Yes라고 대답한다.


4년간 좋아하는 내용으로만 공부하느라 긍정적인 기운으로 충만되던 시절도 금방 지나가고, 곧 사회인이 되었다. 그땐 직장인이 되면 굳이 자기계발을 해야하나? 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그것은 엄청한 오해이며 오판이며, 무지였다.



살아남기위해, 남의 돈을 벌어 먹기위해선 얼마나 마음을 다스리며 인간관계도 조절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하는 건지, 만약 내 사업을 한다면 그 이상으로 시간과 돈과 기운을 투자해서 자기계발과 일에 몰두해야 하는 건지 어리석은 20대 청년은 인지하지 못 했다.

사회초년생 김이소는 그 후 드라마 미생을 ptsd라는 명목 아래 쉬이 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은 업무 지식과 경험의 부족이라는 원죄에서 비롯되었다.

“아무리 빨리 새벽을 맞아도 어김없이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나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 드라마 [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