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비

공과 사 사이, 관계에서의 가장 이질적인 비용

by 김이소

계절이 바뀌며 코가 근질근질하는 빈도가 늘어나며, 으레 이런 걱정이 든다. ‘아…환절기에는 경조사가 많은 편인데, 부디 적당히 소식이 들려오기를‘




내 바램과는 무색하게 이미 나는 며칠 전 친척 어르신의 장례를 마쳤다. 외할머니의 동생이 먼저 가셨고, 영정 앞에서 낯선 울림으로 꺽꺽 대며 “네가 먼저 가면 어떡해, 이놈아”라고 하는 걸 보니, 내 가슴에도 무거운 추가 짓눌러오는 것 같았다. 우리 외할머니도 배우자를 비롯해서 많은 친인척과 친구, 지인들을 먼저 보내셨을텐데도 인간의 죽음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아니, 못하는 영역의 문제같다. 하다못해 나의 가족이라니…매번 낯선 우울감과 상실감일 것이다.


더군다나 매번 하관하는 것만 보다가, 난생 처음으로 화장식 장례를 보았는데 관째로 들어갔다가 다 타버린 채 나온 형상을 보면 그 순간이 너무 짧고, 무상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화장터에서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더 거칠고 높게 울려퍼진 것 같았다. 감성적인 아버지가 본인의 장례때는 꼭 묻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 왜 그랬나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 친척 어르신 외에도 거래처의 경조사가 잦아져서 나는 요 며칠 화환과 조화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보통 경사는 예정되어 있지만 조사는 돌발상황이기에 저녁이나 밤에 갑자기 예약발송을 해야할 때도 발생한다. 개인적으로는 경사보단 조사가 더 신경을 쓰는 편이고,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이 대한민국에서 같은 얼을 공유한 경험이 있는 존재가 삶의 경계를 건너가시는 일이기에, 조화를 보낼때는 짧은 묵념을 하게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히 눈 감으시기를…




내가 생각하는 경사(보통은 결혼식)는 내가 내 자식을 이리 번듯하게 키웠으니 구경오라는, 마치 어미 해달이 아기 해달을 들어올리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물론 축하할 일이고, 나도 주변의 친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면 기꺼이 가기는 하지만, 되도록 주말 점심에, 이왕이면 우리집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원할한 곳이길 바라건만 거의 대부분은 강남이다. 유독 강남 알러지가 심한 나는 1년에 거의 2번+@로 강남에 출타하는데 제사때, 서울국제도서전때, 그리고 @는 결혼식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갈 사람들은 다 가버려서 @는 거의 없다시피해서 내심 좋아한다. 경사에는 보통 내가 아니라 신랑신부의 가족과 친인척 행사여서 나까지 굳이? 싶은 게 나의 거친 속마음이고, 한동안은 제주 거주와 코로나를 핑계로 불참 대신 마음과 축의금만 보냈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3년간 제주살이를 했었다. 이에 대해선 언젠간 다른 브런치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런 마음이 들게 된 것은 그다지 결혼에 관심없는 내 취향(?)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몇몇 친구들이 결혼식과 돌잔치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부르더니, 막상 내 조사에는 오지도 않고 그 외에도 이기심을 부린 사건사고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삶의 유형을 누리게 된 친구에게 안녕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지만, 굳이 내가 노력해서 만나야하나라는 마음까지 들지 않는 속좁음이 발휘되고 있다.



허나 조사는 다르다. 나는 아직 부모님상이나 형제상을 치르지는 않았으나, 내 주변 친한 친구들에겐 간혹 사례가 있었다. 그 슬픔을 차마 말로 풀어낼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감정일것이기에, 제주에서 당일치기로 오가는 한이 있더라도 갔었다. 돌아가신 분을 직접 애도하거나, 유족인 내 친척과 친구들을 위로하는 자리이기에 그곳이 어디든 최대한 참석했다.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하셨지만, 조금 이르게 먼저 가버린 내 큰아버지는 아직도 나의 마음의 짐이고, 비록 원치 않는 연민으로 나를 대하셨었지만, 그래도 내 다섯손가락 안 친분을 가진 친구의 아버지가 가셨을때는 친구의 슬픔을 나눠 들어주고 싶어서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다. 상주들은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고, 내게도 같은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오겠다고 말해주었다. 무척 든든한 일이지만, 되도록 많은 환절기가 지나가고 왔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램도 있다. 아직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최대한 많은 계절과 순간을 함께 하고 내 주변인들을 보내고 싶다. 아니면 내가 먼저 가는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먼 일이라서 아직 상상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단, 엄마가 당신의 장례식에선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틀어달라고 해서 그것만은 똑똑히 기억중이다. 동생에게도 이것은 다시 전달해야겠다.




벌써 이번주에만 5개의 경조사 화환을 결제했다. 2건의 축하와 3건의 애도였다. 나 자신에 대해선 아직 경조사가 0건이건만, 내 주변에선 많은 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거나, 떠나보내고 있다.


접대비는 흔히 거래처의 경조사나 식사자리때 쓰는 계정과목이다. 대부분의 계정과목들이 공적 영역에 적용되도록 제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접대비에는 공과 사의 영역이 같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비록 일로 만날지언정 감정이 있고 교류가 있기에, 서로 사용하는 비용에 공적 감정과 사적 감정이 들어가곤 한다. 여기에 경사는 축하의 마음을, 조사엔 위로의 마음이 반영되는데, 그래서 나는 접대비는 따뜻한 인간의 면모를 보이는 특이한 속성이라고 전산세무 자격증 공부를 할 때 메모했었다.


그러니 제발….지나친 탐욕과 어긋난 욕망으로 쓰여진 돈으로 접대비의 의도를 퇴색하지 않고, 인간 본연의 다정함으로만 채워지길 바라는 나의 간절한 욕심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