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의 지옥같은 서울 출퇴근기
새벽 3시 반-아침 6시반, 이 사이가 내가 서울에 근무지가 정해지면 일어나야하는 기상시간이었다.
벌써 10여년전 일이지만 내게도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하는 시절이 있었다. 가야하는 곳들은 광화문역, 안국역, 공덕역, 양재역, 때로는 삼성역과 구파발역도 있었다.
어떤 일은 새벽 6시부터 시작이어서 새벽 3시반부터 준비해서 내가 깨어있는건가 인식도 못한채 그저 관성대로 움직여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 적도 있었고, 어떤때는 6시반에 일어나 짧은 단장을 마치고 바로 나와서 우두커니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줄 맨 뒤에 서서,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눈을 감고 알람시간을 오전 8시로 맞추었다. 그러면 얼추 그 시간에 도착하기 마련이었고, 나는 내려서 회사로 가면 되는 일상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본 결과, 강남구와 서초구는 버스를 타면 어떤 사건사고가 벌어질 지 모르기에(보통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에서 사고가 나면 진짜 답이 없다. 예전에 한번 저녁약속때 강변북로 정체로 인해 평소 30분이면 갈 거리가 1시간도 넘게 막히는 바람에, 망원 인근에서 임시 하차하여 낯선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지하철을 타는 게 무난하고, 마포구와 종로구는 시간만 잘 계산하면 버스를 타도 괜찮았다.
지하철은 간혹 앉아갈 수 있고, 시간도 정확한 편이 장점이지만, 때때로 수도권 출퇴근시의 다사다난한 사고는 거의 다 지하철에 이뤄져서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 출퇴근 수단이었다. 예를 들자면 경의선의 금동대향로 할아버지와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혈투, 등산 갈 체력은 되면서 내 무릎을 자신의 무릎으로 찍으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요즘 젊은 세대(절대 남자한테는 하지 않는다, 대부분 젊고 만만해 보이는 여자한테 으레 시전한다.)에 대해 한탄하며 물리적 시비를 시전하는 중년 등산러, 만지고 싶다며 침흘리며 다가오는 정신이상자 등…
이 글을 쓰면서 ptsd때문에 5분정도 심호흡을 해야 할정도로 별 거지같은 사항들은 다 지하철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지하철을 타면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시선은 아래로 고정하고, 타자마자 내가 탄 차량의 정보와 서울메트로 신고번호를 파악하는 게 출퇴근길 루트였다. 여러모로 웃픈 상황들이 많았다.
버스는 이런 사건사고가 적은 편이었고,(아주 없는건 아니었다. 성추행이 발생하여 승객 한 분이 도움을 요청하셨고 이때 나와 몇몇 분이 경찰서에 사건 당사자들을 인도하고 집에 귀가한 적도 있었다…)목적지에 따라 매우 편하게 내릴수도 있었으나 간혹 발생하는 차멀미와 교통체증으로 출근시간에 못 맞추면 어쩌나하는 불안감, 그리고 약 10만원에 달하는 왕복 교통비의 부담이 공존했다. 인생에 있어 어느 선택이건 장점이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절실하게 느낀 항목 중 하나가 내게는 여비교통비였다.
어느 일하는 사람에게 출퇴근이 좋기만 하겠는가. 특히 서울로 출퇴근을 하다보면 이게 사람 사는 게 맞는지, 내 인권은 보장이 되긴 하는건지, 이 좁은 땅덩이에 천만인구가 모여 산다는 게 옳은 것인지, 지방의 산업과 일자리가 적절히 배치되어서 이 문제를 정녕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 머릿속 철학자가 바쁘게 공장을 돌려봐도 어쨌든 나는, 많은 사람들은 서울로 일하러 가야한다. 지금 이 순간 현실에 순응하기 위해 별별 시도를 해보았다.
법륜스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인생만사 결국 공허하니 내 문제는 작디 작구나(연관 컨텐츠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는 그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문구이다)라고 깨닫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들으며 눈은 멀쩡해도 입 안에는 폭소대잔치가 벌어져 이를 막으려는 입가 근육과의 사투를 벌이기도 했고, 가벼운 책을 읽으며 그 시절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긍정적인 감정은 오래 곱씹어보고자 했다.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이 전부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구축한 중요한 토양이었음은 분명하다.
덕분에 지금도 나는 널뛰는 감정을 다스려야 하거나, 막막한 불안감에 사로잡히면 책에서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때의 고민을 바로 해결해주는 맞춤해결방식은 당연히 없어도, 책을 읽고 때때로 필사한 메모에서 해결의 방향성은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출퇴근 경험이 없다면 구축될 수 없었던 좋은 루틴이기도 했다.
만약 운 좋게도 앉아 갈만한 출퇴근길이라면 팟캐스트를 듣거나 책을 읽는것도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근데 ‘보통의’ 시간대에 2호선, 9호선(특히 급행), 김포골드라인, 경의중앙선을 타야 하는 분들께는…이런 말을 꺼낸다는 게 우선 죄송해진다. 감히 떠 가야 하는, 그리고 숨쉬는 것조차 여의치 않는데 무슨 출퇴근길 루틴을 만들어보란 말인가, 그야말로 기만이지.
결국엔 모든 출퇴근러가 무사히 회사에 가고, 집에 귀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보낸 하루임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기억하는 버스비는 1,500원이었으나 어느샌가 2,800원으로 오른 광역버스비를 보며 물가상승률과 세월의 무상함을 동시에 느낀다. 한편으로는 그 사이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싶다가도, 정신적 성숙함의
차원에서는 별반 차이없는 것을 보면 뭐가 자란건가, 결국 옆으로 자란 것밖에 없는지 실소가 나올때도 있다.
그러나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느낀 희노애락은 단순히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닌, 치사하고 더러워도 돈을 벌어야 생활유지가 되기에 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가도 하다.
그 부산물을 예전에는 어떻게든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심한 악취가 나거나 심히 모나게 자라면 어느정도 정돈은 할지언정 부정하지 않고 안고 가고자 한다.
-이 또한 내가 걸어온 길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