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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Nov 23. 2020

그가 나에게 왔다.

불안형/회피형 인간을 변화시킨 사람

지금 나의 짝을 만난 건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진부한 수식어가 진심으로 와 닿을 만큼 감사한 일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보상이라면 나라를 열 번쯤 구한 게 아닐까 싶다.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에 와서 만난 이 사람이 내 운명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누군가를 믿고 마음을 열기가 어찌나 어려운 일 인지 누구나 알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사귀게 되면 한편으로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헤어질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셈이었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항상 겉옷을 입고 등에는 책가방을 짊어진 채 수업을 듣는 것 마냥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뒀다. 내 마음에도 겉 옷을 입혀두고 풀지 못한 짐보따리를 가슴 한 구석에 늘 싸 뒀다. 진심을 다해 사랑했을 때 받을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심이 아니면 상대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손해 보는 장사는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적당히 내 마음에 울타리를 쳤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변명하니 부끄러운 내 연애사를 들추지 않을 수가 없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스무 살만 되면 연애를 하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심지어 대학교도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 덕분에,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난 대학생활은 광활한 평야 같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엠티며 동아리며 놀 수 있는 곳은 빠지지 않고 따라갔고, 그동안 꿈꾸던 연애도 시작했다. 나도 그도 처음이었던 우리의 연애는 서툴고 풋내 나는 첫사랑이었다. 나는 내 모든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고, 그 역시 내가 끝사랑일 것 같이 우리는 열렬히 사랑했다. 나보다 한 학년 선배였던 그가 졸업을 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오랫동안 한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 대학생활은 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세상을 가득 채웠던 그 선배를 많이 사랑했었지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을 만큼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뜨겁게 사랑했던 마음이 식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두 번째 남자 친구를 만나기 시작했다. 첫 연애보다 몸을 사렸다. 고시생에게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하면서도 소개팅은 나갔다. 연애를 시작할 생각은 없었지만 오래간만에 기분 전환이나 하자며 한껏 꾸미고 나갔다가 그와의 대화에 홀딱 빠져서 돌아왔다. 세 번째 만남에 그는 내 얼굴을 당겨 뽀뽀했고 나는 그 게 드라마 같다고 생각하며 분위기에 취해 연애를 시작했다. 되돌아보자니 부끄러운 과거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독서실에 처박혀 책들과 씨름하는 우중충한 시간과 달리 연애를 하는 시간만큼은 달콤하고 재밌었다. 연애는 슬금슬금 현실 도피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 달뜬 시간들이 지나고 익숙함에 물들어 갔다.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났고 사랑이 식을까 봐 불안해져 갔다. 그가 바람을 피워도 내 탓인 것만 같았고 다시 잘해보자며 그를 잡았다. 결국 시험만 붙으면 이 것도 저 것도 하자던 그에게 약속한 답은커녕 헤어지자는 편지를 남기고 나는 도망쳤다. 어쩌면 그도 홀가분함을 느꼈을 것이라며 더 우울해했다. 헤어진 뒤 나는 하림의 '사랑은 사랑으로 잊히네'를 수없이 들었고, 노래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그전에 만났던 사람을 잊었다.


이별은 슬펐어도 여전히 나는 연애가 재미있었다. 사귀기 전의 오묘한 눈짓을 주고받는 일이 너무나 짜릿했고 여러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일은 너무나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남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다'라는 값싼 농담을 하는 남자를 향해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었다. 새로운 남자는 신선한 즐거움이었고 이십 대의 나는 경제적 여유는 없을지언정 시간적 여유가 넘쳐 났던 터라 연애는 꽤 재미있는 취미였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연애를 할 금전적 여유까지 생겼다. 연애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소모품 같은 연애를 해댔다.


소개팅을 꽤 재미있어했는데 어느 시점이 되니 그것도 시들해졌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사람을 만날 만남의 장도 마땅찮았다. 괜찮은 남자들은 어쩜 그렇게 다들 짝이 있는 건지. 결혼 적령기에 가까워지면서 어쩐지 시한부를 선고받은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결혼의 제도적 한계가 있다 해도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다. 결혼한 사람의 묘한 안정감이 내심 부러웠다. 나는 정말 '괜찮은 남자'가 필요했다. 나와 쿵짝이 맞아 지지고 볶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드라마 '시그널'처럼 전파를 보낼 수 있다면 제발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고독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형체도 없는 불안감에 쫓겨 누군가를 만나봤자 불안을 키울 뿐이라고.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연애는 놓을 수가 없었다. 진득하게 한 사람이랑 만나지도 못하면서 왜 그토록 연애를 갈구했는지 의문이다. 나의 내면을 스스로 채울 생각은 않고 나를 채워줄 사람을 찾아 헤맨 것 아닐까? 조금씩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짓이었다. 초기의 열정이 사라지면 시들해질까 불안해했다. 상대에게 잘하려고 안쓰럽게도 애를 썼다. '이 얘길 하면 싸울까?', '내 마음을 털어놓으면 피곤해하려나?', '나에 대한 애정이 식으면 어쩌지?' 따위의 걱정을 해댔다. 상대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동물적 감각 같은 것이다. 그 관계에서 '이 사람이 나에게 안절부절못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챈 사람이 관계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상대가 못된 거라기보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함에서 온 문제였다.


일그러진 연애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내 속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다. 연애라는 건 처음엔 남자가 더 좋아하지만 여자가 더 좋아하게 되는 순간 지는 게임이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고, 남자가 기대할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걸 쏟아붓는 연애는 어릴 때나 가능한 거라며 멋 모를 때 하는 부족한 연애라고 치부했다. 나는 점점 내 속내를 남자 친구에게 털어놓는 게 부담스러워졌고 내 생각을 얘기하지 않는 게 익숙해져 갔다. 문제를 끄집어 내 시끄럽게 만드느니 조용히 내 선에서 덮어버리는 편이 쉽고 편하다는 생각에서 그냥 넘어가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때마다 서로 좀 더 알아가자고 둘러댔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하는 결혼이 너무 싫었다. 이 사람과 평생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 데 결혼하자는 남자 친구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마침 한국을 떠날 기회가 생겼다. 기다리겠다는 그에게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그는 세 달만에 새로운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 여자가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곳이 좋았다. 한국보다 느긋한 분위기도 따뜻한 날씨도 좋았다. 이 곳에 좀 더 머무르고 싶어서 계획에 없던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실습을 하고 오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수업을 듣는 와중에 연애를 시작했다. 참 나답다 싶었다.


그는 연애가 서툰 사람이었다. 첫 데이트에 느닷없이 동전 마술을 보여줬다. 카드 마술도 할 줄 안다며 다음에 만날 때 보여주겠다고 했다.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뽐내거나 본인이 준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저녁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는 게 좋다며 매 번 나를 데리러 왔다. 처음에는 몇 번 오고 말겠지 라고 생각했다. 나를 데리러 오다가 언젠가 오지 않게 되면 서운해질 것 같았다. 꼭 그게 그의 식어가는 마음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것 같았다. 고맙지만 안 와도 괜찮다고 말렸다. 그는 싱글거리며 '날 위해 하는 일이야'라며 학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일 년 반을 꼬박 채우고 나는 졸업을 했다. 마지막 수업을 하고 집에 가는 날 그에게 매번 데리러 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변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곳에 좀 더 오래 머물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연애는 아무리 해도 어려운 일이다. 같은 상황인가 싶다가도 다른 결말이 난다. 상대가 다르니 반응도 다르다. 난 연애를 잘하고 싶어 했지만 관계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잔머리만 늘어난 늙은이 같았다. 나는 다 알고 그는 다 모른다고, 어린애 같다고 착각했다. 오산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법을 배웠다. 내 말버릇이나 생각의 흐름이 어딘가 꼬여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내가 말할 때 'passive aggressive'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동적 공격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었지만 안 좋은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꼬는 말이나 빙빙 돌려 불만을 표현하는 걸 얘기하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무지 어려웠다. 문제가 생기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입을 닫기 일쑤였다. 그는 그냥 말해달라며 답답해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또 습관적 불안감이 엄습해오곤 했다.


말하기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듣는 것도 어딘가 숨겨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곧이곧대로 듣질 못했다. 화용론적 해석에 민감했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상황적, 맥락적 해석을 하느라 문장의 의미를 과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 춥지 않니?'라는 말이 '문 닫아줄래.'라는 말이 되는 한국어에 익숙했던 것일까? 그가 하는 말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살폈다.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설명했다. '내가 하는 말은 문자 그대로야. 춥다고 말하는 건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거고 문 닫는 거랑은 상관없어. 네가 문을 닫아주길 바랐다면 나는 너에게 문 닫아 줄 수 있냐고 물어볼 거야.' 그는 사랑 표현 방식만큼이나 사고방식도 직진인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와 이야기를 하다 울음이 터진 적이 있다. 뭔가 내 속에서 불편함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함에 터진 눈물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그는 "천천히 얘기해. 나 여기 있어." 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나는 꾸역꾸역 단어들을 뱉어냈다. 심장이 짜르르하고 몸이 가벼워지는 경험이었다.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는 항상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를 기다리게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몇 년의 훈련(?)을 통해 지금은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비교적 잘 꺼내놓는다. 하루아침에 생긴 변화가 아니기에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변화를 깨닫는다.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은 나의 일등 트레이너, 그에게 가장 감사하다.


그동안 참 많이도 밀어냈다. '나는 네가 가라고 할 때 마음이 너무 아파.' 라던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고홈(Go home)'을 외친 수만큼 그에게 상처를 준 셈이니까. 같은 공간에 사는 지금 더 이상 '고홈'을 외칠 수가 없지만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너네 부모님 댁에 좀 가있다 오면 안 돼?'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문제 회피가 가장 먼저 방어기제로 발동되는 나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내뱉는 대신 그와 대화를 시작하는 나를 보며, 그와 함께라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가 화장을 지우고 나온 나를 보면서 두꺼운 안경이 나를  'nerdy(공부만 하고 멍청한?)'하게 만든다고 놀려도 함께 낄낄대며 웃는다. 속상했던 일도 대화로 풀어나갈 줄 안다. 관계에 있어 갈등은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계를 견고히 해준다는 것을 배웠다. 느닷없이 나를 보면서 '와, 너무 이뻐.' 하고 감탄하는 그가 그 말에 진심을 담았음을 알기에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사랑을 경험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기심에서 안정감으로 형태가 바뀔 뿐이다. 건강한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나에게 큰 행복감을 주었다. 나는 더 이상 우리의 관계가 불안하지 않다. 우리의 관계는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처럼 점점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한국을 떠나서 홀가분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여느 여행지가 그렇듯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자유는 내가 안 하던 행동을 하는 대범함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그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그를 만난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나를 그와 만나게 하기 위해 신이 나를 이 곳으로 보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되었든 감사한 일이다.  


교보문고 글판에 소개된 '방문객'


광화문 교보문고에 붙이던 시가 떠오른다. 그가 내 인생에 들어온 것처럼 나도 그의 인생에 들어간 것이다. 연애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었다. 절대로 취미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만날 준비가 안 된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진실로 내뱉었을 리가 없다. 철없던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준 그에게 오늘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토마토 파스타라도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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