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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Dec 13. 2020

젓갈 없이도 맛있는 김치

내가 김치를 담그다니!

해외여행을 갈 때, 김치나 고추장을 준비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어디를 가든 잘 먹고 잘 있다 온다. 대체로 아무거나 잘 먹는 터라 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음식에 대한 문제는 딱히 없었다. 자취하던 경험 덕분에 요리하는 것이 익숙했었고, 요리를 한 덕분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먹었다. 그래서 음식에 대한 결핍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이 년 반 정도 지났을 때,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따듯한 국에 작은 반찬들을 겸해 먹는 밥상이 주는 따스함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느낌이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쌈밥이나 길거리 붕어빵 같은 음식들이 그리워졌다. 어느 날, 갑자기 추운 겨울날 먹던 살 얼음 동동 뜬 김치말이 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걸 해 먹으려면 김치가 필요한데, 시중에 파는 김치에는 젓갈이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김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는 김치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요리 선생님, 백종원 님의 동영상을 틀어 두고 먼저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웠다. 백종원 선생님은 재료 손질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것도 좋지만, '대충 해도 된다'라고 해주셔서 마음에 부담이 없다. 보통 김장을 한다고 하면 수십 포기의 배추를 쌓아두고 한가득 쟁여놓을 김치를 만들지만, 나는 중국 마트에서 사 온 배추(Napa Cabbage)를 한 포기 사용했다. 그 정도면 실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김칫소에 넣을 무(Daikon)도 샀다. 찹쌸풀을 쒀야 하는데 찹쌀가루를 못 찾아서 대신 밥 한 숟갈을 넣고 믹서기에 갈았다. 선생님은 '슈가 보이' 명성대로 설탕을 넣으셨는데 나는 설탕 대신 단맛을 위한 양파와 배를 넣었다. 최대한 비슷한 것들로 재료를 골라 절이고 무쳤다. 선생님은 해외에 사는 팀원은 젓갈 대신 피시 소스를 사다가 넣으면 된다고 가르쳐주셨지만 나는 채식 김치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젓갈 대신 소금을 약간 더 넣었다. 정말 '야매 로운' 김치 만들기였다. 내 마음대로 레시피를 조절했지만, 사실 마늘과 생강만 갈아도 김치 냄새가 그럴싸하게 났다. 그렇게 무친 김치를 실온에 두고 사흘을 기다렸다. 중간에 뚜껑을 몇 번씩 열어보고 맛보며, 익으면 맛이 있을지 걱정도 하면서 기다렸다. 그렇게 완성된 김치는 눈 깜짝할 새에 내 뱃속으로 사라졌다. 만들기는 엄청 귀찮은데 너무 맛있어서 자꾸 해 먹게 된다.



내가 김치를 만들었다고 부모님께 사진을 보내면, 김치를 다 만들 줄 안다며 기특해하신다. 김치 만드는 걸로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은 부모님 뿐일 거다. 여러 번 하다 보니 나름 손에 익어서 남자 친구 부모님께도 갖다 드릴만큼 여유가 생겼다. 아버지 입맛에 맞으셨는지 다 드셨다고 전해 들었을 때 어쩐지 뿌듯함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백김치도 만들어보았는데 남자 친구가 자긴 '빨간 김치'가 더 좋다고 해서 요샌 빨간 배추김치만 만들고 있다. 무청을 넣어도 좋다는 걸 듣고 중국 마트에 있는 청경채(Bok Choy)나 유채(Yu Choy)도 무청 대신 같이 넣어서 만들었는데 색감도 예쁘고 맛도 좋다. 과일도 처음엔 배만 넣다가 사과를 넣어보니 신 맛이 강해서 그런지 더 빨리 익는 것 같아서 요샌 배 대신 사과만 갈아 넣고 있다. 깔끔한 김치 맛이 정말이지 '취향저격'이다.  


국물 많은 김치를 담가서 김치말이 국수를 해먹을 때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김치를 잘게 썰어 국물과 함께 그릇에 넣고 간장, 식초, 설탕, 참기름으로 맛을 낸 뒤 국수랑 오이 고명을 얹어 먹으면 된다. 집에서 말아먹던 그 맛이랑 얼추 비슷하다. 김치로 국수도 말아먹고 김치볶음밥에 김치전까지 만들어 먹는 나를 보며, 남자 친구는 한국인들이 왜 김치를 수십 포기씩 담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괜히 한국 음식을 알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도 그런가 보다. 다음은 무슨 음식을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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