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에 온지 20일, 다시 브런치

글을 쓴다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수도.

by SWAN PD

내 인생에 센 폭풍이 하나 지나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먹구름과 비바람, 천둥, 번개의 소용돌이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는 안도의 숨을 쉬며 글을 쓴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시간이었는지...’


지난 10월 30일 용인에서 진천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고3 때부터 줄곳 떨어져 지내던 가족과 거의 40년 만에 동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전우애로 똘똘 뭉친 하나 뿐인 짝꿍이 가족 돌봄으로 먼 진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혼자 생활을 하게 된 마크까지. 지금도 예측불허 인생 3막 첫 장을 용감하게 함께 써내려 가고 있다.


인생 1막은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지내던 시절,

인생 2막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시절,

인생 3막은 다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절로 정했다.


내가 그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독립출판을 하고 싶어 출판사를 차리고, 남미를 다녀 오고, 첫 책을 내고 했을 때 상상했던 인생 2막은 막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은퇴 후 펼쳐지는 어떤 삶이겠거니 생각했다.

어쩌면 어린 아이들이 꾸는 한바탕 꿈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다시 선언한 인생 3막은 그냥 현실이다.

미래를 상상할 시간도 없고, 현재에 머물 시간도 없고, 지나 보면 이미 과거가 되어 있는 빠듯한 ‘현실’이다.


며칠 전부터 엄마의 양쪽 발이 퉁퉁 부었는데 무엇이 원인인지 잘 몰라 일단 골다공증과 하지정맥류 진료를 같이 받으면서 의사 선생님께 상의를 드려보면 좋겠다 싶어 오늘 급히 진천읍에 있는 병원엘 다녀왔다.

다행히 정맥이 막히거나 염증이 심하거나 그런 위험한 상태는 아니니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회복이 잘 되는지 지켜 보자고 시원스럽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 곳의 의사 선생님들은 나이도 좀 지긋해 보이시고, 연륜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하도 많은 환자 분들을 봐 오신 때문인지 뭐든 간단명료한 느낌이다.

엄마도 나도 논리정연하고, 확신에 찬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왠지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다들 이제 시작이라고들 한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문제에 부딪히고, 부딪힌 문제를 찬찬히 풀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돌봄’이라는 큰 산도 어렵지 않게 넘어설 수 있을거야. 의사 선생님이 들려주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듯 편안한 말이 내게로 옮겨 온 듯한 느낌이었다.


동생이 오늘 쓴 일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참 좋았다.

언니는 아빠에게나 엄마에게나
스케치처럼 덤덤하고 담담하게 그려가는 붓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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