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날

은박지는 버렸는데 그 마음은 아직-

by 이쑤

엄마는 항상 바빴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기색은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게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꼭 돌아오던 소풍날이었다.

새벽부터 나가야 했던 엄마는 도시락을 쌀 시간이 없었다.


소풍날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 식탁 위에는 몇천 원과 메모 한 장뿐.

‘가는 길에 김밥 사서 가.’


친구들은 몇 층으로 된 커다란 도시락을 들고 왔다.

김밥은 기본이었고, 소시지는 활짝 피어 있었으며

누군가는 유부초밥을 싸 왔다.

그냥 유부초밥도 맛있는데,

엄마가 잘게 다진 소고기와 채소를 넣어 만든 유부초밥이라니.

그건 정말, 부러웠다.


은박지에 둘러싸인 김밥을 그대로 들고 가는 게 왠지 창피해서 아침 일찍 문을 연 김밥천국에 들렀다.

김밥을 급히 사서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던 도시락 통에 옮겨 담았다.


아무리 이리저리 굴려 놓아도 김밥은 도시락에 잘 맞지 않았고, 유난히 휑해 보였다.

소시지를 구울 줄 몰라 천하장사 소시지를 잘라 도시락 귀퉁이에 넣었다.


소풍날 점심시간.

들뜬 목소리와 음식 냄새가 순식간에 퍼졌다.

알고 보니 친구들의 두툼했던 가방 안에는

김밥이며 간식이며 먹을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도시락 뚜껑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우와—”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차례가 되어 단촐하고 납작한 도시락을 꺼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무슨 이런 소시지를 엄마가 도시락에 싸 줘?”


‘아, 제발 모른 척해.너 안 줄 거고, 너 거 안 먹을 테니까 제발 보지 마.‘


다들 내 도시락엔 큰 관심도 기대도 없었지만

눈빛으로는 알 것 같았다. 아, 김밥을 사서 왔구나, 하고.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하나둘 나왔는데

나만 김밥천국 젓가락이었다.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제발, 점심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친구도 정말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군것질로 먹는 소시지를 엄마가 도시락에 넣어 줬다는 게 그저 의아했을 뿐이었다.


학창 시절의 소풍날은 괴롭기만 했지만

조금 더 커서는

“그땐 그랬지”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날의 무겁고 어두웠던 창피한 마음은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있다.


아주 깊이, 깊이 파였던 모양이다.


그 골짜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나는 또다시 내려갔고,

다시 올라오는 이 가파름은

여전히 너무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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