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럭셔리’의 재해석, 예술은 어디로 가는가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Art of Luxury》 전시는 럭셔리라는 개념의 본질을 예술을 통해 재조명하고자 한 시도다. 조선시대 백자부터 동시대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까지 폭넓은 시대적 스펙트럼을 아우르며, 전시는 '럭셔리'의 의미가 단순한 사치품 이상의 것임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단순한 예술 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뷰티 플랫폼 ‘R.LUX’와의 협업을 통해 감각적 경험과 상업적 기획이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 소비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관람자로서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섹션은 'Spiritual Luxury'였다. 여기서 전시는 "오늘날 시간, 경험, 지식, 자유와 같은 개념은 럭셔리의 비물질적인 속성과 연결된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물질적 사치를 넘어선 내면의 가치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절제된 색채와 섬세한 질감을 지닌 작품들은 관객을 차분하게 멈춰 세우며 묵상의 시간을 제공했다. 단순히 '비싼 것'이 아닌, 삶에서 얻기 어려운 감정이나 시간, 정신의 여유 같은 가치들이야말로 오늘날의 진정한 럭셔리라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 섹션에서 특히 곽인식의 연속된 타원형 묵작업과 도상봉의 <국화>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곽인식은 서양 중심 미술계의 조류에서 벗어나 한국적 정체성과 물질의 본질을 탐구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일본 화지 위에 반복된 타원형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탐색했다.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내면을 응시하는 창(窓)이었고, 형식적 실험과 정신적 사유를 결합한 정제된 예술 언어였다.
도상봉은 '도자기의 샘'을 뜻하는 '도천'이라는 호처럼 조선 백자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 <국화>는 백자 항아리와 만개한 꽃이라는 전통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한국적 미감을 고스란히 구현한다. 소박하지만 정결하고, 절제 속에 서린 우아함은 그의 예술 철학을 대변한다. 꾸밈없는 아름다움, 기본에 충실한 조형미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럭셔리'의 본질이 아닐까.
이 전시는 미디어아트, 향기, 조명 등을 결합한 몰입형 공간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전시 방식에서 벗어난 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알럭스가 기획한 'Inspiring Luxury' 섹션에서는 히노키 향이 공간을 채우고, 디지털 콘텐츠가 감각적 몰입을 유도했다. 뷰티 브랜드와의 협업은 럭셔리를 '소비하는 감각'으로 경험하게 했고, 전시는 마치 백화점 내 팝업 전시와 유사한 감흥을 주기도 했다. 관객 입장에서 이는 신선한 접근이자, 동시에 혼란스러운 지점이기도 했다.
서울미술관은 유니온그룹 안병광 회장이 설립한 개인 미술관으로, 그 설립 취지에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미술관"이라는 문구가 강조되어 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 평등한 감상의 장으로서의 이상은 미술관의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Art of Luxury》는 그 공공성과 평등성의 이상과는 사뭇 다른 지향을 보여준다. 알럭스라는 뷰티 플랫폼과 협업한 전시는 럭셔리 소비문화와 예술 감상의 경계를 흐리며, 작품이 소비의 경험으로 전환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물론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은 전시의 대중적 호소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예술과 상업, 공공성과 독점성이라는 본질적 긴장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예술이 사치가 되는 순간, 그것은 모두에게 평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 전시를 둘러싼 근본적 문제의식이다.
《Art of Luxury》는 예술과 소비, 감상과 마케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곽인식과 도상봉의 작품처럼 진중한 사유를 담은 작업들이 빛을 발했으며, '럭셔리'가 단지 가격이 아닌 정신적 밀도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전시가 제안한 패러다임—예술과 뷰티 브랜드의 협업을 통한 감각적 경험—이 서울미술관이 추구해온 공공적 예술관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미술관'이란 구호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예술 소비가 아니라 예술 참여로 확장되는 기획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Art of Luxury》는 분명 새롭고 도전적인 전시였다. 하지만 그 도전이 예술의 본질에 가까워졌는지, 아니면 소비의 신세계로 기운 것인지는 각 관람객의 해석에 맡겨진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