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

[Review] 143점의 대화, 서울과 요하네스버그 사이에서

by 소네클로시

서울 한복판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유럽 중심의 서양미술사를 아프리카로부터 넘어온 작품들을 통해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미 국내 여러 지역에서 성공한 전시회답게 평일 점심 시간대에도 사람이 많았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라는 모두가 알 법한 아티스트 이름의 친숙한 제목 뒤에는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라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미술관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tempImagePdmktB.heic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에 버금가는 미술관을 아프리카에 세우고자 했던 레이디 플로렌스 필립스의 비전이, 이제 89명의 작가와 143점의 작품이라는 실체로 서울에 도착해 만나게 되었다.

tempImageM1D6dt.heic


나는 이날 오후 반차를 내고, 도스트 강연을 듣기 위해 서둘러 미술관에 도착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인상은 명확했다. 수많은 작품이 한데 모임에도 불구하고, 전시 구성도 시대순으로 나뉘어 효율적이면서도 각자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도슨트님의 강연 또한 전체 미술사적 흐름을 따라가되, 특정 작품에만 집중하며 압축적으로 설명을 곁들인 방식은 오히려 관람의 리듬을 살려주었다. 부담 없이 작품을 음미할 수 있었고, 각 섹션마다 핵심적인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껴볼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감성과 고전 사이의 진자


3장 전시는 낭만주의의 대가 윌리엄 터너와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 등으로 구성된 빅토리아 시대 섹션이다. 그들의 작품은 인간의 감성, 자연에 대한 경외를 밀도 있게 품고 있으며, 이성과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낭만주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흐름은 곧 라파엘 전파로 이어지며, 나는 특히 존 브렛의《콘월의 마운트 만》 앞에서 오래 멈춰섰다. 바위와 풀, 나무의 질감이 하나하나 살아 숨 쉬고, 잔잔한 물결은 해안가에 밀려드는 듯하다. 멀리 들판은 희미하고, 하늘엔 안개와 구름이 뒤섞여 평화로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그 정밀한 묘사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하나의 감정 상태로서 다가왔다.


tempImageibKzHf.heic


존 싱어 사전트의 초상화는 전혀 다른 감각의 매혹을 선사했다. 거침없는 붓터치, 망설임 없는 색의 선택, 한 치의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감이 화면을 뚫고 나온다. 사전트의 인물은 마치 스스로 걸어 나올 듯 생생했고, 그 자신감은 보는 이에게도 전이되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미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사이, 그 경계에서 그는 고전적 품위와 현대적 개성을 동시에 구현해냈다.



인상주의와 그 너머: 순간의 미학에서 구조의 실험으로


누구나 따뜻하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인상주의 섹션은 참 좋았다. 부댕의 해변 풍경은 강렬한 색 없이도 풍성하고 시원했다. 압도적으로 밝은 모네의 햇살 속 정원, 르누아르의 따뜻한 일상, 피사로의 도시 풍경, 인상주의자들이 본 세계는 순간의 찰나와 감각의 잔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tempImage47SgIg.heic


드가의 파스텔화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유화의 무거운 붓질 대신, 파스텔 특유의 번짐과 자연스러운 퍼짐은 오히려 인물의 형상을 더 명확하게 부각시켰다. 점묘법의 시냑에 이르러서는 빛과 색채가 더욱 구조화된다. 기하학적인 붓터치, 통통 튀는 색의 배열은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선 ‘조화의 수학’처럼 느껴졌다.


tempImageVGMMz1.heic


마티스의 경우, 색의 자유를 선언한 듯한 작업들이 공간의 에너지를 바꾸었다. 그는 단지 색을 쓴 것이 아니라 색으로 공간을 조율한 듯 보였다.



아프리카의 목소리: 알렉시스 프렐러의 여사제들


전시 말미, 마침내 나는 아프리카 현대미술가의 작품 앞에 섰다. 알렉시스 프렐러의 《여사제들》은 고흐와 고갱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문법을 구사했다. 아프리카 전통 문화의 상징과 의례, 그리고 현대적 색채가 공존하는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의도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서양미술사의 흐름'이라는 주제 아래에서도, 아프리카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고유한 감각과 언어로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와 새로운 시선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라는 제목은 어쩌면 관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손쉬운 장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시를 다 보고 나면 그것이 단순한 스타 작가의 나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전시는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라는 수집의 역사도 있으며, 익숙한 이름들 속에서 낯선 맥락을 발견해볼 수 있게 한다.


tempImageXYbYs2.heic

또한 전시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도슨트 또한 굉장히 많은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서 오랫동안 전시를 음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감상의 장벽을 내리고, 더욱 더 풍부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아 2시간 반을 넘게 세종문화회관 전시회장에 머물며 힐링할 수 있었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를 담지만, 그것이 전시되는 장소와 맥락은 그 시대를 다시 해석하게 만든다. 서울에서 아프리카의 미술관을 만난다는 이 복합적 경험 속에서 오래전 탄생한 작품들의 살아있는 표면의 질감과 색깔들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트 오브 럭셔리 Art of Luxury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