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과 꿀 [도서]

[Review] 또 다른 삶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

by 소네클로시
그 사람은 너무도 오랫동안 오직 집 짓는 일만 하고 살아 온 나머지, 그 일이 더 이상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되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폴 윤의 소설집 『벌집과 꿀』을 읽으며 만난 이 문장은, 내 마음속 깊은 어딘가를 쿡 찔렀다. 직업을 잃고 떠돌며 ‘또 다른 삶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이 연극 속 인물처럼, 이 책의 인물들 역시 떠돌고, 해체되고, 연결되려다 미끄러지고, 다시 걸어 나간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을 따라가며 묻게 된다. 과연 나는 지금 ‘내 집’에 있는가?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고정된 뿌리를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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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은 떠나야 했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혹은 떠나지 않았지만 마음은 영원히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디아스포라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정제된 언어와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감정의 낭비 없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단지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견디는 인간의 태도, 그 고요한 강인함을 다정하게 비추는 소설들이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벌집과 꿀』을 구성하는 일곱 편의 단편 「보선」, 「코마로프」, 「역참에서」, 「크로머」, 「벌집과 꿀」, 「고려인」, 「달의 골짜기」는 모두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완결되지 않은 삶’이라는 주제의식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이 작품집은 단순한 서사의 종결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대답 없는 질문을 품은 채 사라지고, 독자는 무언가 빠진 채로 그들을 배웅한다. 그래서 나는 더 씁쓸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보선」에서 주인공 청년은 막 출소하여 북부 미국의 낯선 동네에 정착하려 애쓴다. 그의 일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엔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려는 고투와,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맞춰야 하는 긴장이 흐른다. 그러나 이야기 어디에도 뚜렷한 해결이나 돌파구는 없다. 그는 그저 그렇게 바꾸고 싶은 현실을 살아낵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벌집과 꿀』은 사건보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인물들이 겪는 상실과 고립은 명확히 말해지지 않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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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말의 느슨함은 '진짜 삶'에 더 가깝다. 우리의 삶도 대부분 그렇고, 정답을 얻지 못한 채 이어지는 하루하루, 어중간한 자리에서 머무르다 또 어딘가 마음 품을 곳을 찾아 떠난다. 작가는 이러한 ‘영원한 미완’의 감각을 포착함으로써 독자에게 이질적인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보편적인 삶의 단면으로 끌어낸다.



「역참에서」주인공이 아닌, 곁에 있던 자의 시선으로


일곱 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단편은 「역참에서」였다. 에도시대 1608년을 배경으로, 조선 침략 중 아기 때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고아 소년이 고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이야기의 화자는 송환을 호위하는 일본 사무라이인데, 정작 중심에는 소년이 있다기보다는, 그 소년을 둘러싼 일본인 부부와 사무라이 자신의 내면 풍경이 더 깊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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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폴 윤이 ‘디아스포라의 주체’를 직접 조명하기보다는, 그 주변을 둘러싼 타자들의 시선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소년은 그야말로 뿌리가 뽑힌 채 떠도는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듣지 않는다. 대신, 그를 바라보는 사무라이의 눈과 생각, 그리고 아이를 길렀던 일본인 부부의 무언의 태도 속에서 그 고통이 파문처럼 전해진다.


그 연극은 더 이상 목수가 아니게 된 목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도 오랫동안 오직 집 짓는 일만 하고 살아 온 나머지, 그 일이 더 이상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되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 지요. 온갖 곳으로 여행을 하며 자신에게 또 다른 삶을 짓 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저 계속 떠나고 또 떠납니다. 연극은 그렇게 끝납니다. 그 사람이 떠나 고 또 떠나는 장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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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떠나는 자’가 아니라 ‘남겨진 자’의 감정이다. 그들은 떠난 아이를 보내며, 자신들의 삶에 새겨진 흔적을 바라본다. 나는 이 단편을 통해 디아스포라는 단지 고향을 잃은 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상실을 목도하며 남게 되는 이들 모두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는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조용한 연민의 미학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디아스포라 ― 정체성의 불확실성 속에서


이 책을 덮으며 내가 가장 오래 곱씹은 질문은 “과연 디아스포라는 남의 이야기인가?”였다. 내 몸은 지금 분명 ‘고향’이라 불릴 수 있는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늘 어디론가 떠나 있는 듯한 감각을 안고 살아간다. 내 정체성은 명확하지 않고, 어떤 역할에 몰입할수록 그것이 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벌집과 꿀』은 정체성의 불확실성과 내적 이주의 감각까지도 포용하는 작품이다.


「달의 골짜기」의 남자는 산골짜기 고향에 돌아와 살아간다. 그는 이주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이방인이다. 한국전쟁의 상흔, 과거의 기억, 끊어진 관계들 속에서 그는 말없이 살아간다. 이처럼 폴 윤은 이주하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모습까지 섬세하게 포착한다. 나는 한국이 아닌 곳에 대한 디아스포라만 상상하고 생각해왔다. 몸은 남아 있으나, 마음은 떠나버린 자들이자 고향은 남아 있어도, ‘집’은 이미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디아스포라에 포함된다는 것을 조용히 깨달았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이방인들이 곁을 내어주고, 타인에게 ‘잠시의 집’이 되어주는 장면들로 인간에 대한 조용한 서로의 신뢰와 따뜻함을 느낀다. 그 연결은 크지도 길지도 않지만, 그 작고 부드러운 연결이야말로 우리가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는 것을, 이 책은 거듭 말해준다.





『벌집과 꿀』은 삶이라는 ‘떠남’의 연속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물리적인 디아스포라에 머물지 않고, 정체성, 상실, 연결의 보편적인 감각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이 파고든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내밀한 대화의 기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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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목수’를 떠올렸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역할에 매몰된 나 자신, 그 역할이 사라졌을 때 흔들리는 나의 뿌리. 그리고 또다시 떠나며 ‘또 다른 삶을 짓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나의 마음. 결국 우리는 모두 떠도는 자들이며, 누군가에게 ‘잠시의 집’이 되어주는 순간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지도 모른다.


『벌집과 꿀』은 조용하지만 깊다. 그리고 그 고요한 문장들 안에,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정체성의 결핍과 회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모두 어딘가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될 수 있다고.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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