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베리 페스타 2025[공연]

[Review] 비와 함께 흐른 감정들, 킨텍스를 채운 노래

by 소네클로시

밖엔 비가 조용히 내렸고, 여름비 치고는 제법 부드럽고 조용한 날이었다. 페스티벌이 열린 그 주는 주중 내내 비가 많이 왔었다. 장마에 지쳐갈 즈음, 조금은 조용해진 비 따라 들어선 킨텍스 실내 홀에서는 여러 노래들이 울려퍼지는 다른 공간이었다. 무대에 포커스된 강렬한 조명, 그리고 각자의 속도로 박수 치고 숨 쉬는 사람들, 바닥에 울리는 저음과 고음으로 축제는 야외만의 것이 아니란 걸, 이 날의 라이브들이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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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마음을 안아준 사운드 – 리도어 / 더폴스


리도어 – 고요함과 록 사이, 투명한 음악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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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도어의 무대는 시작부터 사적이었다. 조용한 고백 같고,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한 줄의 시 같기도 했다. 비에 젖은 마음이 더 고요해지는 느낌이었다. 섬세한 목소리와 나무 냄새와 바람 소리 같은 악기들의 결이 실내 공간에 천천히 퍼져나갔다. 이건 록이 아니라 어떤 ‘숨결’ 같았다. 정제된 소리 위에 절제된 감정이 얹어져 있었고, 그게 오히려 깊었다.


더폴스 – 차가운 듯 따뜻한, 몽환 속 현실

더폴스의 음악은 처음엔 다소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곡이 하나둘 지나갈수록, 그 '무심함'이 오히려 위로로 다가왔다. 몽환적이고 이지 리스닝처럼 들리지만, 가사와 멜로디 사이 어딘가에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숨어 있었다. “순간의 극점”이라는 그들의 음악적 주제는 추상적이었지만, 그날 무대에선 이상하게도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차갑지만 매끄러운 음색, 그리고 찰랑이는 기타 톤은 빗소리와 아주 잘 어울렸다. 킨텍스라는 실내 공간이 오히려 더폴스의 음악을 더 잘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겪은 사람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듣고 있었지만, 그 무표정 속에 아마 많은 생각이 스쳐갔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타국의 감성과 언어, 마음을 울리다 – 카미키타 켄 / 아마자라시


카미키타 켄 – 몽글몽글한 목소리와 따듯한 애니메이션 한 장면

처음엔 “잘 모르는 일본 아티스트네” 정도였다. 그런데 카미키타 켄의 무대가 시작되자, 마치 어린 시절을 우연히 다시 마주보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영상엔 익숙한 만화풍 이미지가 흐르고, 그의 노래는 그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일본어는 못 알아 들어도 마음은 잘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듯했고, 그것이 오히려 더 진심처럼 다가왔다.


몽글몽글하다는 말이 그 이상 어울릴 수 있을까. 켄의 음악은 마치 안쪽에서 나를 따뜻하게 쓰다듬는 기분이었다. 비 오는 날, 실내에서 맞이한 가장 부드러운 위로였다. 감정이 소용돌이치기보다는, 차분히 잠재워주는 음악. 관객들의 박수와 미소가 그것을 증명했다. 생경한 언어 속에서도 따듯한 감정은 결국 통하는 법이다.

카미키타 켄의 무대는 ‘몽글몽글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다. 애니메이션 화면과 함께 펼쳐지는 그의 노래는 마치 추억 속 어느 여름날을 꺼내보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정성 들인 가사, 말하듯이 부르는 음성, 관객과 공명하는 따뜻함이 무대 전반에 퍼져 있었다. 일본 문화를 잘 모르더라도, 그의 음악이 건네는 진심은 언어를 넘어 마음으로 다가왔다.


아마자라시 – 비처럼 내린 가사, 마음속에 고여든 시

아마자라시는 사실 이름부터 생경한 아티스트였다. 공연 전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 이 아티스트의 곡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시아준수의 커버곡을 언젠가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그 익숙한 멜로디에서 새로운 진심을 마주했다. 커버로 들었던 그 노래가 원곡자의 목소리로 다가오니, 의미가 전혀 달랐다. 잔잔하면서도 귀에 박히는 창법, 묵직한 정서, 그리고 마치 소설 같은 가사들이 킨텍스 홀 안에 천천히 고여들었다.


목소리는 슬픔을 담백하게 전달했다. 그건 더 슬펐다. 아프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아마자라시의 음악은 단순히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곱씹을수록 배어드는 감정, 그리고 문장 같은 노래들. 시처럼, 때론 수기처럼. 비 오는 날 실내에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참 감사했다.

아마자라시는 이날의 ‘발견’이었다. 처음 접한 이 밴드는 단순한 J-POP의 범주를 넘는 무언가를 들려주었다. 특히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은 이미 커버곡으로 익숙했지만, 원곡자의 목소리로 듣는 그 순간엔 애절함의 무게가 달랐다. 문학과 철학, 슬픔과 생존이 교차하는 듯한 가사들은 시처럼 마음에 새겨졌고, 아키타 히로무의 창법은 절제와 폭발 사이를 유려하게 오갔다. 비를 맞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고백은 그렇게, 축제 한복판에 묵직한 잔향을 남겼다.




에너지의 집약, 감정의 전율 – 쏜애플

쏜애플은 등장과 동시에 공기를 바꿨다. 첫 곡부터 압도적인 사운드와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관객 전체를 빨아들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그들의 음악은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 질서와 진심이 담겨 있다. “음원으로도 좋지만, 라이브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은 이 밴드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처음 쏜애플을 접한 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고, 익숙한 팬들에겐 또 다른 형태의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귀가 찢어질 듯 찌릿했고, 동시에 마음은 웅크려졌다. 음원과 목소리는 같았지만, 라이브에선 그 안의 야생성이 드러난 것 같다.



곡과 곡 사이 멘트 없이 밀어붙이는 집중력. 카리스마. 그리고 어딘가 기이하게 애절한 가사들. 어느 한 순간에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실 입을 벌리고 본 아티스트가 많지 않은데, 쏜애플이 그랬던 것 같다. 쏜애플의 음악은 무대를 관통했고, 그 힘은 객석의 끝까지 도달했다. 강한 감정은 오래 남는다.




그외 많은 아티스트들이 노래한 하루가 끝났을 땐, 바깥의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었다. 킨텍스 홀 밖은 어두웠고, 조금은 젖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게 따듯했다. 이 날은 음악을 ‘듣는’ 날이 아니라, ‘겪는’ 날이었다. 리도어의 고요함, 켄의 따듯함, 아마자라시의 절제된 절규, 쏜애플의 폭발. 모두가 내 7월의 일부가 되었다. 축제가 끝나면 무언가가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에겐 하나가 더 남았다. 그래서,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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