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밧줄이라는 언어와 발화하는 등장인물
움직임은 종종 언어보다 앞서 온다. 말하기 전에 몸이 반응하고, 설명하기 전에 감각이 움직인다. 공연은 대사를 배제한 채, 오로지 신체와 밧줄,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언어가 무대에서 사라질 때, 의미는 정말로 사라지는가. 아니면, 의미는 오히려 그런 사라짐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가. “움직임에 주어가 없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주어 없는 움직임이라는 말이 정말로 가능할까.” 이 공연은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답을 내리기보다는 그 질문 자체의 무게를 몸으로 전달한다.
보고난 뒤 강렬하게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의 나열들
직선의 밧줄
직선의 경직됨과 아슬아슬해지는 움직임
직선 규칙을 넘나드는 움직임
간헐적으로 예상하지 못하는 불규칙적
밧줄을 붙잡고 오르려다 결국 떨어지는 시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잃어가는 힘
직선에서 곡선의 연결
딱딱하고 빳빳해 보이던 밧줄의 유연함
곡선의 탄생대로 움직이는 자세와 변형
모든 직선의 곡선화와 얽매임
모든 게 서로 얽히고설켜 나눌 수 없음
그리고 밧줄로 하나 됨
밧줄이 몸을 감싸는 듯한 비통제력
밧줄에 의해 결국 통제된 주어 없는 움직임
무대의 중심에는 밧줄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이 극의 말 없는 서사를 이끄는 유일한 언어다.
밧줄이라는 오브제를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물리적 상호작용은 작업의 핵심이다.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고, 이어주는 동시에 얽어매는 이중성을 지닌 밧줄은 신체에 압력을 가하거나 흔들림을 유도하며, 개별성과 제도, 자유와 질서 사이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극 정보 인용
밧줄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질료이자 인물과 공간, 그리고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언어였다. 처음에는 밧줄이 배우의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제어하는 수단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하나의 능동적인 주체로 자리를 옮겼다. 밧줄은 당기고 풀리고, 때로는 느슨해지다가도 긴장되며, 배우의 몸과 몸 사이를 잇거나 분리시키기도 했다. 밧줄의 방향성과 움직임은 단지 소도구의 물리적 속성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규칙과 압력, 제도, 타인의 시선, 혹은 내면화된 규범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상징하는 장치처럼 나아가기도 한다.
더 흥미로웠던 점은 밧줄의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배우의 몸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줄에 감긴 신체는 더는 저항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간다. 밧줄은 얽어매는 동시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불편한 압박과 해방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신체는 밧줄과 싸우기보다는 그 흐름에 스스로를 맞춘다. 밧줄이 마치 한 겹의 피부처럼 배우에게 밀착되는 순간, 나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접촉하는 ‘관계’나 ‘사회적 조건’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나를 억누르던 것이, 결국은 나의 일부가 되는 그런 과정 말이다.
밧줄은 단단함의 상징이다. 우리는 사물 등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고정시키기 위해 밧줄을 쓴다. 밧줄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도구이다.
이 극에서는 단단함보다는 유연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위험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존재보다는 위험에 빠트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등장인물과 동일시되어간다. 밧줄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등장인물의 외부 힘으로 변형되어가며, 오히려 등장인물이 밧줄에 동화되고, 밧줄이 특별한 오브제로서 의미가 확장되어가는 것을 모두가 느끼게 되는 그 변화와 지점이 신선했다.
이 공연에서 움직임은 문장처럼 배열되었지만, 그 문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문장이었다. 언어를 생각할 때 우리는 문장의 구조를 예측한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가 이어지고, 그것은 보통 일관된 논리와 규칙을 따른다. 하지만 『TRNAS III』의 움직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던 동작이 갑자기 멈추거나 전혀 다른 궤도로 튀었고, 균형을 잡을 것 같던 장면은 곧 무너졌으며, 예상 가능한 동작이 낯설게 비틀어졌다. 특히 밧줄을 붙잡고 오르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점차 ‘의지’의 흔적조차 흐려지는 등의 예측 불가능성은 단순히 안무의 구조적 선택이 아니라, 감각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언어 발화를 통해 이야기와 의미가 전달되는 경우, 우리는 어느 정도 문장의 처음과 중간을 들으면, 끝을 예상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극의 등장인물 움직임은 사실 예상할 수도 없고, 밧줄의 움직임 또한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이어질 문장을 몇 가지 예상 범위 내에서 맞출 수는 있지만, 밧줄의 움직임과 등장인물의 움직임은 도저히 예상 범위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로써 더욱 무대에 집중하게 되고, 움직임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나에게 낯선 언어로 된 문장의 끝을 모른 채로 그 문장을 읽어가는 것처럼, 나는 그 모든 움직임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멀리서 따라가보았다.
무대를 지켜보다 보면 문득 내가 극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느 순간부터 배우의 움직임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감각이 생긴다. 특히 밧줄에 의해 움직임의 방향이 정해지는 장면들에서 그랬다. 배우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밧줄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휘어지고, 늘어나고, 접힌다.
그런 물리적 특성은 나의 신체와 닮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오브제와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단지 기술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더 은밀하고 신경적인 감각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신체는 밧줄에 저항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일종의 '조정된 리듬'을 찾아낸다. 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과연 나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는가. 혹시, 나도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끊임없이 조정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TRNAS III』는 그런 상태를 추상적인 언어가 아닌, 구체적인 신체를 통해 보여준다. 신체는 밧줄과 싸우고, 동시에 그것과 화해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대 위의 움직임이 결코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잠재된 움직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주어 없는 움직임’이라는 말이 내게 처음으로 떠오른 순간은, 배우가 밧줄에 감긴 채 완전히 뒤틀리듯 회전하고, 중심을 잃은 채 어딘가로 내던져질 때였다. 그 움직임은 분명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그 사람은 움직임의 '주체'라기보다는 일종의 매개체처럼 보였다. 스스로 선택한 동작이 아니라, 어떤 흐름이나 힘에 이끌려 생긴 동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주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많은 행동들이 과연 얼마나 자율적인가, 혹은 얼마나 외부 조건과 반응에 따라 결정되는가를 떠올리게 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나는 반복해서 이 문장을 떠올렸다. 움직임에는 주어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움직임은 계속되지만, 그 움직임의 ‘의지’는 희미하다. 관객인 나는 그런 움직임을 보며 불편해졌고, 동시에 깊이 끌려들었다. 말이 아닌 몸, 설명이 아닌 긴장. 이런 방식으로 공연은 언어로 정리될 수 없다.
『TRNAS III』는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것을 끝내 보여주려 했던 공연이다. 밧줄이라는 소재는 단지 상징이나 오브제를 넘어서, 이 극의 ‘언어’ 그 자체로 기능하며, 배우의 몸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감각의 흐름이었고, 긴장의 흔적이었으며, 이해보다 먼저 도달하는 감정이었다.
골똘히 생각하고 사유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쉽고 어려움을 판단하기 전에 올해, 어쩌면 작년 통틀어 사유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냐 물어보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머리가 굳은 것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냅두는 편이었고, 내 삶이지만 삶에 그렇게 진지한 태도나 고민을 얹기에는 하루가 짧게, 아쉽게 흘러가버렸다. 극을 준비해온, 예술을 해온 등장인물과 공동 창작의 선생님들은 그러한 고민들을 심도 있게 겪어내고 이 공연을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을 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떠한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만들기 위해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만, 몸으로서, 움직임으로서 짧은 시간 내에 표현하는 것은 더 어려운 숙제이지만, 이를 해내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오랜만에 자각하고, 나의 삶을 지내는 모습들을 다시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참 행동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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